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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Aug 30. 2024

태풍이 지나가고, 3000배가 끝났다

산티아고 순례길 대신, 3000배 100일의 여정(5)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고 있었다. '이가 간지러운데.' 양치를 끝내고 앞니를 만졌다. 앞니 두 개가 쑥 하고 빠졌다. 오랫동안 교정을 해서 전반적으로 치아 신경이 약해졌다. '신경이 약해져서 빠졌나?' 앞니가 빠진 자리를 자세히 보니,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듯 작은 앞니가 새싹처럼 두 개가 나고 있었다. 치과에 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꿈에서 깼다.


앗, 이 빠지는 꿈이라니. '대표적인 악몽'으로 유명한 꿈이라, 꿈 해몽을 찾아봤다. 정확히 내가 꾼 꿈과 똑같은 꿈의 해석은 없었다. 보통 주변 지인이 돌아가시는 꿈으로 유명해 가족들에게 잘 지내는지 연락했다. 그날 오후, 법사님께 꿈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법사님, 제가 앞니가 빠진 꿈을 꿨는데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앞니가 쑥 빠졌는데, 거기에 작은 이 두 개가 나고 있었어요."

"기분이 어땠어?"

"보통 악몽이라고들 하는데, 시원했어요. 정말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요."

"새 몸 받는 꿈이네."


새 몸 받는 꿈. 수행을 정진하는 많은 대중들이 희한한 꿈들을 자주 꾼다고 한다. 갑옷을 무한히 벗는 꿈이라던가, 때를 밀어도 밀어도 계속 나오는 꿈처럼. 기존에 나에게 쌓인 업이나 안 좋은 것들이 나가떨어지듯 꿈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3000배도 어느새 후반을 달려가고 있었다. 극악의 고통은 많이 줄었고, 몸의 고통에 익숙해지고, 절 소요시간도 7시간 30분에서 5시간 30분으로 훌쩍 줄었다.



하루 3000배가 끝나면, 오후엔 산책을 했다. 마을을 돌거나 동네에 있는 호수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하루종일 다리를 썼는데도 산책을 하고 나면 다리가 풀렸다. 혼자 갈 때도 있었지만, 종종 친오빠와 산책을 같이 했다. 산책하면서, 그날 절하는 동안 든 생각을 '대나무숲'처럼 풀었다.


 "이전 회사사람이 나한테 했던 행동이, 지금에서야 갑자기 화가 났다? 근데 이제 와서 '그때 왜 그러셨어요?' 할 순 없잖아?"

"나도 절하다 옛날 생각나서, 법당에서 혼자 화도 나고 많이 울기도 했지."

오빠도 예전에 3000배 했을 때 든 생각들을 공유했다. 나에게 든 생각들이나 감정들이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어느 날은 문득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 절에서 49재를 지낸지 벌써 7년 차가 되었다.

"오늘 절하다가 할머니 생각이 났어. 내가 생각만큼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3000배 하러 절에 들어오기 전, 상담을 받을 때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딱히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심리검사결과만 보고 선생님은 내가 할머니 손에서 컸을 수 있겠다고 짐작하셨다.


"부모님이 맞벌이셨어요?"
"네, 할머니께서 키워주셨어요."

"그랬을 거라 생각했어요. 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약속이 있으면, 늘 두 시간 전에 준비를 끝내고 앉아서 기다리셨어요. 조급하고 불안감도 높으신 분이었던 것 같아요. 친화력은 좋으셔서 새로운 장소를 가면 늘 모르는 사람들께 말을 거셨어요. 그리고, 추측성 질문을 많이 하셨죠. '엄마 아빠가 싸웠지? 엄마가 아빠한테 뭐라고 했지?' 라면서요. 그 질문이 늘 스트레스였어요."

"음, 그렇군요. 불안도가 높다고 하셨잖아요. 할머니랑도 연관이 있을까요?"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손에 컸으니, 저도 늘 미리 하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일이 잘못될 거 같다는 상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상담 이후 내가 가진 불안이 할머니 영향이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도가 높아진 이유가 명확한 사건들도 있었지만, 원인 모를 불안은 할머니와 살면서 학습했을 수도 있겠다고.


"네가 그런 생각이 들 때, 네 안의 아이를 지켜봐. 스님이 알려주신 관하는 법으로 네 마음을 그대로 지켜봐. 예를 들어, (딱밤을 때리며) 아프지? 이걸 아프다고 느끼기 전에, 그 고통을 지켜봐. 너의 감정이 올라올 때도 느끼기 전에 있는 그대로 봐봐."


 다음 날, 절하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살아온 삶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부자였던 다섯 아들집에 어릴 적부터 더부살이를 하셨다. 그중 몸이 불편한 막내아들과 결혼하셨다. 늘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하고 집안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모든 일을 다 해내셨다. 두 남매를 낳고 늘 먹고사는 문제로 허덕이셨다. 가난이 싫었던 아들은 가난의 기억 때문인지, 어른이 돼선 있던 물건도 늘 여러 개씩 사두는 습관이 있고, 어릴 적 먹고 싶었던 찐빵은 가게가 보일 때마다 다 먹을 수 없는 양만큼 샀다.

할머니의 눈치 보는 습관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할머니를 미리미리 움직이게 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에서 태어난 아들 역시 늘 분주하게 움직였다. 멈추면 죽는 줄 아는 게임캐릭터처럼. 불안도 유전되는 걸까? 대대손손 타고 온 불안이 나에게로 내려왔다. 알 수 없는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던 내 안의 아이를 발견했다.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신경 쓰고,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올 뜻밖의 상황에 플랜 B, C, D까지 세우던 나의 내면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불안은 결국 '안정'과 ‘안정을 바탕으로 한 사랑’을 원하는 내가 있었다. 그 안의 나를 보고 나니, 편안해졌다.


틱낫한 스님의 책 <화해>에선 '내 안의 아이에게 말을 걸어, 이곳으로 올라와 지금 이 순간의 삶과 친구가 되어 보라고 말하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렀을 때 과거의 트라우마로 고통받지 않는다고.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아이는 늘 걱정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런 문제도 위협도 없다. (중략) 무엇 때문에 계속 걱정하고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내 안의 아이에게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 주어야 한다. p.102

우리 안에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온 요소들, 이를테면 부모나 조상, 주변 환경에서 물려받은 요소들을 모두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남들에게 가혹한 것은 대체로 다른 뿌리, 다른 요소에서 발원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p.110
아마 아버지가 그렇게 우리를 나쁘게 대한 건 자신이 불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사랑과 이해를 느끼고 표현하는 교육도 못 받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겪었을 불행을 이해한다면 아버지에 대한 화가 가라앉는다. p. 113

- 틱낫한, <화해 : 내 안의 아이 치유하기> 중에서 -


틱낫한 스님의 말들은 나를 꿰뚫어 본 것 같았다. 궁색할 만큼 아끼고 약속 두 시간 전부터 유난 떠는 할머니와 그 모습이 싫어 할머니를 나무라던 아버지. 그 모습이 난 싫었다. 아버지가 늘 할머니를 보살피면서도 그렇게 할머니를 나무란 건 ‘가난’이 떠오르는 행동 때문이었고, 할머니는 오랫동안 배인 습관을 버릴 수 없었다. 난 할머니가 싫었던 게 아니라 그 갈등이 날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느꼈다. 할머니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나에게 내려온 요소들을 보고 나니, 아버지도 할머니도 이해됐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만난 내 속의 아이는 움츠린 어깨를 폈다.



어느새 3000배 100일 기도가 단 일주일을 남기고 있었다. 다음 날 마실 물을 전기포트에 올려놓고 끓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뭐 해?" 법사님이 다가오셨다.

"이제 일주일 남았지? 일주일 동안은 최대한 묵언하면서, 내가 엄마 뱃속에 오기 전에, 이 세상에 온 뜻이 뭐였는지 보세요."


내가 이 세상에 왜 왔을까? 다음 날, 3000명의 부처님 명호에 집중하여 한 배 한 배 더 정성스럽게 절을 했다. 엄마 뱃속에 있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쩌다 이 집안에 왔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둘째 생각이 없었던 엄마는 나팔관을 묶었다가, 내성적인 오빠에게 친구가 필요하단 생각에 다시 풀었다.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운에 맡겼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다. 사실 오빠의 친구가 아닌, 결혼 후 외로웠던 엄마에게 친구가 필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이 끝나가고, 마음의 고통이 컸던 엄마, 불안을 오래 안고 산 할머니 등 우리 집안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마음을 털어놓았던 수많은 여성들이 점차 떠올랐다. 그리고 긴 항해를 끝내듯 태풍이 지나간 맑은 바다 위에 노를 젓고 있는 내가 보였다.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엔 많은 여성들이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나와 같이 이러한 여성들이 자신의 맑은 물이 담긴 우물을 열 수 있도록 여성 커뮤니티를 언젠가 만들고 싶단 소명을 세웠다.

 

나중에서야 법사님이 주신 과제가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란 '화두'임을 알았다. 그리고 내게 떠오른 청정한 바다 이미지가 나의 '본래면목'이지 않았을까.


절이 끝나고, 불명을 받았다. 기존의 나의 이름은 계속 성장하는 '상승'의 의미를 담았다면, 불명은 '크고 넓게 공덕을 베풀어라'라는 뜻의 확장하는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3000배가 끝나고 며칠 후, 오빠가 물었다.

"다시 3000배 하기 전으로 돌아갔을 때, 무릎이 이만큼 아플 걸 알아도 할 거야?"

"음, 할 거 같아."

"그럼 됐어."

절이 끝난지 며칠밖에 안 지났는데도 전생 같은 기분이었다. 3000배가 끝나고, 몸무게를 재보니 10kg가 빠졌다.


"내가 얘 10kg 뺐어요! 이거 홈쇼핑에 팔아야 돼. 3000배 다이어트."

법사님께 10kg 빠졌다고 하니, 다른 보살님께 뿌듯하다는 듯 자랑하셨다. 그리고, 몸 풀어야 한다며 계속 밥을 먹이셨다. 100일이 지나야 무릎이 낫는다고 하셨다. 병원에선 며칠만 쉬면 된다고 그랬고, 법우들은 두 달, 보살님들은 100일 지나니 딱 나았다고 했다. 절 끝난지 5개월 반이 지난 지금도 아직 98%만 회복되었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낫질 않아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평생 절뚝이며 사는 건 아닐까? 그러나 알게 모르게 멀쩡히 걷고 있고 조금씩 뛸 수도 있었다. 아직도 무릎이 휘청거리고 예전과 같은 건강한 상태까진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지금 경을 읽거나 참선을 하여 부지런히 고행하다가 몸이 조금 아프면, ⌜경을 읽고 참선하다가 이렇게 되었다⌟ 하지만, 만일 이런 수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를 것이며, 이런 수행을 하는 연고로 오늘까지 이른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 자비도량참법 제 一권 중에서 -


경전에 나온 말씀처럼, 법사님이 절 끝나고 오빠에게 '이제 살았다'고 몰래 말씀하신 것처럼, 3000배가 아니었다면 난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처님 오신 날 앞두고 절에 할 일이 많거든요. 절에서 몸도 회복하고 일도 도와요."

절이 끝나자마자 법사님은 '보림'기간을 제안하셨다. 사전적 의미로는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닦는 불교수행법'이란 뜻이다. 3000배로 수행하면서 바뀐 부분을 체감하고 확인하기까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절하는 동안 다 볼 수 없었던 바뀐 점을 보림기간에 보는 것이라고 한다.


봄이 올 때 절이 끝났고, 부처님 오신 날까지만 보림기간을 가지려고 했다. 5월이 지나고, 6월, 7월까지 추가결제하듯 한 달씩 추가하다 벌써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주변 지인들이 묻곤 한다.

"생각보다 절에 오래 있네요?"

"갭이어예요."

 어쩌다 절에 눌러앉았지만, 3000배 이후 지금의 시간은 다시 내 삶에 오지 않을 '조정시간'이다. 언제 갭이어가 끝날지 몰라도, 지금도 이어지는 보림동안 3000배 이상의 경험과 소소한 깨침들이 쌓이고 있다. 서울에서 산자락으로 삶의 터전만 바뀌었는데도 나의 에너지들이 교환되는 느낌은 참으로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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