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아 Sep 13. 2024

눈물 나게 평화로운 운전연습

법사님의 심부름을 하고, 오빠랑 절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법사님께 전화가 왔다.

"어디쯤이야?"

"이제 한 시간 정도 남았어요."

"직접 운전 중이야?"

"아니요. 오빠가 운전 중이에요."

"옆에서 편하게 타지만 말고, 직접 운전해. 운전도 타이밍이다. 오빠 옆에 있을 때 연습하세요."


사실 법사님께서 운전연습하란 소리는 많이 하셨다. 예전에 큰 스님께서 시골에 살면서 운전 못하면 발 없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고 한다. 언제 급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 미리 연습해둬야 한다고 하셨다. 저 때 말씀이, 꼭 '마지막 경고'처럼 들렸다. 이젠 진짜 해야겠다 싶어, 휴게소에 들렀을 때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작년 5월쯤, 회사를 다니던 때 신제품촬영으로 하남 스튜디오에 가야 할 일이 있었다. 집에서 대중교통을 타기엔 뺑뺑 돌아가야 했고 택시를 타기엔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올 거 같았다. 경로를 보니 운전할만할 것 같아서, 오빠에게 말했다. 그래도 고속도로를 타야 하고 출근길과 겹칠 거 같아, 촬영 전 주말에 오빠랑 미리 운전연습 겸 가봤다. 내비게이션으로 미리 봤던 것보단 복잡하고 출근길엔 꽉 막혀 끼어들기를 잘해야 할 코스였다.

"네가 운전해선 못 가겠다. 내가 태워줄게. 이참에 연습을 계속해봐."

그래도 자신감이 생겨, 그날 이후 계속 차를 몰고 다녔다. 그러다 불법주정차가 많은 집 앞 도로를 지나갈 때였다. 왼쪽엔 대형버스가 바짝 붙어 오고 있었고, 오른쪽 도로에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다. 바로 앞에 2차선 한가운데까지 엉덩이를 내밀고 주차된 차가 보였다.

부욱 -

음, 잘 못 들었나? 차를 멈추고 보니, 차를 박았다. 불법 주정차지만, 결국 9:1 과실로 보험처리를 하고 수리하며 한 달 내내 접촉사고 수습을 했다. 수리된 차를 다시 받고 나서도 트라우마가 생길까 봐 바로 (사고 났던 길은 피해서) 동네를 운전했다. 이후 절에 들어오고 운전대를 놓았다.


오랜만에 고속도로 운전을 했다. 예전보단 운전대를 잡아도 불안한 마음이 적었다. 화물차가 옆으로 지나가거나 화물차와 버스 사이에 끼여있으면 긴장되긴 했지만.

"정구업진언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외워."

오빠가 옆에서 주문을 외우라고 알려줬다. 버스나 화물차가 바짝 붙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소리 내서 말했다. 1년 전엔 내 앞에 깜빡이 없이 끼어들거나, 다른 차에게 클락션을 울려도 혼자 쫄아서 화를 내고 가벼운 욕을 했다.

놀랍게도 3000배가 끝난 뒤, 왠만한 일에 화가 벌컥 올라오는 일이 줄었다. 욕 대신 '저한테 왜 그러시죠? 그러지 마시죠.' 라며 꽤(?) 정중하게 불만을 표하곤 했다. 그러나 아직 미숙한 운전자라 하루아침에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시작했으니 다시 쉴 순 없는 노릇. 그날 이후로 은행이나 마트, 편의점(그래도 최소 차로 20분) 등 볼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운전해서 가곤 했다. 일부러 구불구불한 산길로 돌아가거나 야간운전을 했다.


“어! 앞에!”

끼익.

"멧돼지 못 봤어?!" 

방금까지 훤하던 하늘은 10분 만에 캄캄해졌다. 산골이라 해가 지면 금방 칠흑같이 어두워진다. S자 코스에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져 적응이 안 됐다. 코앞에 고양이보다 작은 새끼 멧돼지가 아장아장 걸으며 차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오른쪽엔 엄마인지 아빠인지 부모로 추정되는 멧돼지가 새끼 멧돼지와 우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미안해! 멧돼지가 너무 작고 캄캄해서 내가 진짜 못 봤어. 그럴 의도는 없었어. 용서해 주라." 

멧돼지가 우릴 보고 복수할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신기하게도 한참을 서 있다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돌아갔다. 

"꿀꿀" 

오빠가 멧돼지 대신 대답했다. 

"용서해 준 거야?"

"꿀꿀" 


다행히 용서를 받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눈에 불을 켜고 절로 무사히 돌아갔다. 


"가족끼리 운전 가르쳐주면 사이가 틀어져. 법우들이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 본인 초보 때 생각 못하고 초보자를 이해 못 한다는 거지."


공양시간에 요즘 운전연습 하고 있다는 걸 주지스님께 말씀드리니, 스님께선 '가족 간 운전연습의 위험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마치 예언 같았달까. 


다음 날, 볼일이 있어 서울 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법사님께서 꼭 내가 운전대를 잡고 가라고 하셨다. 참으로 오랜만에 약 4시간 거리의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IC에 들어갈 땐 순조로웠다. 이후, 고속도로를 진입하고 있는데 오빠가 '어! 어!'를 외쳤다.

"왜?!" 하고 놀란 마음에 속도를 줄였다. 오빠의 '어!' 뜻은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빨리 속도를 올려 진입하란 뜻이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난 놀라서 속도를 줄였다.

"속도를 왜 줄여?! 밟으라고! 더 밟아!!"

오빠의 커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고속도로에 합류했다. 난 소리를 왜 지르냐, 소리를 지르면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했다. '목소리 높낮이'에 대해 한 10분 동안을 실랑이한 것 같다. 


한참을 90km로 천천히 달리는 트럭을 따라갔다. 그 차를 따라가다 추월차로로 넘어갔다. 넘어가자마자 2차선에 화물차 두 대가 연속으로 지나갔다. 나에게 붙는 기분이 들어, 긴장이 되었다. 속도를 계속 올린 뒤 다시 2차선으로 넘어갔다. 넘어오고 나서도 속도가 110km를 넘어가고 있었다. 속도가 너무 높다, 왜 넘어와서 속도를 올리냐, 화물차 지나가는데 왜 쪼냐 아무도 널 방해하지 않는다 붙으면 클락션을 울려라 등의 소리를 무한 번 들었다. 비슷한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서울까지 한 시간 남은 거리에서 마지막으로 휴게소를 들렸다. 들린 김에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내가 몸살 나겠어. 소리 지르면 소리 지르지 말라 그러고, 아무 말 안 하려고 잔다고 그러면 자지 말라 그러고."

내가 변덕을 부린 것도 있지만, 초보로서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 하면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하냐며 또 짜증을 냈다. 내가 노력을 안하는 것도 아니라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법사님께 전화해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늘 바쁜 법사님께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투정만 부리는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식사 후, 해가 져서 오빠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마침 퇴근시간이 겹치고 저녁이라 내가 더 긴장할 것 같았다.

"봐봐.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다 각자 갈 길 가면 된다고. 넌 어깨에 너무 긴장하고 있어. 차선 바꿀 때, 숄더체크 할 때마다 핸들이 흔들린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외우면 뭐해. 네가 이렇게 쪼는데!"

오빠가 차선 바꾸는 법, 속도 올리는 법, 집까지 가는 길에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이 아닌 지름길 등을 짜증과 조언, 충고를 섞어 수업을 했다. 


"목표가 없으면 절대 못해. 네 친구는 너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어떻게 운전해서 출퇴근하겠어. 이런 마음으로 운전 실력 절대 안 늘어."

"나도 노력한다고! 저 차가 자꾸 붙는 것 같은데 어떡해. 그 친구도 돈 내고 운전연수하다가 강사가 반어법 너무 써서, 울면서 두 달 매일 새벽에  아버지랑 연습했어."

"노력만으론 안돼. 실력이 늘어야지. 그럼 너도 딱 두 달 후에, 절 근처 터미널까지 혼자 갔다 와. 너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돼."


내가 한 노력과 들인 시간을 오빠가 알아주지 못한 마음에 서럽고 억울한 마음이 커지다가, '알을 깨라'는 말에 찬 물을 끼얹은 듯 차분해졌다. 접촉사고의 트라우마를 깨려고 했지만, 내가 마땅한 노력을 했는가, 운전으로 세운 목표가 있는가 했을 때 '먼 미래' 목표뿐, 당장 코앞의 목표를 세워두진 않았다. 세월아 네월아 하고 연습하면 안 느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자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늘겠지란 생각이었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출근을 무조건 운전으로 해야 하거나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운전이 빨리 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나를 내몰지 않고, 나를 너무 봐줬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빠의 스킬과 지름길을 유심히 봤다.


집에 돌아온 후, 열혈강의를 한 오빠는 완전히 뻗었다.

"오빠 고생 많았어."

"..개같은 새끼(중얼중얼)"

"뭐라고??!"

"관세음보살이라고! (중얼중얼) 개같은 새끼.."

"뭐라고?!"

"관세음보살.."


다음 날부터 오빤 앓기 시작했다. 열이 났지만, 코로나 자가키트 검사엔 음성으로 떴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위가 계속 아프다고 했다. 위경련인 것 같다길래 야간약국도 같이 갔다. 아무리 봐도, 내가 겪었던 위경련 증상과는 좀 달랐다.

"위경련 아닌 거 같은데. 위경련은 갑자기 진짜 당장 죽을 듯이 조여와. 이틀간 비슷한 통증이 지속되는 건 좀 다른데."

"내가 좀 잘 참나 보지 뭐! 그런데, 내일 영화 볼 거야?"

마침, 다음 날이 문화의 날이라 올라오기 전부터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나한테 투덜거리려고 영화를 보녜 마녜 시비를 건 것 같았다. 자신이 말 걸어놓고, 아프니까 말 걸지 말라고 성질을 냈다. 결국 예매를 했지만, 나 때문에 저렇게 됐으니 조금 참았다.


며칠간 오빠는 열이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아팠다. 장염인 거 같아, 죽을 해먹이고 병원을 보냈다. 병원에서도 장염약을 처방해 줬다. 다시 절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왔지만, 일주일 동안 아팠던 오빠는 내려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며칠 동안 오빠의 각종 짜증을 다 받아주고, '꽤 극진히' 모시고 나니 오빠는 조금은 성질이 가라앉았다. 나름의 아름다운 '합의 및 화해'를 하고,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절로 돌아왔다.


공양시간, 법사님께서 오빠가 왜 아프냐고 여쭤봤다. 사실, 서울에 올라가서 오빤 소화가 안된다면서도 돈가스, 치킨, 짬뽕 등 각종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다. 음식을 잘못 먹은 것 같다고 했다.

"에고, 그래도 저렇게 아플 이유가 있나. 왜 그러지."

"올라가는 길에, 제가 운전했는데요. 그때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장염인 것 같아요. 집에 가서도 며칠간

얼마나 성질내던지요."

"그래? 안 그럴 거 같은데. 놀랍다. 근데, 가족끼리 배우면 그렇다. 나도 '화물차 운전기사한테 멱살 잡힐래, 나한테 잔소리 듣고 말래'라는 소리 들으면서 배웠지."


다음 날 새벽 4시 45분, 예불이 끝나고 오빠한테 카톡이 왔다.

'나 코로나 키트 했는데, 두줄 떴어.'

며칠간 열이 난다고 하더니, 코로나 전조증상이었나 보다. 법사님께 말씀드리니 "에?? 결국! 그럴 줄 알았다. 너는 괜찮아?"라고 하셨다. 목이 좀 건조하긴 했지만, 다른 증상은 없었다. 혹시 몰라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목이 까끌하고 인후염 증상이 올라왔다. 상비약으로 둔 인후통약을 계속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선 인후염이 좀 더 심해지고 콧물도 나서, 읍내에 있는 병원을 갔다.


"목이 까끌하고 기침날 것 같은 기분인데 기침은 없어요. 콧물 나고요."

"요즘 코로나 유행인데, 검사해 보실래요?"

검사를 하고, 몇 분 후 결과가 나왔다.

"결과 나왔습니다. 코로나네요. 5일 치 처방드릴게요."

이로써 총 세 번의 코로나에 걸렸다. 이젠 코로나 검사 결과도 병원에선 담담하게 알려준다. 처음 코로나에 걸렸을 땐, 한창 유행하던 때라 '호외요! 호외!' 톤으로 의사가 병원에 쩌렁쩌렁 울리듯 'OOO 씨, 코로나 양성입니다!!!" 하고 외쳤다. 병원 입구 밖에 있던 벤치로 쫓겨나 기다리던 때가 떠올랐다. 한 시대를 훑고 지나간 코로나도 이젠 정말 감기 정도의 취급을 받는 게 신기했다.


아, 운전으로 오빠를 괴롭힌 나의 업보인가. 법사님께 바로 전화해 이 소식을 알렸다.

"요즘 코로나가 별건가요. 집에 올라가지 말고, 그냥 밑에 요사채에서 격리해요. 밥을 잘 먹어야 낫지."

절에 돌아오자마자, 원래 쓰던 방을 알콜소독제로 닦은 뒤 짐을 바리바리 챙겨 방을 옮겼다.


그날 밤부터, 본격적인 '코로나앓이'가 시작되었다. 코가 막히고 목구멍이 따갑고 숨을 쉬기 어려워 잠이 깼다. 새벽 12시 44분,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본 밤하늘은 별이 쏟아져내렸다. 카시오페아자리, 쌍둥이자리, 북두칠성을 찾으며 한참을 쳐다봤다. 지독하게 예뻤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코가 조금씩 뚫렸다. 저 멀리 스님이 계신 요사채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보였다. 

‘안 주무시는구나.' 

그 불빛을 보니 정신이 말짱해져 갑자기 절이 하고 싶었다. 방에 절방석을 깔고 나의 죄를 참회하는 '자비도량참법'(이하 자참) 기도를 했다.

어떤 귀신이 있는데, 목련에게 여쭈기를 "나는 배가 굉장히 크나 목구멍은 바늘 같아서 몇 해를 지나면서 음식을 먹지 못하니 무슨 죄입니까?"라고 물었다. 목련이 답하기를 "너는 전생에 부락 주인이 되어 스스로 부귀함을 믿고 술을 먹고 비틀거리며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속이고 그의 음식을 빼앗아 모든 사람을 굶주리게 했느니라. 그 인연으로 그런 죄를 받느니라. 이것은 *화보이나 *과보는 지옥에 있는니라"라고 하였다.

또 어떤 귀신이 있는데, 목련에게 여쭈기를 "나는 일생동안 오면서 두 개의 뜨거운 쇠바퀴가 두 겨드랑이 밑에 있어서 온몸이 타서 문드러지니 무슨 죄옵니까?"라고 물었다. 목련이 답하기를 "너는 전생에 떡을 만들어 대중에게 주면서 두 번이나 훔쳐서 양 겨드랑이 아래에 끼고 있느니라. 그 인연으로 그런 죄를 받느니라. 이것은 화보이나 과보는 지옥에 있는니라"라고 하였다.

- <자비도량참법> 제3과 중에서 -

*화보 : 내세의 과보보다, 먼저 현세에서 받는 업보.
*과보 :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잠이 안 와서 읽은 경전 속 문장들이 묘하게 꽂혔다. 지금 내가 코로나로 앓고 있는 것도 다 오빠를 괴롭힌 화보인가, 오빠가 아픈 것도 나에게 성질부린 화보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겨, 아침이 되자마자 출타하신 법사님께 카톡을 보냈다.

"법사님 제가 오늘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자참하면서 든 생각이 "‘제가 기갈이 심하고 목구멍이 막히고 온 피부가 쓰라린데 무슨 죄보입니까?'라고 물었다. 목련이 답하길 '권속 중 오라버니와 운전연습을 하며 스트레스를 준 화보이니라. 과보는 지옥에 있는니라‘라고 하였다."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오빠가 저리 아픈 것이 당황스럽고 황당하면서 웃겨요.."

"아이고 웃겨라 하하하"

이 상황의 전말을 다 알고 있는 법사님도 웃기다고 하셨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이 마음을 법사님께만 털어놓으니, 그래도 속이 좀 시원했다.


그날 점심 공양 시간.

"법우님, 괜찮아요?!!"

늘 내 건강을 챙겨주신 부전 스님께서 공양을 퍼시면서 나의 건강상태를 여쭤보셨다. 법사님께 나의 소식을 들으셨다고 하셨다. 점심 공양 이후에 스님께도 '코로나의 전말'에 대해 다 이야기했다.


"이런, 서로 힘들었겠네요. 스트레스를 줬다한들 평소에 좋은 동생인 거 잘 알아요. 주지스님께서 이미 경고를 하셨는데, 아무래도 가족끼리니 더 안 참고 말하게 되고 서로 더 이해를 바라게 되니까요. 역시 가족끼리 운전연수는 쉽지 않네요."

부전 스님은 나와 오빠의 입장 모두를 공감해 주시면서, 한 순간에 오빠한테 섭섭한 마음까지도 다 풀렸다. 부전 스님은 3000배 할 때도, 다른 고민이 있을 때도 대나무 숲이 되어주시면서도 현실적인 방법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번에도 코로나 회복에 좋은 여러 방법을 모색해 주시면서 마음까지 챙겨주셨다. 역시, 스님은 다르시다.



코로나를 앓은 지 3일 뒤 법사님께서 다시 절로 돌아오셨다. 아침공양 시간에 가장 마지막에 서서 밥을 펐다. 좀 나아져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 주지스님께서 방에서 나오셨다.

"오빠한테 운전은 다 배웠어?"

"... 아니요."

그때, 보살님께서 "오빠는 지금 화보를 받고 있나?"라고 하셨다. 아니..! 이 이야기는 법사님과 스님께만 말씀드린 건데!

"법사님.. 말씀하셨어요?"

"나한테 들어오면 비밀은 없어~ 내가 들은 100가지 이야기 중 90가진 이야기 안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 될만한 이야기 10가지만 내가 해요. 너무 웃기잖아! 보살님들이랑 차 마시면서 했더니, 다들 깔깔 웃으면서 뒤로 넘어가더라."


주지스님께선 다시 한번, '가족 간의 운전 연습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내가 말했지. 가족끼리나 부부끼리도 운전 연수하면 꼭 싸워. 초보는 저 앞에 있는 것도 잘 안 보여. 절대 못 보지. 10년은 해야 보이는데. 근데 그걸 숙달된 운전자는 이해를 못 하지. 성격 좋은 저 거사님도 운전 가르쳐주면 분명 화낼걸? 둘이 부부처럼 그렇게 사이가 좋아도 꼭 싸우게 되어있지. 고속도로는 쉬워. 시내 운전하면서 '오빠 봐라! 내가 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줘야지."


주지스님은 가끔 미래를 꿰뚫어 보듯 내가 '필요할 조언'이나 행동들을 하신다. 참 신통하시다. 이번 역시, 주지스님의 말씀을 다시 새겨듣게 되었다. 서로를 잘 아는 사이에서 하는 운전연습은 정말 쉽지가 않다. 스님 말씀처럼, 오히려 서로를 더 이해하길 바라면서 막상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 

스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결국 내가 내 길을 깨치며 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그 길을 열어줬다고 생각한다. 초기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온 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 있도록' 계속 운전대를 잡고 가야 한다. 묵묵히.


버스정류장에 있는 정비소에서 발견한 문구. 스님께서 하신 ‘초보 때 시절 생각 못한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절은 운전연습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산길도 가고, '총체적 난국'인 읍내도 가면서 연습할 맵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운전할 때 올라오기 쉬운 화, 분노, 불안들이 수행을 같이 하니 나의 트라우마와 함께 정도를 낮춰준달까. 내가 길을 헤맬 때, 스님과 법사님의 말씀도 '내비게이션'이 된다. 운전대를 딱 잡고 내일은 더 용기를 내야지 마음먹으며 오늘도 수행을 계속해나간다.

이전 11화 절에서 느끼는, 여름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