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릭랜드와 요제프와의 포옹
한때 내 꿈은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이었다.
국내 유수의 문학상도 아니고 노벨문학상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한 건 어느 모로 보나 순진한 발상이었지만, 불가능 확률이 훨씬 큰 그 모험의 길을 감히 꿈꾸었던 이유는 두 작가의 소설 때문이다.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가 쓴 소설 중에 <인간의 굴레>와 <달과 6펜스>는 책을 읽는 동안 작가의 영혼과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심취했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에 온통 정신이 팔려 소설의 주인공인 필립, 스트릭랜드와 나를 동일시했고 거기서 헤어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삶의 의미’,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들을 하게 만드는 주인공의 삶이 얼마나 멋있고 부럽던지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어서 읽고 또 읽으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영혼의 안정을 위해 하루에 두 가지 정도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 좋다.
<달과 6펜스>에서의 그의 가르침(?)대로 지금도 매일 싫은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냉장고 청소를 한다던가, 끼어드는 차를 기꺼이 끼어준다던가 하는… 하기 싫은 일을 하면 좋은 점은 발상이 전환된다는 것이다. 생각의 틀이 뒤집어지고 영감이 떠오른다. 결국 글을 쓰는 내게는 좋은 글감을 안겨주는 고마운 습관이다. 여전히 필립이, 스트릭랜드가 그리워서 놓치고 싶지 않은 하루의 루틴이 된 셈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유리알유희>의 요제프 크네히트를 만나면서 전율을 느꼈다.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 하네.
내면세계에 빠져있던 나와 유희 명인 요제프의 만남은 내 모습이 투영된 사람과의 첫 만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과 죽음, 선과 악, 혼돈과 질서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아 나서는 요제프의 삶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고 기꺼이 그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요제프와 만나 잠 못 이루던 여고생은 그때의 밤공기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흘러나오던 주문들을 놓치지 않으려 있는 힘을 다해 기억을 끌어모았다.
<유리알유희>를 읽고 노벨문학상에 대해 처음 알았고 그것을 마음에 품게 되었던 것 같다. 요제프라는 헤르만헤세식 인물과 처음 만난 후 <데미안>, <싯다르타>까지 비슷한 세 사람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더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
헤르만헤세는 정신분석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을 만나 ‘데미안’에 영감을 준 꿈을 꾸었다고 한다. 융 역시 꿈에서 영감을 받아 프로이트와는 다른 자기만의 무의식 세계를 정립한 심리학자가 아니던가? 그 둘이 만났으니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했을 게 틀림없다.
닮고 싶은 위 소설의 주인공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고 좀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아 나선다. 도약이다!
그들의 삶을 동경하고 닮고자 했던 마음은 도약을 꿈꾸는 나 자신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들과의 만남으로 내가 원하던 세상으로의 도약이 가능해진다면 꿈에서라도 만나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안아줄 것이다.
사진 :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