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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Sep 06. 2024

절에서 느끼는, 여름의 맛

태풍이 오고 있다. 비바람이 친다. 이제 겨우, 첫 번째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는데. 하루 더 자고 다음 대피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음 코스로 이동하지 못한 그날은, 비가 그친 뒤 대피소에서 가까운 고개로 산보 가듯 올라갔다. 비가 온 뒤라, 구름이 가득했다. 고개를 올라가니, 구름이 바람 따라 흘러와 내 몸통을 감싸고 지나갔다. 구름 안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 실체가 있는 줄 알았으나 뒤를 보니 이미 구름이 지나가고 없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노고단 대피소는 1박만 예약되어 있었다. 대피소 옆, 아직 공사 중이던 건물에 침낭을 펴고 겨우 잠들었던 그날이 생생하다. 첫날의 고생에 이어 총 5박 6일의 지리산 종주를 마쳤다. 중학교 2학년,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단순히 담당 선생님의 취미였던) 영자신문 동아리의 전통인 '지리산 종주'를 갔던 그 기억들이 문득 생각났다.  산중턱에서 5일 동안 못 씻고 허겁지겁 먹던 밥, 산을 온몸으로 올라 엉덩이가 새까매진 바지, 대피소에서 우연히 만난 아저씨에 얻어먹은 코카콜라, 높은 고도에서 먹어서인지 단 크림스프 같았던 '프림만 탄 커피' 등이 기억났다.


절이 있는 곳은 지리산 자락. 여름이 되니 그때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지리산 종주는 나의 삶에 있어 고생만큼 여운이 큰 고생차트 Top10에 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장기 투숙할 줄 몰랐다. 삶은 알 수가 없다. 다신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지리산 자락에 살고 있다니.



6월은 여름을 알아채는 시간이다. 보살님께서 밭에서 따온 참외를 숭덩숭덩 썰어 한 조각 주셨다. 참외밭이 있는 건 아니지만, 누가 씨를 버렸는지 우연히 밭에 떨어진 참외씨가 자라 참외가 되었다. 참외 속을 빤히 쳐다봤다. 마트에서 파는 참외보다 씨들이 생동감이 넘쳤고, 실타래가 얽힌듯한 조직이 더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너도 씨 빼고 먹냐?"

참외씨를 빼고 있는 룸메이트 법우 모습을 지켜보던 스님이 나에게 대뜸 물어보셨다.

"저는 둘 다 먹어요."

"참나, 어떻게 씨를 빼고 먹지."

탕수육 찍먹 VS 부먹 논쟁처럼, 절에선 참외씨 빼먹파 vs 그대로 먹는파가 나뉜다. 난 중립. 참외 씨를 씹어먹을 땐 씨를 감싼 섬유질의 포슬한 식감이 좋고, 빼고 먹으면 멜론과 같은 아삭한 식감이 잘 느껴져 좋았다. 참외를 먹다 문득 느꼈다. 아, 이 맛이 여름의 시작이구나.

절에서 난 참외는 속이 좀 더 '자연스럽달까'


절에서의 여름은 서울과는 확실히 달랐다. 여름이면 냉방병을 살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절에도 에어컨은 있지만, 법회가 있거나 대중이 많은 날이 아니면 전기비 절감을 위해 최대한 안 틀었다. 법우방에도 선풍기만 있다. 밤에는 창문만 열어둬도 바람이 시원했다. 물론 폭염특보인 날엔 방에만 앉아있어도 땀으로 젖어, 여름의 무더위가 온전히 느껴진다. 오히려 뼈가 시리고 두통을 달고 사던 때보단 '사우나'를 다녀온 듯 개운했다.


"여름이 왔나 봐, 밥보다 국수가 생각나."

면을 좋아하는 공양주 보살님들은 여름이 되면 면요리가 더 생각나신다고 한다. 공양 메뉴에서 계절변화가 가장 잘 나타난다. 절에서 먹는 국수들은 뒷맛이 깔끔했다. 오신채를 넣지 않으니 마늘의 잔향이나, MSG를 많이 넣는 식당에서 느껴지는 '떨떠름한 뒷맛'이 없다. 대표적으로 자주 나오는 국수론 냉모밀, 콩국수, 비빔냉면이다. 공양주 보살님 중엔 과거 냉면집을 크게 운영해 대박을 쳤던 화려한 이력의 보살님이 계신다. 비빔냉면은 미원 하나 없이 감칠맛이 돌고, 늦게 공양을 떠도 면은 쫄깃하고 양념은 골고루 잘 배인다. 역시 대박집엔 이유가 있다.

특이한 국수 중엔 '수박국수'도 있었다. 처음엔 평범한 냉국수인 줄 알았지만, 수박을 넣어먹으라고 하셨다. 이미 국물에 수박을 갈아 채수를 내셨다고 한다. 시원함 뒤에 오는 은은하게 감도는 단맛에 기분이 좋았다. 국수가 나오는 날은 늘 두 그릇을 예약한다.


여름이면 먹는 면 컬렉션.


밭에서 바로 따먹는 가지도 별미다. 저녁예불이 끝나고 나서 법사님과 논의할 이야기가 있어 평상으로 갔다. 평상에 앉으면 감자, 고추, 가지밭이 보였다.

"저기 가면 가지밭 있지? 잘 익은 가지 몇 개 따오세요."

공양실에 드리려나 보다 싶어, 튼실한 가지로 대여섯 개를 따왔다. 따오자마자, 박수를 짝짝 치시며 법사님은 한 입 베어무셨다.

"가지를 생으로 먹어요??? 생으로 먹을 수 있어요?"

"우리는 오이처럼 가지를 생으로 먹어요. 이 맛을 모르다니~ 얼른 먹어봐!"

잘 익은 가지는 생각보다, 아삭하고 달았다. 덜 익은 건 끝 부분에 쓴맛이 났지만, 새파랗게 느껴지는 설익은 맛도 계속 먹다 보니 적응이 됐다.


절에서만 먹을 수 있는 '수고로운' 여름 디저트도 있다. 바로 '바늘로 깬 얼음커피와 얼음 말차'. 공양간 냉동실은 늘 음식과 재료들로 꽉 차있어, 얼음케이스가 있어도 얼릴 자리가 없다. 가끔 돌얼음을 사더라도 금방 동나거나 손님상에 나가곤 한다. 평소에 먹을 땐, 밀폐용기에 얼음을 크게 얼린다. 이 얼음에 대바늘을 꽂고 탁! 탁! 친다. 손이 미끄러질 땐, 도마나 나무 판때기를 위에 대고 친다. 그러면 얼음이 크게 여러 개로 조각난다. 이 얼음들은 국수를 시원하게 만들 때도 자주 쓰인다.


말차를 시원하게 먹고 싶어지면 여름이 더 깊어진다는 뜻이다. 절에 있는 말차는 일본으로 유학 갔다 결혼한 법우의 부모님께서 매번 사 오신다. 관광객에게 유명한 제품은 아니라 처음 본 제품이었다. 꽤 고급 제품인지, 다른 말차보다 향이 더 진하고 분말 특유의 맛이 없다.

큰 다관에 말차가루, 가루죽염과 뜨거운 물을 풀어 가루를 다 녹인다. 거기에 큰 얼음덩이를 풍덩 빠트린다. 뜨거운 말차는 뽀얀 우유향이 진하다면, 시원한 말차는 녹차 같으면서도 보드라운 맛이 난다. 매일 말차를 먹다가 법사님이 출타하시면, 중독되어 혼자서라도 이 말차를 타먹곤 했다. 법사님 손맛이 안 들어가서인지 혼자 먹을 땐, 몇 프로 부족한 느낌이다.


"요즘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 5~6천 원 쓰는 걸 대수롭게 생각해. 몇 푼 안 버는 사람들도 커피값은 쉽게 생각한다니까."

법사님은 법우들에게 커피에 쉽게 돈 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법회나 천도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대중들이 근처 카페에 갈 때도 거기에 돈 갖다 바치지 말라고 하셨다. 절에서 가까운 카페는 시골에 몇 없는 '트렌디한 카페'라 몇 년 사이 돈을 쓸어 모았다. 카페 사장님은 시골에서 보기 힘든 외제차 레벨로 2~3대 이상 끌고 다니신다. 대중들이 밖에 나가려고 할 때마다, 법사님은 직접 차를 만들어주신다.


"청빈하게 살아. 절에 이렇게 커피랑 차가 많은데."

청빈하다는 단어를 밖에선 전혀 들을 길이 없었다. 유튜브만 틀어도 '월천클럽', '하울' 등의 영상들이 넘쳐났다. 돈을 자랑하고 그만큼 쓰는 걸 성공이나 행복의 기준으로 세울 때도 많았다. 절에 사니, 몇 십만 원만으로도 거뜬히 살 수 있었다. 있는 음식과 물건을 잘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돈이 아껴지고 작은 것도 귀하게 느껴진다. 직장인에겐 일상인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어대는 '홧김비용'이 생기지 않는다. 절에선 ‘있는 대로’ 먹고 즐긴다.


우리 절엔 대중들이 늘어갈 때마다 마을에 있는 집들을 사며 *요사채를 늘려오고 있다. 최근에 마련한 요사채는, 퇴직 후 노년을 보내려고 집을 지으신 한 거사님의 집이다. 거사님께선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후, 21일 동안 그 집의 마당에서 매일 저녁 예불대신 금강경 독경을 했다. 마당엔 10명이 앉을 수 있는 큰 바위가 있다. 저녁마다 그 바위에 다 같이 앉아 거사님을 생각하며 금강경을 독경했다. 낮동안 햇빛이 내리쬐던 바위는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 바위에 앉으면 찜질하듯 온몸이 따뜻해진다. 가끔, 법사님과 보살님들은 ‘좋다~’고 감탄하며 누워계시다 살짝 낮잠이 들기도 하셨다.

*원래 스님들이 거처하는 집을 말하지만, 수행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요사채라고 부르곤 한다. - 출처 : 불교신문


어떤 날은 독경이 끝나면, 법사님께서 불교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 구절을 뽑아 읽어주시곤 했다.

・온 세계에 대해서 무한한 자비를 행하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자비를 행하라.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신성한 경지라 부른다. p.60

・분수에 알맞은 곳에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고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p.98

・믿음이 있고 배움이 있는 지혜로운 이가 궁극의 경지에 이르는 분명한 길을 보고, 무리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무리에 맹종하지 않으며 탐욕과 혐오와 분노를 삼킨다면, 그는 바르게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p.134

- 법정 옮김, <숫타니파타> 중에서

구절에 대한 분명하거나 직접적인 해석을 하시진 않지만, 문장만 들어도 정곡이 찔린 기분이다.


"사람은 자신의 수행 수준에 따라 보여요. 수행자가 그림을 그린다면 내 수준에서 보이는 것만 그릴 수 있어요."

처음 이 절에 불상을 들여왔을 때 이야기를 해주시며, 불상을 만드는 제작자의 수준에 따라 불상의 느낌이 다 다르다고 했다. 지금 절에 있는 불상 제작자도 법사님과 몇 시간을 차담한 뒤, '드디어 알겠어요' 하며 깨닫고 법사님이 원하는 느낌을 담았다고 한다. 퉁퉁하고 원만한 느낌만 담긴 흔히 말하는 '인자한' 부처님이 아닌, 눈매는 날카롭고 예리하되 포근한 분위기가 풍긴다.


절에 있는 불상을 보면 법사님과 스님이 떠오른다.

그런 뒤, 법사님이 찍으신 스님들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법사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법사님의 수준이 보인다. 풍경을 찍든 인물을 찍든 특유의 아우라를 잘 포착하신다. 내가 존경하는 비구니 스님이 찍힌 사진에도 당시 스님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비구니계를 받으신지 얼마 안 되셨을 때였던 것 같다. 사진만으로도 스님의 '초발심'이 느껴졌다. 3000배 끝나고 세운 나의 '소명'이 다시금 생각났다. 나의 초심, 배경화면에도 써둔 ‘Day 1 Mentality’를 잃지 않겠다는 마음을 되새겼다.

 
<숫타니파타>의 대표적 구절인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처럼. 그 날밤, 스님 사진에서 느낀 장엄한 기분에 쉬이 잠을 들 수 없었다.


해가 길어지는 여름 저녁엔 예불이 끝난 뒤 곳곳의 요사채에 나있는 잡초를 뽑으러 간다. 날파리들이 얼굴에 달라붙어, '양봉모자'처럼 그물망이 달린 모자와 토시, 장갑을 챙겨 들고 간다. 비가 온 다음 날은 꼭 빠지지 않고 잡초를 뽑으러 간다.

"비 오는 날에 이렇게 잡초가 잘 뽑혀요. 잡초도 너무 늦게 뽑으면 안 돼요. 이렇게 땅이 젖어 있어 잡아당기기만 해도 뽑힐 때 뽑아줘야 해요."

땅이 촉촉하면 호미를 쓰지 않아도 맨손으로 잡초가 쉽게 뽑힌다. 법사님의 말씀엔,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문장도 곱씹어 보면 늘 깨우침이 있다. 잡초를 뽑을 때마다 열리는 '법사님과의 토크쇼'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다.


"밖에 사는 보살님들이 늘 전화 와서, 퇴직하면 절 앞에 집사서 살고 싶다고 그래요. 근데, 절에 사는 것도 복이 있어야 돼요. 아무리 절에서 며칠 지내라고 설득해도 안 오는 사람이 있어요. 다 자기 복그릇에 따라 돌아가는 거야."

지금 내가 누리는 절 라이프는 이번 생에 놓칠 뻔한 '복'이다. 예전엔 법사님이 자고 가라 해도, 괜히 어색하고 불편해서 꼭 당일치기를 했다. 한두 번씩 왔다 갔다 하다 정이 들고, 100일 기도가 끝나고, 일을 돕다가 얼떨결에 절에서 모든 계절을 누리고 있다. 진작 들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잡초처럼 땅이 충분히 젖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예전에 들은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철수생각' 코너에 잡초 뽑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잡초 뽑기란 용어는 도서관에서 통용되는 전문용어 중 하나인데, 낡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장서들을 골라내어 없애는 일을 가리킵니다. 도서관이라는 한정된 장소에 갈수록 책이 늘어나기 마련이어서, 효율성과 비용감소를 위해 주기적으로 잡초를 뽑아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중략) 사실, 잡초 뽑기가 필요한 장소는 도서관이나 집안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낡고 시대에 떨어지는 생각들을 골라내어 빈자리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라디오에선, 마음속 낡은 생각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잡초 뽑기로 비유했지만 이 영역 중 하나로 '나를 갉아먹는 불필요한 생각과 마음'도 뽑아내야 한다고 느껴졌다. 가끔 들어오시는 보살님이나 법우들을 만나면, 나보고 '얼굴이 좋아졌다, 화장 안 해서 피부가 좋은가?'라는 소리를 자주 한다. 그럴 때마다, 법사님은 눈동자만 굴려 나를 쓱 쳐다보시곤,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단순히 좋아진 수준이 아니지."


내가 모르는 사이, 서울에서 살면서 나를 꽉 막고 있던 생각과 감정들의 잡초가 뽑혀 나갔나 보다.


아로니아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절로 가는 언덕길에 일찍 떨어져 터진 초록감들을 쓸다 보니, 어느새 여름의 끝자락에 와있다.


"저 아래 요사채에 불 켜져 있다! 보고와."

하루는 새벽 예불이 끝난 뒤, 스님께서 불 켜진 요사채를 보고 오라고 하셨다. 예불이 끝난 새벽 4시 50분은, 여름이라도 아직 하늘이 새까맣고 시골길이라 한 치 앞도 잘 안 보인다. 법사님과 같이 핸드폰 플래시로 길을 밝혀 요사채로 내려갔다.


"하늘 봐봐라. 별이 쏟아진다."

새까만 하늘엔 별이 수 놓여있다. 한여름엔 별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날이 진짜 좋은 날은 은하수도 보인다고 한다. 요사채에 가서 불을 끈 뒤, 다시 절로 올라오는 길. 법사님과 나는 땅이 아닌 하늘만 보고 걸어 올라갔다.


"오늘이 별 볼 수 있는 여름 마지막 날이 될 것 같다. 돗자리 갖고 와요. 평상에서 누워서 봐요."

법당 앞에 있는 평상에 이슬이 내렸다. 돗자리를 깔고 법사님과 함께 냅다 누웠다. 눈에 익으니 저 멀리 작은 별들이 더 잘 보였다.


"어! 법사님, 저기 별 움직이고 있지 않아요? 별똥별 같은데요?"

"별은 늘 움직이고 있지."

눈에 익은 밤하늘엔 아주 작은 별똥별들이 드문 드문 떨어졌다.


"법사님, 제가 얼마 전에 서울 갔을 때 영화를 보고 왔는데요. 한국이 싫어서, 행복 찾으러 뉴질랜드에 영주권 따러 간 이야기예요. 그 영화를 보니, 작년의 저라면 펑펑 울었을 텐데 지금 보니 굳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최근 본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내가 재밌게 본 소설 원작이라 더 기대가 컸다. 이미 꺼진 전구에 건전지를 갈아 끼우며 살던 시절에 본 소설이라 영화에 대한 기대도 컸다. 주인공 '계나'가 서울에서 살던 모습과 행복의 지향점이 과거의 나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내 주변에 사는 친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남았다. 그리고 든 생각. 계나가 한국이 싫어 뉴질랜드에 간 것처럼, 난 절에 온 거라고.


"그 영화를 오빠랑 같이 보고 나서, 둘 다 '계나도 절에 와야 했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법사님은 맞장구를 치며 말씀하셨다.

"행복은 뉴질랜드나 호주나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에요. 어디서 살든 행복을 찾을 순 있지. 절에 와야 한다는 말이 딱 맞네. 예전에 한 법우랑 같이 이렇게 누워서 별을 봤거든. 그 법우가 ‘하늘을 제대로 쳐다본 게 처음이다’라고 하더라.”

그밖에, '결혼은 언제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에 대해 꽤 긴 시간을 나눴다. 점점 해가 뜨고 있었다.


꼭꼭 씹어먹듯, 올해는 제대로 여름의 맛을 느꼈다. 무더위에 지쳐 땀으로 법복이 다 젖던 계절도 지나가고 있다. 여름이 지고 청량한 가을이 오고 있다.

평상에 누워 바라본 여름 끝자락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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