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살았습니다
<월간에세이> 2026.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미루고 미루던 건강검진을 했다.
2년에 한 번 하는 전국민 대상 무료 건강검진이 아니라 회사 제출용 간이 건강검진이다. 신장과 몸무게, 허리둘레를 재고 혈액과 소변 검사를 하는 말 그대로 단출한 검진. 아무 때나 해도 되는 이 검진을 미뤄온 이유는 단 하나, 다이어트 때문이다. 한 끼만 굶어도 빠지던 몸무게가 하루를 굶어도 요지부동인 게 못마땅해서 조금만 더 빼고 가야지, 다음 주에 가야지 미루다 보니 시간만 흘렀다.
중학교 3학년 때 키 170cm에 몸무게가 50kg을 넘겼다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매일 저녁 생감자를 갈아먹고 줄넘기를 천 번씩 하며 다이어트를 했다. 먹으면 찌는 게 당연한데도, 내 몸에 붙는 살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다. 지금 60kg을 훌쩍 넘긴 내 몸에 비하면, 그때의 나는 얼마나 빼빼 마른 말라깽이였는지 당시엔 알지 못했다.
오십을 앞둔 지금, 30년 동안 유지해 온 몸무게는 어느새 평균을 넘어서 있다.
건강검진표에만큼은 예전의 평균 몸무게가 찍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핑계 삼아 검진을 미뤄왔지만, 쉽게 빠질 살이 아닌 듯했다. 고혈압 전단계에 빈혈까지 있는 상황이라면 건강 수치가 나아지길 바라는 게 정상일 텐데, 나는 여전히 몸무게 숫자에 집착하고 있었다. 간절했지만 그 마음이 행동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검진 일주일 전부터 관리를 했다. 저녁 식사량을 줄이고 집 안에서라도 운동을 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검진 날짜가 다가올수록 배가 더 고팠고, 기운이 달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밥을 줄이거나 거르면 금방 쓰러질 것 같다는 핑계를 대며, 없던 ‘밥심’까지 내세웠다. 몸무게가 늘었을 걸 알면서도 오늘 먹는 이 밥이 나이 든 나를 지탱해 줄 거라 굳게 믿었다.
검진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와서야 예전처럼 다이어트를 하지 못하는 중년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내심은 줄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당장 달아나고 싶어진다. 여유는 줄어들고 변명은 늘어난다. 가진 것을 움켜쥔 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쓴다.
아니나 다를까, 건강검진 전날 저녁에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먹었다. 운동도 하지 않았고, 잠은 오히려 더 잤다. 아침마다 마시던 미온수를 거른 것 말고는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내가 건강검진표에 남았다. 혈압 138/89, 고혈압 전단계. 혈색소 수치 9, 빈혈. 미세하게 줄어든 키, 늘어난 몸무게와 허리둘레.
몸무게 64kg. 50년 인생에서 처음 보는 숫자였지만, 이상하게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예전의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예전에 입던 옷이 꽉 끼고 불편한 것만 감수하면 비만도 아니고 큰 질환 없이 지내는 중년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는 몸무게보다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할 나이다. 예전의 나라면 ‘다이어트 하기 힘드니까 자기합리화한다’며 당장 밥부터 굶으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말한다.
‘이 정도면 괜찮아. 대신 운동은 좀 하자.’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갈 때의 나는 누가 봐도 청년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중년의 아줌마다. 늘어난 뱃살과 깊어진 주름, 처진 피부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를 먹고 비싼 에센스를 발라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스무 살 조카들과 사진을 찍으면 중년의 기운은 더 분명해지고, 여섯 살 위인 큰언니와도 주름의 개수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나도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달라진 건 겉모습만이 아니다. 마음가짐도 함께 변했다. 나이에 맞는 변화일 거라 짐작하게 되었고, 그 변화가 나쁘지 않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상적인 틀에 나를 가두고 옥죄던 청년에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금은 느슨해진 중년이 되어가는 지금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한때는 중년이 된 나를 마주할 날이 까마득하고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나름의 이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중년 여성이다.
격변의 70년대에 태어나 X세대의 반항을 품고 IMF의 불황을 지나왔고,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아픈 시간을 몸으로 통과한 중년이다. 지난 역사만큼이나 뜨거운 불꽃을 혈관에 간직한 중년이다. 어떤 중년이든 그 나이만큼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중년은 청년처럼 혈기가 넘치지는 않아도, 미지근한 열정을 오래 품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게 아닐까.
중년이어서 참 좋다.
인내심은 줄고 변명은 늘었을지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고 바싹 마른 나보다 지금의 펑퍼짐한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