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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Aug 23. 2024

위기가 3번만 온다고 했는데, 벌써 100만 번의 고비

산티아고 순례길 대신, 3000배 100일의 여정(4)


“올 한 해 고생했어요. 요즘 뭐해요?”

“절에서 3000배 중이에요.”

“오 3000배? 어때요?”

“무릎이 너무 아파요.”

“아픈데 왜 해요? 병원 가요. or 무릎 아프다는 거 웃기다ㅋㅋㅋ“


3000배를 한지 한 달이 다되어 갈 때쯤, 한 해도 지고 있었다. 지인들과 연말 인사를 나누며 내 근황을 전했다. 절을 한 번도 안 해본 이들이나 다른 종교인들에겐 3000배가 어떤 건지 가늠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이렇게 계속 아플지 몰랐기에.


21일이면 적응된다고 들었는데, 왜지? 무릎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형태의 통증들이 찾아왔다.

역시 가장 고통이 큰 건 무릎. 처음으로 아파서 눈물이 났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날씨는 영하로 쭉쭉 떨어졌다. 이번 겨울은 덜 춥다고 하지만, 산자락에 있어서 남부지방인데도 서울보다 추웠다.


3000배 선배, 친오빠는 절하면서 ‘3번의 위기’가 온다고 했다. 내가 생각한 첫 번째 위기를 맞은 날이었다. 새벽일수록 절방석은 얼음장같이 차다. 그날따라 손바닥이 얼 것 같았다. 무릎도 너무 시렸다. 평소라면 몸의 온기가 오르고 300배가 지나면 무릎이 좀 더 유연해진다. 그전까진 무릎이 굳어 손바닥으로 짚고, ‘버핏테스트’와 같은 자세로 일어난다. 그날따라 500배, 700배가 되어도 무릎이 딱딱하고 힘이 들어가질 앉는다. 절은 반동을 받아 무릎과 발바닥, 복부의 힘이 3박자가 맞을 때 잘 일어나진다. 아무리 발바닥에 힘을 줘도 무릎이 정신 차릴 생각을 못한다. 새벽예불이 끝날쯤, 900배까지 했는데도 계속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되겠어. 예불이 끝나고 다른 대중이 나갈 때, 잠시 나갔다. 무릎이 안 풀릴 땐, 조금이라도 걸으면 풀린다. 화장실도 들렸다가 장갑과 손목 보호대를 챙겨 법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예불이 끝난 뒤라 법당엔 개인 기도를 하고 있는 친오빠뿐이었다. 900번 땅을 짚으니 아픈 손목과 시린 손을 위해 장갑과 손목 보호대를 차고 다시 시작했다. 다시 백배쯤 지났으나 아까 상태에서 나아진 게 전혀 없었다. 영원히 못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오늘 하루 남은 2000배를 이렇게 사족보행으로 땅바닥을 기어가야 하나 싶어 울컥했다. 사실, 오빠만 있어 마음이 더 풀린 걸 수도 있다.


콧물을 마시고 있으니, 앞자리에서 기도하던 오빠가 “왜? 힘들어?” 하며 돌아봤다.

“(훌쩍) 무릎에 힘이 안 들어가. 못 일어나겠어. (엉엉)”

오빠가 물어보니 갑자기 더 눈물이 쏟아졌다.

“추워서 그래. 좀 걸어.”

“걷고 왔는데 ㅠㅠ”

울면서도 절을 계속 멈추지 않았다. 지금 멈추면 절이 밀린다는 생각과 서러운 마음이 공존했다. 그날 새벽, 아침 공양 전까지 한 번을 제대로 일어서지 못한 채 1200배를 했다.


그날 아침,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법당에 햇살이 쏟아졌다. ‘아파도 힘내서 일어나 봐야겠어!’

100배쯤 지났을까. 무릎이 조금은 풀렸다. 온 힘을 다해 무릎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찌릿-

무릎에서 시작된 통증의 전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렀다. 엇, 근데 일어섰다! 이렇게 두세 번을 하니 무릎이 부드러워졌다. 기뻐서 바로 오빠한테 카톡을 했다.

‘진짜 추워서 그런가 봐. 일어섰다 히히’

그렇게 첫 번째 고비가 지나갔다.


그날 이후, 다양한 장비를 도입했다. 먼저 무릎 보호대. 실험 결과, 대실패! 무릎을 자주 접다 보니, 무릎보호대랑 살이 같이 접혀, 오금쪽 피부가 다 까졌다.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더니, 반창고를 떼면서 또 살이 까졌다. 겨울이라 건조했나 보다. (궁금해서 오금 뒤를 사진으로 찍었지만, 너무 징그러워 보여주진 않겠다)


둘째, 무릎 마사지기. 펀딩으로 샀으나 실패. 손으로 주무르는 것보다도 훨씬 약해서 간지러울 정도였다. 온열 기능이 있어서 찜질용으로 썼다. 나중엔 의료기에서 나온, 주로 관절염 있으신 노년층들이 쓰시는 무릎 찜질기를 마련했다. 대성공. 저온화상 입을 만큼 뜨끈하게 지져도 너무 개운하고 무릎이 좋아했다.


셋째, 각종 파스. 바르는 파스 ‘맨X래담’부터 붙이는 파스까지 다양하게 시도했다. 무릎을 크게 덮는 전통적인 ‘케x톱’은 통증은 크게 줄었지만, 피부 알러지가 일어났다. 절이 끝나면 간지러워 무릎을 박박 긁었다.


그러던 중, 스님을 뵈었다. 법당에 올라오실 때마다, 절하는 자세가 안 좋아지는 걸 보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

"90%의 에너지만 써야 하는데, 지금 법우님은 에너지를 110%까지 끌어올려 온몸을 이고 지며 절하고 있어요."

"스님, 무릎이 아작 날 거 같아요."

스님 말씀을 듣자마자, 눈물을 삼키며 무릎이 얼마나 아픈지 하소연했다. 며칠 후, 스님께서 스포츠 테이핑을 갖고 오셨다.

"파스 기능이 있는 스포츠 테이핑이에요. 양쪽 무릎 꼭 똑같이 붙여야 효과가 있어요. 스포츠 테이핑도 안 맞으면 바로 떼셔야 해요! 언제든 필요하면 말해요. 계속 사드릴게요."

다음 날, 아주 신중하게 스포츠 테이핑을 붙였다. 아니, 웬걸. 새벽에 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무릎의 변화가 느껴졌다. 통증이 확 줄고 무릎 보호대 역할을 해 무릎에 힘이 생겼다. 용쓰는 힘이 줄고, 좀 더 부드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40일 차, 스님이 주신 스포츠 테이핑이 나의 남은 날들을 살렸다.  


어느새, 새해가 왔다. 절 위에는 주지 스님이 계시는 암자가 있다. 새해 첫날, 법사님께서 다 같이 암자로 해보러 가자고 하셨다. 평소라면 낮잠을 자는 시간, 그날은 '일출감상 원정대'에 합류했다. 새해맞이 기도 들어온 보살님들과 함께 대나무 숲을 건너 암자까지 올라갔다. 해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를 잡고, 다들 해를 기다렸다. 빛만 환히 비치던 하늘에, 드디어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지글지글하네."

"다이아 같다 다이아!"

보살님들이 해를 보며 찬탄했다. 오빠와 나도 가만히 해를 보다, 내가 농담 삼아 한 마디 던졌다.

 "우리 미래네."

 "3000배 끝난 뒤, 너의 미래네."

오빤 늘 장난만 치다가도 가끔씩 당근을 준다. 그 말을 듣자, 울컥했으나 햇빛 때문에 눈물이 차오른 척 눈을 쓱쓱 비볐다. 놀라운 사실은, 오빠는 그날했던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 했다.

필름카메라로 새해 첫 날울 담았다. 초점이 나갔지만, 그 날의 설레는 감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새해 첫 해는 어제의 해와 같지만, 다이아처럼 반짝거렸다.

어느새, 50일이 지났을 땐 벌써 다 끝나가는 기분이었다. 스포츠테이핑 브랜드에 나의 모든 절을 받치고 싶을 만큼, 무릎의 상태는 점점 좋아졌다. 테이핑 전에는 땅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시간이 길어졌으나, 테이핑 하고 나선 200배만 해도 다리가 말끔해졌다. 안 아픈 건 아니었지만, 참을만한 정도였다.


그러나, 두 번째 고비는 또 찾아왔다. 55일 차 새벽, 신나게 절하던 와중 왼쪽다리에 쥐가 났다. 발가락 끝에서 엉덩이까지 '쥐가 전력질주해서 달려오듯' 찌릿했다. 다리를 쫙 펴서 벽에 발바닥을 대고 쥐를 풀었다.

“수행에 마장이 없을 순 없어요.”

다리를 주무르는 모습을 보고 법사님이 툭 던지셨다. 조금 괜찮아진 듯 해, 바로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찌릿함이 또 올라왔다. 바른 자세로 절할 수가 없어, 땅바닥을 짚고 아침공양까지 겨우 1300배를 끝냈다. 단순 쥐인 줄 알았으나, 며칠간 계속 같은 자리에 쥐가 났다. 마그네슘을 챙겨 먹고, 매일 밤 다리 스트레칭을 하며 겨우 버텼다. 5일이 지나니 그제서야 쥐가 안 났다.


60일쯤이 지나고, 함께 3000배를 하는 절 메이트이자 룸메이트는 점점 탄력을 받고 있었다. 오래 절에서 살아서인지 통증도 거의 없었다. 속도도 빨라지고 있었다. 매일 절을 같이 시작하고 같이 끝내야 했지만 내가 도저히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시작은 같이 해도, 룸메이트의 절 속도가 빨라지면 먼저 가라고 했다.


66일 차, 쥐는 풀려도 무릎은 다시 힘이 안 들어갔다. 땅바닥을 짚고 절하는 시간이 또 길어졌다. 옆에서 '난 괜찮은데?' 하며 속도가 빨라지는 룸메이트를 보면 얄미웠다. 그날은 힘이 안 나, 800배쯤에서 멈추고 옆자리에서 절하는 룸메이트를 등지고 앉아 쉬었다. 경전을 읽으며 마음을 침착하게 다스리려고 했다. 깜깜한 새벽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땅바닥 짚고 절하는 건 이 자세가 편해서 그런 걸까? 의지의 문제는 아닐까? 생각보다 안 아픈데 엄살은 아닐까? 죽기 살기로 팍! 힘주고 일어나 볼까? 그래도 안 일어나 지던데.  첫 차 타고 나갈까? 아예 지금 산책을 갈까? 어둠 속을 한참 걷다가 댐에 빠지면, 사람들은 날 구할까? 절에서 죽진 말랬는데. 지금 도량 밖으로 나가면 스님한테 혼나겠지. 3000배 하다가 죽은 사람 없다는데,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10분간 쉬며 경전을 읽는 동안,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콧물이 났다.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새벽 5시 45분, 1300배를 끝냈다.


"발목 다친 곳이 아파?"

아침공양하다가 법사님이 여쭤보셨다. 왼쪽 발목을 삔 적이 있어, 절할 때마다 소리가 나긴 하나 그쪽은 아프진 않았다. 오히려 오른쪽 발목이 아팠다. 쥐가 났던 왼쪽에 힘을 안 실으려고 오른쪽에 무게중심을 두니, 발목이 뻐근했다. 법사님께 발목 다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셨지? 법사님은 신통하다.

"아니요. 발목 안 다친 쪽이 아파요."

"그럼 괜찮다. 밥 많이 먹어요."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다.

"예전에 한 법우가 결혼허락받으려고 어머니한테 남자친구를 데리고 갔거든요? 나이차이가 좀 많이 났어요. 그때 어머니가 3일간 1만 배를 하면 허락해 주겠다고 하신 거예요. 평소 절도 안 하던 두 사람이 3일 동안 3000배, 3000배, 4000배를 했어요. 그 법우는 힘들어서 언덕배기를 내려올 때 남자친구에게 온몸을 기대서 내려왔거든. 그때, 기도 들어온 할아버지가 '남자에게 왜 그렇게 붙어있냐, 떨어져라' 한 거예요. 애정행각 하신 줄 아셨던 거예요. 3000배를 안 해본 사람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그래도 3일간 결국 해냈다?  지금은 신랑이 된 남자 법우가, 3000배를 하고 나니 세상에 웬만한 힘든 건 다 견뎌낼 수 있더라고 하더라고요. 3000배가 그렇게 힘들어요.“

"...넵."


고개를 숙이고 국을 퍼먹으면서 코가 찡했다. 진짜 그날은 여기서 100일 기도를 그만두고 싶었다. 법당에서 절대 티 안 내려고 했으나, 법사님은 눈치채셨나 보다. 내가 절하고 있으면, 다른 보살님들이나 거사님들은 '최선을 다해 절해라', '힘내라, 3000배 끝나면 다들 더 열심히 할 걸 아쉬워하더라'라는 등의 말을 한다. 나에겐 이미 최선의 상태였지만, 몸이 못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법사님은 한 번도 '힘내라, 할 수 있어, 파이팅' 등의 응원의 말을 절대 안 하셨다. 대신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이야기 뒤엔 '힘든 거 너무 잘 안다, 그래도 넌 해낼 수 있다'라는 말이 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선, 아침 공양이 끝나면 차를 내려주셨다. 70년 된 보이차. "뜨끈하게 마시고 얼른 가서 푹 쉬어요." 보이차가 70년 동안 지나온 세월의 맛을 다 느끼면 좋았겠지만, 물처럼 후루룩 마셨다. 보이차를 많이 마신 날은 화장실은 자주 가더라도 목이 마르지 않았다. 몸에도 온기가 돌아 무릎이 잘 풀렸다. 여러므로 법사님은 신통하다.


법사님은 아침마다 보이차를 내려주셨다.

마음은 풀렸지만, 무릎은 상태가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세 번째 고비라 쓰고 수십만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스포츠테이핑을 해도 무릎에 힘이 안 들어가, '땅바닥 수영'하듯 땅집고 2900배를 한 날도 많았다. 그러다, 스님이 신묘한 아이템을 발견했다고 하셨다.


"법우님, 지금 왼쪽 골반이 계속 틀어지고 있어요. 흔들의자를 보면 양쪽 균형이 맞아야 똑같이 흔들리잖아요. 한쪽이 앞으로 나가거나, 문제가 생기면 삐걱삐걱되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거죠. 법우님의 골반상태가 지금 그래요. 골반이 심각하게 틀어져있어서, 용쓰고 온 힘을 다 써도 안 되는 거죠."


혹시 일어날 의지가 없어서 내가 절이 안 되는 건 아닌지 의심했던 나에게, 너무 위로가 되는 깨달음이었다. 역시!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어!


"의료용 자석을 샀어요. 자석으로 골반이 틀어진 곳이나, 무릎에 한 번 붙여봐요."

먼저 무릎 위에 자석을 움직이며 붙일 위치를 찾았다. 절 방석에 무릎만 닿아도 쓰라렸던 때라, 자석이 지나가니 눈물이 맺혔다.

".. 아파요."

"에고, 진짜 아픈가 보다. 무릎엔 효과가 없나 봐요."

천골과 요추 5번 뼈 사이, 왼쪽 고관절 부근에 자석을 붙였다. 다음 날, 확실히 일어나기 수월했다. 아니..! 또 이런 놀라운 아이템이 나를 살리는구나. 너무 오래 붙이면 안 좋다고 하셔서, 이틀 후 자석을 땠다. 자석을 떼니, 뜬금없이 갈비뼈가 아파오고 왼쪽 다리가 뭉쳐왔다. 다시 자석을 급하게 붙였다. 그날 저녁, 스님께 문자가 왔다.


'법우님, 자석 계속 쓰고 있나요? 예전엔 골반 좌우가 틀어졌는데, 오늘은 골반 오른쪽이 위로 올라간 것으로 보아 척추 전체적인 균형이 깨진 것 같아요. 무턱대고 절을 할 게 아니라, 원인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다시 틀어졌단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구몬 학습지 선생님은 잘 가르쳐주지만 내가 못 따라가서 괴로운 느낌이랄까? 나도 스스로 해결이 안 되니, 약간 부진아가 된 기분이었다. 문자를 보고 한참 모른 채 하다가, 시무룩하게 답장을 보냈다.


다시 자세 솔루션을 내려주셨고, 해외직구로 구해주신 쑥 파스를 꼭 써보라고 하셨다. 감사한 마음이 다 표현이 안되고 이런 나도 괴로워 울적하게 문자를 보냈다.


"늘 이것저것 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ㅜㅜ"

"아닙니다 ㅜㅜ 법우님이 기도 잘할 수 있게 도우는 게 맞죠."

그 답장에 감동받고 또 혼자 눈물이 맺혀서 쑥 파스로 무릎을 달래며 잠들었다.


다음 날, 스님을 만났다. '장비빨'로 해결이 안 될 땐, 다른 대책이 필요한 법이다. '관(觀)' 수행법을 알려주셨다. 내 몸을 그대로 관찰하여, 알아차리는 수행법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골반뼈를 보고 느끼는 법을 배웠다. 사실, 3000배하는 동안 '관 수행'은 쉽지 않지만 조금은 도움이 될 거라 하셨다.


 "신수심법이라고 해서,  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 이 네 군데를 알아차리는 수행법이에요. 관 수행은 교정이 최종 목적은 아니에요. 아무리 관을 열심히 해도 엑스레이 상으로 변화가 뚜렷하게 나오진 않죠.


그러나, 몸을 관하는 연습을 통해 몸을 볼 수 있으면 마음을 볼 수 있어요. 우울이나 불안도 관하다보면 어느새 사라져요. 마음을 볼 수 있으면 법을 볼 수 있죠. 나를 볼 수 있으면 타인을 볼 수 있고, 타인을 볼 수 있으면 이 세계 전체의 문제를 볼 수 있게 돼요."


스님의 말씀처럼, 경전 중 <대념처경>에 아래와 같은 말이 나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중생들을 정화하고,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게 하고, 아픔과 고뇌를 사라지게 하고, 숭고한 길에 도달하게 하고 닙바나(열반)를 실현하게 하는 길, 즉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낸다.
그는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낸다.
그는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낸다.
그는 담마(법, 마음의 대상)에 대하여 담마를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낸다.

- <대념처경> 중에서


관하는 법을 배운 뒤, 절하러 올라가기 전 매일 내 몸을 관하고 올라갔다. 내가 절에 몰입할 때 과하게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는지, 지금 어디가 뭉쳐졌는지 느껴 자세를 수정히려고 노력했다. 며칠이 지나고 몸을 관하는 것이 익숙해지자, 내 마음을 지켜보게 되었다. 관하는 법을 알게 되니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도 다르게 보였다. 그 부유물에 휩쓸리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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