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부모님이 사남매 중 막내인 나를 낳았을 때 엄마는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다.
아빠도 서른을 막 넘긴, 어른이라 부르기엔 여전히 미숙한 나이였다.
그 어린 두 사람이 네 아이의 부모가 되었을 때, 막막했을 마음을 이제서야 조금 헤아리게 된다.
그 시절의 부모님은 지금의 조카들과 같은 나이였다.
늘 철없고 아이 같아 보이는 조카들인데, 그 나이에 우리를 먹이고 재우고 키워냈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부모님의 말 한마디에 서운해하고 원망하던 지난 시절이 괜히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그렇게 어리고 젊었던 부모님이 조금만 걸어도 금세 숨이 차고 나란히 걷다가도 어느 순간 뒤에서 천천히 발걸음이 느려지는 나이가 됐다.
함께 여행을 다닐 때면 “이제는 내가 두 분을 보호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어깨를 조금씩 무겁게 한다.
지난주엔 김장하느라 여행을 쉬었다.
그 사이 근처 은행나무길이 몇 년 만에 예쁘게 물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중에 엄마 생신이 있어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지만, 엄마는 여행을 쉬었다는 아쉬움이 컸던지 은행나무 이야기를 몇 번이고 꺼내셨다.
절정은 지났겠지만 일요일에는 꼭 가보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우리의 여행 멤버가 다시 모였다.
엄마, 아빠, 작은언니, 그리고 나.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은행나무길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노란 잎이 끝없이 머리 위로 펼쳐진 그 터널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작은 점처럼 보였고, 우리는 잠시 세상의 무게를 잊은 채 노란 빛 속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에 남아 있는 잎보다 길 위에 떨어진 잎이 더 많았지만 그마저도 하나의 장관이었다. 마치 노란 눈이 천천히 멈춰 선 풍경 같았다.
엄마는 내가, 아빠는 언니가 팔짱을 끼고 걸었다.
두 분은 늘 그러듯 “괜찮다”고 말했지만 길에 떨어진 잎이 미끄럽기도 했고, 가까이 붙어 걷는 일이 부모님께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팔짱을 풀 생각이 없었다.
20분쯤 지나 아빠의 걸음 속에 피곤이 서서히 배어들자 누구랄 것도 없이 카페를 찾았다.
요즘의 여행은 ‘조금 걷고, 천천히 쉬기’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가방에는 아빠 비염 때문에 티슈와 물티슈, 마스크를 챙기고 엄마 무릎이 시릴까 봐 작은 담요를 챙긴다. 길게 걸을 수 없어서 당을 보충할 사탕과 초콜릿도 넣어둔다.
언니와 나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부모님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 우리의 두 손은 점점 무거워진다.
내년 봄이 오면 이 모든 것을 담을 ‘부모님 전용 가방’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나는 사탕 몇 알 챙기고 팔짱을 껴 부축만 했을 뿐인데,
엄마는 그게 또 미안하고 고마웠는지 집에 가는 길에 한우 두 팩을 언니와 내 손에 꼭 쥐여주셨다.
“비싼 걸 왜 우리한테 줘요? 아빠랑 드세요.”
“세일할 때 사서 거의 삼겹살 값이야. 니들이 매주 고생하는데 엄마가 이 정도도 못 사줄까봐.”
내가 부모님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자식을 먼저 챙기는 마음은 여전히 두 분이 더 크다.
여행 가서 밥 값만큼은 꼭 아빠 찬스를 쓰는 아빠와 집에 와서는 우리를 빈 손으로 보내지 않는 엄마.
나는 아직 그 마음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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