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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모님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by 다시봄

팔순의 아빠와 아빠보다 다섯 살 아래인 엄마는

쌀쌀해진 바람이 불자 또 한 해가 저문다며 아쉬워하신다.

올해는 무사히 보냈지만 내년엔 어떨지 알 수 없는 나이 든 몸이 걱정된다고 하신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세월의 무게지만 나에게 부모님의 시간은 유독 특별하다.

두 분의 계절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내가 언제까지 두 분과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지금 부모님은 인생의 어디쯤에 계신 걸까.

지금 부모님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지금 부모님은 인생 어디쯤 계신 걸까




유독 단풍이 고운 가을이다.

그 빛을 모른 척하기 어려워 두 분을 모시고 단풍 구경을 떠났다.

엄마는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한 손엔 지팡이, 한 손엔 귤 봉지를 들고 계셨고, 추위를 많이 타는 아빠는 벌써 겨울 점퍼를 단단히 여미고 마스크까지 챙기셨다.


차는 안성을 향해 달렸다.

창밖으로 물든 산이 이어졌고, 부모님은 그 풍경을 놓칠세라 눈을 반짝이셨다.

나는 운전대 위에서 중계하듯 말했다.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 있어요. 저쪽엔 빨간 단풍이 장관이에요.”

전방 몇 미터 앞의 풍경이라도 알려드리면 두 분이 단 한 그루의 단풍도 놓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안성 미리내 성지.

천주교 신자인 우리 가족에게는 성지이자 단풍 명소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오랜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은행나무가 한꺼번에 눈을 사로잡았다.


무릎이 성했더라면 양팔을 벌리고 신이 나 걸었을 엄마는 15도쯤 기울어진 오르막길을 조심스레 걸어올라가셨다. 단풍이 아니었다면 벌써 지쳐버렸을 길이었다.

감탄사를 입 밖으로 잘 내지 않는 아빠가 “멋있네.” 한마디를 남기셨다.

그 짧은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엄마가 단풍잎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내년 가을엔 단풍 보러 어디로 갈까?”

그 말이 나를 웃게도, 잠시 멈추게도 했다.

‘다음이 있겠지?’ 하는 마음 한켠의 불안과 ‘있다고 믿고 싶다’는 희망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부모님이 하루라도 더 건강하길 바라고, 두 분의 계절이 오래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부모님의 계절을 함께 한다는 것은




봄엔 꽃을 여름엔 푸른 잎을 가을엔 단풍을 겨울엔 눈꽃을 보는 일은

계절을 놓치고 싶지 않고 계절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계절을 누리는 일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내년엔 1박 2일로 다녀와요.”

걷기 힘든 두 분과의 여행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약속하고 싶다. 지켜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살게 하니까.


다음 해를 기약하는 일은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을, 계절을 더 오래 붙잡기 위한 우리의 작은 기도이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목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

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일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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