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대신, 3000배 100일의 여정(3)
수행파트너인 도반은 함께 불법을 배울 뿐만 아니라, 나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존재다. 3000배는 흙탕물이 든 병을 흔드는 것과 같다고 한다. 모래, 자갈, 진흙 등을 물병 안에 넣어 두고 살다가, 절을 하면 가라앉은 흙이 흔들려 올라온다. 내가 묻어두고 산 감정, 기억,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절할 때, 내 곁에 있던 도반들은 내가 감추고 살았던 것들을 바로 보게 만들었다.
3000배 100일 중에 친구A가 B법우를 데리고 일주일간 기도를 들어왔다. 몇 달 전 처음 이 절에 왔던 친구A는 그때 기억이 좋아 B에게도 이곳을 소개해주고 싶어 함께 오게 되었다. B법우는 절에 처음 왔지만,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B법우는 올 때부터 잔기침을 하고 있었다. 알러지인지, 감기인지 헷갈려 물어봤다.
"감기 걸렸어요?"
"감기는 아닌 거 같은데, 목이 건조한지 기침이 나네요."
보살님들께서 B법우에게 마스크를 씌우라고 나에게 지령을 내렸다. 마스크가 없다길래 절에 있던 마스크를 찾아 줬다. 마스크를 받아 들고서도, 몇 번 쓰더니 자주 벗고 다녔다. 다음 날 아침에도, 마스크 없이 새벽 예불에 올라왔다. 또다시, 법당에 있던 새 마스크를 꺼내 줬다.
다음 날, B법우는 기침이 심해졌고 열이 났다. 감기였다. 처음 온 날만 셋이서 방을 같이 쓰고, 다음 날 A와 B는 다른 방으로 올렸다. 아뿔싸, 하루 만에 감기가 옮았다. 일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하는 감기가 하필 이때 걸려버렸다. 잠결에 머리가 뜨거워 애드빌을 먹고 잠들었다. 새벽에 눈뜨니, 열은 가라앉았지만 목이 찢어질 듯 건조하고 눈이 퉁퉁 부어 무거웠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노랬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법당으로 올라갔다. 컨디션이 안 좋아지니 절 속도도 확연히 느려졌다. 절하면서 B법우에 대한 괘씸한 마음이 올라왔다. 긴 코로나 시국을 거쳐오면서도 '기침하면 마스크를 써라'는 국룰을 무시한 느낌이었다. B법우가 감기를 부정하며 했던 말과 행동이 떠올랐다. 절을 하면 할수록, 그라데이션으로 분노가 더 쌓여만 갔다. 안 그래도 무릎이 아픈데 감기까지 덮치니 몸에 돌덩이 하나가 얹어진 기분이었다. 5시 45분, 원래대로라면 아침 공양 전까지 1200배는 거뜬했지만 1000배를 겨우 마쳤다.
"나 감기 옮았어."
공양 줄을 서면서 친구A에게 말하니, A도 B도 미안해했다. B법우에겐 절에 있던 비상약을 다 꺼내줘서인지, 그 사이 감기가 낫고 있어 얼굴이 좋아졌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미역국과 삼켰다. 얼굴이 팅팅 부어, 옆에 앉은 보살님이 나를 몰라보셨다. 겨우 밥을 다 먹고 약 먹고 모든 감정은 다 제쳐두고 바로 잠을 잤다. 잠을 자니 조금 괜찮아졌다.
오후 2시 30분, 남은 절을 해치우려 법당으로 올라갔다.
"병원 가서 링거 맞고와. 다른 사람한테 옮기면 안 되니까."
나보다 먼저 100일 기도 들어오신 M보살님께서 링거를 권유하셨다.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차로 30분, 링거 맞는 데 1시간, 돌아오는 데 30분. 최소 2시간이 걸린다. 돌아오면 저녁 공양시간이라, 저녁 먹고 6시나 되어야 다시 절을 할 수 있다. 남은 절은 700배. 총 1시간 30분이 걸리니, 절이 끝나면 7시 30분. 생각만 했을 땐 까마득한 시간이다.
"약 먹으니 좀 괜찮아졌어요."
그럼에도 보살님은 밀어붙이셨다. 하필 그날 법사님께서 출타 중이시라 절에 안 계셨다. 100일 기도 기간 동안은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 '마장이 낀다'랄까. 옛말에,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으니 기도 중에 외출하지 말고 최대한 몸을 아끼라고 한다.
고민하다 법사님께 여쭤봤다. 다녀오란 말에, B법우의 차를 타고, 30분짜리 링거를 맞고 왔다. 감기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진통제 성분이 함께 있어, 무릎 통증은 나아졌다. B법우는 절에 감기를 퍼트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귤 한 박스를 공양간에 돌렸다. 저녁예불 이후에도, 나의 남은 절을 기다려주며 함께 기도했다. 덕분에 7시에 절이 끝났다.
B법우의 행동에 원망심이 누그러졌다. 사실, B법우에게 화났던 마음 뒷면에는 내가 더 B법우를 잘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B법우는 감기 기운이 올라갈 때, 농담처럼 '집에 가고 싶다'라고 했다. '그때 바로 보낼 걸', '처음부터 방을 분리해서 감기가 더 안 퍼지게 할 걸', '공양 시간에 방에서 밥 먹게 할 걸' 등 더 격리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도 컸다.
절하면서 계속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왜 B법우에게 '그라데이션 분노'가 일어났을까? 100일 기도기간 동안 친구를 잘 챙길 수 있는 상태도 아닌데, 괜히 불러 절에 피해를 준 것 같았다. 그 이후 법사님부터 스님까지 감기가 싹 다 옮았다. 그래서, 내가 느낀 나의 잘못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감기가 옮아 힘든 몸, 절하느라 힘들었던 마음, 스스로 느낀 죄책감까지 모두 B법우의 잘못만으로 돌렸다. 감기가 나을 때쯤, 나의 잘못을 참회하며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감기는 나았으나, 수행은 계속되었다.
"친구 때문에 너만 손해다. 네 친구 때문에 다른 사람은 무슨 잘못이냐. 100일 기도할 땐 친구 데리고 오는 거 아니다. 그 친구는 감기가 금방 낫지 않았냐?"
M보살님의 잔소리는 감기의 시작과 끝을 내내 채웠다. M보살님은 나보다 50일 먼저 기도를 들어오셨다. 보살님이 감기에 걸릴까봐 걱정되기도 하셨고, 나에 대한 걱정의 마음도 크셨을 거다. 염려하는 목소리를 매일 들으니 잔소리로 느껴졌다. 링거를 맞고 온 날엔, '링거맞고 나선 샤워하는 거 아니다'라며 씻지 말라고 방까지 찾아오셨다. 공양할 땐, '감기엔 미역국이 아니고 뭇국을 먹어야 한다'며 미역국을 가져가고 뭇국을 주셨다. 법당에선 '추우니 털모자를 쓰고 해라'라는 등 절하는 동안 계속 말씀을 거셨다.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주 많이. 문득, 그 모습에서 우리 엄마를 보았다. 옛날의 예민했던 엄마.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엄마는 어른이 되어서도 잔병치레가 많았다. 아플 때일수록 더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간섭하셨다. 사실, M보살님도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셔서 회복이 필요해 절에 100일 기도를 들어오셨다. 아파서 고생하는 나를 보니, 더 걱정되는 마음이 크셨을 거다. 보살님의 잔소리에, '엄마에게 시달렸던 나'를 보지 못한 채 '잔소리'에만 집중했다. 법당에서 절할 때 보살님의 잔소리가 계속될 때면 속으로 '점심 공양 때, 절할 때 말 걸지 말라고 말씀드릴 거야!'라고 생각하다가도, 절이 끝나면 그 마음이 사라진다.
이 역시, 나의 무의식에 쌓여있던 기억이 스트레스를 더 크게 만들었다. 보살님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니, 보살님에게 짜증 났던 마음도 애틋함으로 바뀌었다. 나중엔 보살님의 말들이 애정 어린 응원으로 들렸다. M보살님의 기도가 끝나고 회향하시는 날, 보살님을 꽉 끌어안았다.
"보살님, 보고 싶을 거예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묻어두고 살았던 기억들을 꺼내주셨기 때문일까. 도반 덕분에 내가 덮어두고 살았던 과거의 상처까지 달래는 경험이 됐다.
반면,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처럼 3000배를 해낼 힘을 주었던 도반이 있다. 방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 법우(이하 룸메이트)는 3년 기도를 들어와, 동시에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난 3년 기도 들어온 법우 중에 유일하게 3000배 안 하는 법우가 될 거야."
3년 기도 들어온 법우에게 법사님은 꼭 3000배 100일을 시키셨다. 룸메이트는 3000배 100일은 절대 안 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법사님 역시 '안 시켜 걱정 마' 라며 안심을 시키셨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 기간이 끝나고 마음의 변화가 온 듯하다.
"저도 내일부터 옆에서 같이 할까 봐요, 법사님!"
자려고 방에 누워있었을 때, 밖에서 법사님과 룸메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아침, "나랑 약속했지? 내일부터 시작해."
법사님께서 다음 날부터 룸메이트에게 3000배 100일을 시작하라고 하셨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는지, 당황하던 법우는 일단 알겠다고 했다.
3000배를 시작한지 27일 차 되는 날, 절 파트너가 생겼다.
"똑같이 시작하고 똑같이 쉬고 똑같이 끝내."
법사님께선 3000배가 끝날 때까지 둘의 속도를 맞추라고 하셨다. 이미 나만의 패턴에 잡혀버려 곤란했다. 자신의 페이스가 아닌 다른 사람과 속도를 맞춰 절하면 혼자하는 것보단 훨씬 난이도가 높다. 위기가 될지, 기회가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새롭게 절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음 날을 맞이했다.
도반과 함께하는 첫날, 룸메이트는 아주 쌩쌩한 상태였다. 혼자 절을 하던 새벽은 몸이 풀릴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쌩쌩한 도반과 함께하니,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무릎이 풀렸다. 같이 하니 속도도 일정하게 유지되어 훨씬 덜 힘들었다. 혼자 할 땐, 속도가 들쭉날쭉해 숨이 빨리 찼다. 룸메이트는 3년 간 살면서 매일 죽비에 맞춰 일정한 속도로 절한 경험이 몸에 배어 있었다. 덕분에 같은 속도로 수월하게 절할 수 있었다. 그날 새벽엔 무려 1400배까지 절을 했다.
둘째 날, 룸메이트는 급격하게 힘들어했다. 이틀 연속으로 3000배를 해본 적은 처음이라 했다. 바로 속도가 느려져, 새벽에 1000배에서 끝났다. 예상했던 상황이라, 룸메이트의 컨디션에 맞췄다. 며칠이 지나고 우린 서로의 속도, 쉬는 시간, 컨디션의 변화를 맞추는 법을 터득했다.
새벽 2시 10분, 알람이 울리면 내가 먼저 일어나 이불을 개고 옷을 갈아입는다. 전날 미리 보온병에 담아둔 따뜻한 물을 컵에 따른 뒤, 룸메이트를 깨운다. 새벽에 일어나는 걸 늘 힘들어했으나 깨우면 잘 일어났다. 룸메이트가 준비하는 동안 난 바나나를 먹으며 기다린다. 2시 40분 법당으로 올라간다. 법당 문을 열고 전기난로를 켠다. 무릎을 데운 뒤, 눈짓을 하고 같이 절을 시작한다.
절을 맞추며 서로의 습관도 알고 좋아하는 간식도 알게 되었다. 단짝이 생긴 기분이었다. 물론, 예민해지는 날도 있었다. 3000배를 하면 흙탕물이 흔들릴 뿐만 아니라 몸의 감각도 깨어난다. 감정도 예민해지고 오감도 더 발달된다. 들리지 않던 소리가 크게 들리고, 늘 나던 향기가 신경 쓰인다. 24시간을 붙어있으니 각자의 시간이 필요한 날도 있었다. 그럴 땐, 말을 아끼고 서로의 감정을 존중했다.
서로가 울컥하던 때가 와도 한 번도 싸우진 않았다.
법사님이 왜 속도를 맞추라고 했는지 이해되는 ‘아하 모먼트’가 찾아왔다. 나만 달려 나가지 않고, 이 세상을 다른 이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몸이든 마음이든 고통이 찾아와도 도반이 옆에 있으니 서로를 위로하고,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도 스스로 깨닫는다.
초반에 룸메이트의 컨디션에 맞추느라 절이 늦게 끝나면 억울한 기분도 들었다. 매일 같이할수록 ‘절은 수행이지 게임이 아니며 빨리 끝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를 깨닫기도 했다.
더불어,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내가 끝까지 혼자 했다면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포기하고 싶어 졌을 것 같다. 그러나, 옆에서 절을 함께 하니 ‘한 배만 더 하고 쉬자’라는 생각에 계속 나아갔다. 도반 덕분에 하루하루 쉽게 지나갔다.
그러나, 익숙해지던 몸도 ‘죽겠다’고 소리치는 날들이 찾아왔다. 3000배 100일 동안 3번의 고비가 찾아온다던 ‘절 선배’들의 말은 순거짓이었다. 겨울이 깊어지고, 추위가 심해지는 만큼 100만 번의 고비들이 찾아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