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불놀이

by 무아

가을의 끝자락,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보살님들은 밭에 일하러 가시고 법우들과 법사님만 절에 남아있었다. 저녁공양을 얼른 먹고 간단히 예불을 하고 마을 산책을 가기로 했다. 절에서 사둔 땅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곳은 오래된 집을 허물고 평탄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나중에 무엇이 될진 몰라도.

산책 가는 길, 그 대지에서 타고 있는 장작이 보였다. 그날은, 공식적으로 불을 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다음 날부터 산불주의 기간이라 '올해 마지막 불'이라 하셨다.


'나무 베고 남은 장작 태우고 있나 보다. 여기서 불 좀 쬐고 가자.'

법사님과 법우들이 오손도손 쪼그려 앉아 불멍을 하며 타고 가는 장작을 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난소에 생긴 기형종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법사님께서 '다리 벌리고 앉아'라고 하셨다.

"그건 좀 자세가 요상(?)한데요 ㅎㅎ"

"그런가? ㅎㅎ 옛날에 방에 불 떼고 살 때는 그런 병이 없었다. 요즘은 다 차게 먹고 차게 살아서 그런 병들이 생기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했다. 배달음식을 먹고, 피로에 찌들어 새벽에 퇴근해 침대에서 대충 구겨져서 자는 삶. 그 세월이 꽤 길었다.


법사님께선, 옛날이야기 들려주시듯 바깥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법사님 고민상담소'는 24시간 쉬지 않고 열린다. 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바깥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괴로운 게 즐거운가 봐요~라고 말하지. 괴롭다고 하면서 스스로 계속 괴로움을 끌어안고 살아. 괴로움을 계속 사들여."

"괴로움을 정기구독 하듯이요?"

다들 맞다며 웃으며 박수를 친다. 법사님이 예전에 들려주신 한시가 있었다. 그 한시를 풀이하면 ‘기운이 약해지면 분노가 되고 판단이 흐려진다. 새벽에 화내지 말고, 밤에 취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타오르는 불길은 땔감을 추가하면 보라색이 되기도 하고 초록색이 되기도 하고, 노란색이 더 진해지기도 한다. 대나무를 넣으면 기름 때문에 확- 불길이 커졌다가 다시 잠잠해진다. 땔감 종류에 따라 색이나 불길 크기가 바뀐다. 우리의 괴로움도 비슷한 모습을 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이 불을 키우는지, 우리의 현재가 어떤 색의 불길을 띄는지 모를 때도 있다고. 원인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그 괴로움을 붙잡고 '위안' 또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법전스님이 읊은 게송 중에 '개안즉지삼독아 / 이호차업무진아 (눈을 뜨니 삼독이 바로 참나인지라. 이 업을 여의면 진아도 없어짐이라)'가 떠올랐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번뇌인 탐진치가 참나였다는 말.

나 역시 일개 중생이라 괴로움을 구독취소 했다가도 다시 재결제를 하곤 한다. 최근에 국민을 대상으로 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올해의 마지막 불을 보내던 그 시간들이 새삼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