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계신 요사채의 땅은 정말 요상하다. 씨만 뿌려두면 뭐든 잘 자란다. 요사채를 둘러싼, 담장 같은 치자나무는 거름하나 없이 열매가 빽빽하게 열렸다. 치자는 귤을 닮았다. 겨울 햇살을 가득 머금어, 한입 배어물면 햇살이 과즙처럼 새어 나올 것만 같다. 치자는 상상과 다르게 생으로 먹을 순 없다. 밥에 넣어 먹거나 요리에 물들일 때 쓰곤 한다.
“추자가 주렁주렁 열렸다. 새가 다 먹기 전에 우리도 따자!”
경상도 사투리론 추자. 보살님, 법사님이 한껏 따고 나서도 너무 많이 달려있어 법우들끼리도 따러 갔다. 봄이 오듯, 새파란 하늘 아래 바람 한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우리 꼭 제주도에서 귤 따는 것 같지 않아요?” 치자나무 아래엔 돌담이 축대처럼 쌓여있고 차갑지만 개운한 겨울 공기에 샛노란 치자를 보니 제주도 향기가 물씬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여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연애, 진로를 이야기하다 건강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지난가을, 추석 지나고 우연히 난소에 종양이 발견되었다. 양성에 혹도 크지 않고 재발률도 낮은 종양이었다. 몸에 칼을 대는 것만으로도 쉬운 수술은 없다고 체감했다. 의료파업 중에도 무사히 수술을 제때 마쳤고, 절로 다시 돌아와 회복기를 가지는 중이었다. 수술한 지 이제 막 한 달. 본가에서 회복하는 동안 집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았다. 나에겐 '극락 그 자체'인 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가을에 떠난 뒤 다시 돌아온 절은 어느새 겨울이 깊어지고 있어 너무 추웠다. 이젠 절이 내 고향같이 느껴져 '향수병'에 걸려 우울감이 깊어졌다. 그러나 향수병이 민망할 만큼, 추위에 못 이겨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치자를 딸 때만큼은 햇살이 따사로와 추위를 잊었다. 치자나무 위로 쏟아지는 햇살에, 수술실에서 쏟아지던 그 불빛이 기억났다.
“수술실로 들어가면 바로 수술실이 나올 줄 알았어요. 거긴 완전 새로운 세상이더라고요. 아침 첫 타임에만 (눈대중으로) 20명 정도가 동시에 수술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 “
내가 간 병원은 기독교 재단의 대학병원이었다. 수술을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다 같이 ‘하느님 말씀’이 나오는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각자 배정받은 수술실로 들어가는 복도는 왁자지껄하고 활기찼다. 의사들이 서로 경쾌하게 인사했다. 꼭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에 나오는 시내처럼 에너지가 넘치고, 인사를 마친 뒤 각자의 수술방으로 흩어졌다. 휠체어에 앉아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침대로 나를 앉혀주시고, 천으로 가리면 옷을 벗고 누웠다. 친절한 멘트와 함께 낙상예방을 위해 팔이 묶였다. 나의 무릎에 있는 멍까지 체크해 주시며 나를 잘 눕혔다. 전신마취를 위해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너무나 친절한 외계인에게 납치된 기분이었다. 수술실은 태양이 여러 개 떠있는 것처럼 밝고 화사했다.
“기도해 드릴까요?”
내가 절에 사는 걸 아시는 교수님은 웃으면서 물어보셨다. “아니요 ㅎㅎ” 하는 순간, 웃으면서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극심한 고통이 배 쪽으로 밀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면마취 후 서서히 깨어나는 환자들이 보였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들어 병실로 옮겨졌다. 팔과 다리를 들어 침대로 옮겨가라고 했다. 다리가 전혀 안 들렸다. 의료진의 도움으로 굴러가듯 침대에 누웠다. 2시간 동안 잠들지 말라는 말에 친오빠가 계속 말을 걸었다. 15분마다 누르라던 마약성 진통제는 한 번 누르고 너무 메슥거려 더 이상 누르지 못했다. 그때쯤 법사님께 전화가 와서, 친오빠가 전화를 바꿔줬다.
걱정하시는 목소리에 별말 안 하고 싶었지만, ”너무 아파요! “ 하곤 바로 잠에 빠졌다. 다시 깨고 나선 극심한 생리통이 가시고 강력한 생리통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살 것 같았다. 수술할 때 주입한 가스를 빼기 위해 하루 2-3시간은 걸어 다니라고 하셨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병원 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그제야 병원의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환자복에 잡아먹힌 듯 펑퍼짐한 환자복을 입고 온몸에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찡찡대며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 노년층에 집중된 웰니스 센터에서 나오는 온몸에 두른 것이 얼마인지 추정 안될 만큼의 명품과 우아함으로 에워싼, 80-90대로 추정되는 노인. 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같은 병실에도 각자 너무나 달랐다. 커튼 너머로 한 환자 분의 전화통화 소리를 들었다. 호탕한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통화 내용을 얼핏 들었을 때 오랫동안 만두와 김밥집을 운영하신 듯하다. 그중 한 지점을 넘겨주시는 듯한 내용이었다. 자신의 사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었다. 그분의 신념만 들어봐도 음식 맛이 너무 기대되어 군침이 돌았다. 단순 영업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만두 하나에 최고의 맛, 최선의 서비스, 신뢰를 담아 오신 듯했다. 만두에 그분의 생이 담겨있었다. 가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볼까라는 생각을 하던 와중, 우연히 화장실 가는 길에 마주쳤다.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을 하셨고,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암환자였다. 외형을 떠나 그분의 안엔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뒤통수를 맞은 것만큼 놀라웠고 그 에너지의 근원이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병은 잠시 몸에 들어온 마장 그뿐인가.
몇 달 전, 수술 전 검사를 위해 병원 가는 지하철을 탔다. 시골에 있는 절에 있다가 오랜만에 서울에 올리오면 인구밀도 때문에 대중교통을 타는 것만으로도 지쳤다. 돌아가는 시간은 하필 퇴근시간과 겹쳤다. 빼곡한 사람들 사이 정적이 감돌았다. 정적 위엔, ‘잠들어있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노트북 슬립모드에 들어갔듯, 전원은 들어와 있지만 에너지는 꺼져있는 사람들. 약간의 충격.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장거리 출근으로 지하철에 실려 회사에서 미친 듯이 업무를 하고 다시 실려와 기절하듯 잠들고 다시 아침을 맞이한 시간들.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미쳐 알아차릴 시간이 없었다.
그에 비교했을 때,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의 에너지는 불꽃같았고 살아 있었다. 나 역시 내가 꺼진 모니터처럼, 차갑게 식어가는지 모른 채 병을 키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이 있어도 활기가 넘치는 사람과 무탈해 보여도 죽음에 가까워 보이는 에너지. ‘생의 무게’는 몸과 마음, 정신 등의 에너지가 쌓여 만들어진 근육에서 그 힘이 나오는 것 같다.
수술방에 웃으면서 잠들었을 때, 나에게 근심이 없어 그렇게 수술방 풍경이 더욱 신기하고 아름다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수술을 받았던 법우에게 나의 수술 후기를 들려주었다. 수술실이 너무 활기차서 놀랐다고.
“그래요? 전 그때 세상 모든 것에 다 화나고 좌절했던 때라서 그런 기억은 없어요.”
절에서 사는 동안, 어느새 사라진 근심 걱정에 나에게 생긴 문제도 견딜 마음의 근육이 꽤 자랐나 보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버겁게 버티는 사람들이, 마음의 근육을 키울 시간과 환경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 후, 돈을 벌어도 괴로움에 오열하던 때와 (따지고 보면) 입에 풀칠만 하고 있어도 ‘극락’에서 살듯 살고 있는 지금의 나의 가장 큰 차이, 에너지. 에너지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병원 사람들은 병에 맞서 살려는 의지가 생의 에너지로 발현되고, 과거의 내가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하고 흘러가듯 살아가면 영원히 잠든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에너지가 나온다고 느껴졌다.
원각경에서 ‘이 몸은 마침내 자체가 없는 것이고 화합하고 형상이 이루어졌으나 사실은 환으로 된 것과 같다 ‘고 나오듯, 몸은 그저 마음으로 만들어진 껍데기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회복되면서도 너무나 가벼운 내 마음에, 수술로 지친 내 몸뚱이가 너무나 무거워 몸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난 내 정신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데 그 껍데기를 끌고 가려니 너무 힘이 들었다.
치자를 한 알 한 알 따면서 손끝의 감각을 느껴본다. 세게 잡았다간 치자가 터지고 너무 살살 둘리면 치자는 끈질기게 가지에 매달려있다. 치자와 나의 호흡을 맞추면 쉽게 톡 하고 따진다. 치자의 싱싱함이 내게 들어와 몸도 더 회복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죽음과 생은 같은 저울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치자를 딸 때도 힘의 밸런스가 중요한 것처럼. 무게가 어디로 기울지는 내가 서있는 이곳이 결정한다고 느꼈다. 고민을 안고 절로 들어온, 치자를 따는 법우들의 얼굴은 참으로 말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