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3
요즘은 모든 게 싫고 귀찮다.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처럼, 사는 일 자체가 재미없다. 글도 쓰기 싫고 입맛도 없다.
이러다 서서히 사라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갱년기가 시작된 걸 알면서도 이런 내가 낯설다.
늘 ‘다시 봄’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밝고, 모든 일에서 의미를 찾던 성실한 탐험꾼이었던 나에게 찾아온 대반전. 그 어색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나는 어디서 다시 삶의 재미를 찾아야 할까.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었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인문학 강좌를 신청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 시기. 어쩌면 인문학을 듣기에 가장 적절한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점에 가면 늘 인문학 코너를 맴돈다.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인문학 책이 더 재미있고, 이유 없이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한다. 그렇게 오래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선명하지 않다. 지금까지 쓴 글에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겠지만, 인문학을 모르는 사람이 쓴 글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인문학을 배우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유연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무엇이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자주 화를 참지 못한다.
어쩌면 그 많은 책을 읽으며 내가 배운 것은
‘나에게 유리한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리한 미끼’를 건져 올리는 일이었을지도.
폐경을 앞둔, 미혼의 중년 여자가 된 나는 이제 ‘여자로서의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닿는다.
‘여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내 몫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삶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결국 인문학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단단한 확신.
하지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책만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강좌를 신청했다.
센터 개관 이후 처음 개설된 강좌라는 점도, 내가 필요로 할 때 ‘짠’ 하고 나타난 것처럼 느껴져 더 반가웠다.
갱년기에 접어들며 새로운 것에도 설렘이 사라졌는데, 이 강의만큼은 오랜만에 나를 자극하는 작은 기대를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50년을 살아온 내 삶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3월부터 8주 동안, 매주 화요일 저녁.
안산에서 온 강사와 15명의 수강생이 함께하는 강의가 시작됐다.
간단한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내 차례가 왔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심리학, 철학, 종교학 등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수강하게 됐습니다.”
강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혹시… 우리랑 ‘나와바리’가 다른 분은 아니시죠?”
그 말에 웃음이 나왔지만, 얼른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강사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가끔 강의 중 전문가를 만나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나는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얕은 지식으로 아는 척하기 쉬운, 선무당에 가까운 쪽이다.
다행히 수강생 15명 중에 강사가 우려할 만한 전문가는 없어 보였다.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지만, 대부분은 퇴직한 공무원이나 교사였다. 나와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 주부이며 육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상태임을 강조했다.
특별한 주제가 있는 강의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그 어떤 강의보다 특별하게 느껴졌다.
인문학 강의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던 나에게 보이지 않는 여백을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봤다고 믿는 것,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모든 것이 귀찮고 싫기만 하던 요즘, 이 강의는 뜻밖의 ‘놀이’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사고방식과 상식,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과정은 어리둥절하고 때로는 반발심도 들었지만, 그만큼 내가 얼마나 좁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남은 6주. 이 강의를 다 듣고 나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까.
달라지는만큼 글에도 변화가 있을까.
갱년기에 접어든 내가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