brunch

부모님의 못말리는 국화 사랑 이야기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by 다시봄

부모님이 국화를 사랑한 건 2017년, 국화 분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해 봄부터 가을까지, 마치 농사짓듯 매주 국화를 배우러 다니셨다.

3년 동안 이어진 그 시간은 두 분이 처음으로 같은 취미를 공유한 시기이기도 했다.





시에서 개최한 국화축제에 갔다가 분재의 매력에 푹 빠진 부모님은 그날로 담당자의 연락처를 받아 다음 해 교육을 신청하셨다.

평소에는 신중한 두 분이 그렇게 즉석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함께 좋아하는 일을 배우려는 두 분의 모습이 보기 좋았고, 무엇보다 국화 분재가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소나무 분재를 만들던 아빠에게는 잊고 있던 취미를 되살리는 즐거운 시간이었고,

꽃이라면 이름을 모르는 게 없는 엄마에게는 국화의 더 깊은 세계를 경험하는 기회였다.

어릴 적부터 그런 풍경을 보며 자란 내게는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다.


분재를 배운 첫 해에는 매일 물을 줘야 하는 국화 때문에 여행도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외박이라도 하는 날엔 우리 네 남매 중 한 명에게 국화를 맡기고, 저녁마다 상태 보고를 받으셨다.

그만큼 애착과 정성을 들인 분재를 전시회에 처음 내놓던 날, 두 분은 마치 큰 상이라도 받은 듯 뿌듯해하셨다.


꽃 좋아하는 엄마가 공들인 ‘목부작’
젊을 때부터 분재 좀 해본 사람, 아빠의 작품
집 앞 텃밭에도 국화가 한 가득


하지만 배움이란 게 모름지기, 배울수록 부족함이 보이게 마련이다.

부모님은 다음 해 더 큰 규모의 전시회에 다녀오시더니 잠시 기가 죽은 듯했다.

다양한 국화의 세계가 있음을 깨닫고, 그때부터는 한층 깊이 있는 공부를 시작하셨다.

돈을 버는 일도, 명예를 얻는 일도 아니었지만 두 분은 누구보다 진지했고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그렇게 3년의 배움 기간을 포함하여 5년 동안 전시회에 참여하셨다.

이제는 작품을 내놓지 않지만, 집 정원은 여전히 국화로 가득하다.



지난 주말, 부모님과 두 곳의 국화전시회를 다녀왔다.

당진 합덕 농촌테마공원과 아산 탕정 지중해마을.

매년 이맘때면 빠지지 않고 가는 행사지만, 두 분에게는 늘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아직 걷기가 불편한 엄마는 올해는 못 갈까봐 내내 조바심을 내셨지만, 결국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

아빠는 ‘가든멈(Garden mum)’이라는 신품종을 발견하자 색깔별로 사들이며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내년 국화 농사에 새 식구를 들이게 된 것이다.


우리집 거실에도 들여놓은 가든멈
당진 국화전시회
아산 국화전시회




정원에 가득한 국화가 내년엔 또 어떤 모습으로 두 분을 웃음 짓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국화의 색만큼이나, 그 꽃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표정도 다채롭다.

처음엔 잎 하나 따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던 분들이 이제는 가지를 툭 꺾으며 말한다.

“그래야 산다.”

그리고는 또 다른 국화에게로 천천히 발길을 옮기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부모님께 국화 분재를 배우고 싶다.

배우고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가르치는 기쁨을 누릴 두 분의 눈빛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두 분의 못말리는 국화 사랑이 오래 이어지길.

두 분이 국화처럼 오래 피어나시길.

해마다 더 깊고 은은한 빛으로.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목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

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일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