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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Oct 04. 2024

떠나기 전, 식을 준비한다는 것

3000배 100일 기도 중, 절반이 다되었을 때쯤 외할머니의 미수(88세) 생신이 다가왔다.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했다. 난 기도 중이라 나갈 수 없었지만. 사진으로나마 가족들의 식사사진을 볼 수 있었다. 다 같이 카메라를 쳐다볼 때, 꽃다발을 들고 계신 외할머니는 웃으며 본인의 앞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할머니께선 몇 년 전, 백내장 수술 후 눈이 잘 안보이신다. 얼굴에도 점점 세월의 흔적이 드러났다. 

'할머니가 더 오래 사시면 좋을 텐데.' 


3000배를 하는 동안 나는 여러 가지 발원을 했다. 그중 하나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어머니는 몸이 불편해져 집에서만 생활하신 지 벌써 12년이 넘었다. 스스로 거동하실 순 있지만, 외출할 땐 가족 도움 없이 혼자 가긴 어려운 정도였다. 몸이 불편해진 뒤, 외할머니를 뵙기 꺼려하셨다. 외할머니랑 전화를 다시 하게 된 것도 겨우 4년 전, 두 분이 안 만난 지는 벌써 12년이 되었다. 


기도가 먹혔다고 해야 하나. 3000배가 끝난 뒤,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만나게 되었다. 

외할머니께서 욕실에서 넘어지셔 고관절을 다쳐 병원에 입원하셨다. 정형외과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의사가 '장기간의 치료가 될 것 같다'는 말에 요양원으로 옮기시게 되었다. 오랜 시간의 요양병원생활이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어머니께서 드디어 용기를 내셨다. 


외할머니께서 요양병원으로 입원 후, 매주 어머니와 함께 요양병원으로 찾아갔다. 어머니는 직접 옥수수죽과 잣죽을 쑤어서 들고 갔다. 외할머니께선 각종 치료로 지치시고 기력이 많이 쇠해 목소리가 많이 작아지셨다.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못 알아듣는 외할머니의 말을 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김실이는 외국에서 왔나 보다. 한국어를 못 알아들어." 

어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의 통역사로서 나의 역할에 충실했다. 집에 갈 때쯤, 외삼촌께서 밖에서 잠시 대화하자고 하셨다. 외삼촌께선 외할머니댁의 10분 거리에 집을 두고,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부터 몇십 년간 두 분을 보필하셨다. 외할머니께서 입원한 뒤에도 퇴근 후 매일 방문해 외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내셨다. 


"어머니 상태가 어떤지 알려주려고." 

두 남매가 대화하는 동안 방청객처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요양병원에 옮긴 후, 외삼촌은 외할머니께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이 북돋으셨다. 

"어머니, 재활치료 열심히 받고 다시 걸어서 집으로 갑시다!" 

넘어지셨을 때도 연세가 연세인지라 다리 힘이 많이 빠지신 상태라 하셨다. 첫 번째 재활치료를 받고 다시 걷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외할머니 스스로 생각하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단식을 하신다고 하시네." 

외할머니께선 이제 생을 정리하고 싶다고 하셨다. 요양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하여 나중에 콧줄로 음식을 섭취하는 등과 같은 연명치료를 하길 거부하셨고, 음식을 끊어 남은 시간을 정리하신다고 하셨다. 


대만 재활학과 의사 비류잉이 쓴 책 <단식 존엄사>은 유전병이자 희귀병인, 소뇌실조증에 걸리신 어머니가 '단식 존엄사'를 결정한 뒤 임종까지 보낸 시간들의 기록을 담았다. 책에서 어머니는 '나는 이번 생에서 할 일을 다했다. 누구한테 빚진 것도 없고 여한이 없어.'라며 단식을 결정했다. 비류잉 역시,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각종 연명치료는 오히려 환자의 몸이 망가지는 (심폐소생술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의료사'로 봤다. 환자가 죽음이 가까워지면 연하장애가 오고 소화 흡수가 떨어져 저절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니, 단식은 '자연사'로 보기도 했다. 


외할머니께서도 단식을 선택했을 때 후회가 없다고 하셨다. 그때쯤, 외할머니께서도 연하장애를 겪고 계셔 작은 사과조각은 물론 물만 마셔도 사레가 잘 들렸다. 위의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음식을 섭취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고 가족들을 위해 미리 본인의 결정을 전달해 주신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늘 지혜롭고 현명하시며 주관이 뚜렷하신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혼란스러워했던 어머니와 이모도, 금방 외할머니의 선택을 존중했다. 외삼촌께선 '그동안 외할머니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고 외할머니 덕분에 우리가 잘 살 수 있었던 시간'들을 계속해서 공유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외할머니껜 염불을 외우라고 하셨다고 한다. 


절로 돌아가 스님께, 외할머니의 남은 시간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하면 좋을지 여쭤봤다. 

"떠나기 전, 식을 준비해야 해요." 

*식(識)은 대상 하나하나를 식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뜻한다.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6개의 감각기관을 6식(눈, 귀, 코, 혀, 몸, 뜻)으로 나눈 것에서 지칭하는 바로 그 '식'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죽음의 순간, 사자(死者)를 위해 한 번만 읽어줘도 해탈에 이른다는 티벳 불교의 경전인 <티벳 사자의 서>에선 처음 몸을 떠난 영가는 많이 혼란스러워한다고 나와 있다. 경전엔 사자(死者)가 떠나기 전부터 떠난 후 가족들이 해야 할 일, 사자가 몸을 떠난 뒤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스님이 말씀하신 '식을 준비한다'는 것 역시, 외할머니께서 죽음 후에 느낄 혼란스러움을 줄이고 해탈에 이르는 길을 돕는 과정이라 이해했다. 해탈에 이르려면, 보리심을 발해야 하고 보리라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해탈한다고 하셨다. 이를 위해 칠정례와 금강경을 읽어드리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단식을 하는 동안에도, 눈은 안 보이셔도 의식이 아주 또렷하셨다.  우린 여전히 매주 요양병원을 방문했고 외할머니와 살면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주고받았다. 외삼촌께선 안 쓰는 핸드폰에 금강경, 아미타불 정근, 광명진언 정근 등을 담아 할머니가 이어폰을 통해 계속 들을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15일 뒤 할머니는 몸을 떠나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 법사님과 보살님들께서 독경을 오셨다. 절에선 신도 가족이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 가서 함께 금강경, 아미타경 등을 독경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우리 가족들과 보살님들, 법사님과 함께 독경을 했다. 모두가 맞춘 것처럼 한 목소리로 경전을 읽었다. 그 순간은, 너무나 경건하면서도 깨끗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독경이 끝난 후, 법사님은 가족들을 불러 대화를 나누셨다. 

"경전 <티벳 사자의 서>를 보면, 가족들이 울면 영가가 혼란스러워한다고 해요." 

법사님께선 혹시나 울면서 보낼 가족들을 위해 위로의 말과 함께, 연명치료 없이 스스로 단식을 선택하셔서 '깨끗하고 의식이 또렷하신 상태'로 떠나셨다고 하셨다. 그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이틀 전, 할머니는 물도 마시기 어려워 입안에 물을 묻힌 거즈를 물고 계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혈색이 너무 좋아, 오빠와 나는 놀란 눈치로 서로 쳐다봤다. 


3일장을 치르고, 혼령의 위패를 절로 옮기는 '반혼재'를 하러 다시 절로 돌아왔다. 

"고생 많았어요. 얼른 밥 먹고 집에 가서 푹 쉬어요."

오랜만에 절 밥을 먹으니 몸이 싹 풀렸다. 법사님께서 책 <영가천도>를 주시며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책에선 영가의 세계가 눈에 보이진 않아도, 수행을 통해 영가뿐만 아니라 나와 내 주변까지 좋아진 사례와 수행방법에 대해 다룬다. 책을 읽고나서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150일까지, 공덕경 중 하나인 <금강경>을 외할머니를 위해 1000번을 읽기로 결심했다. 


<금강경>을 읽을 때면 그 시기의 나의 상태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구절들이 다르다. 외할머니를 보낸 드린 뒤, 수 차례 읽으며 '집착 없이 마음을 내야 한다'는 구절이 계속 걸린다. 49일 동안 7번의 재를 치르는 동안, 스님께선 매번 '영가천도발원문'을 읽어드린다. 


인연따라 모인 것은 인연따라 흩어지니 오는것도 인연이요 돌아감도 인연인걸
나서부터 맺은인연 인연다해 떠나가니 그무엇을 애착하고 그무엇을 슬퍼하랴
모든것은 무상하여 생한자는 필멸이라 태어났다 죽는것은 모든생명 이치여라
살아생전 집착하던 사대육신 무엇인고 한순간에 숨거두니 주인떠난 목석일세 
일가친척 많이있고 부귀영화 누렸어도 저승길에 누구하나 함께가지 아니하네 
(중략) 
태어났다 죽는것은 중생계의 흐름이라 이곳에서 가시면은 저세상에 태어나니
뜬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짐이 인연이듯 중생들의 생과사도 인연따라 나타나니
좋은인연 간직하고 나쁜인연 버리시면 이다음에 태어날때 좋은세상 만나리라


영가천도 발원문에서도 항상 마음에 걸리는 구절은 '인연따라 모인것은 인연따라 흩어지니', '그 무엇을 애착하고 그 무엇을 슬퍼하랴'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계속 읽다 보니, 인생은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할머니를 더 이상 못 보는 건 슬픈 일이지만, 외할머니께서 몸에 집착하거나 몸에 얽매여 오랫동안 괴로워하지 않고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49재가 끝나고 스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스님 덕분에 외할머니를 위해 금강경과 광명진언을 계속 읽어드리고, 1000독을 채우기 위해 계속 읽는 중이지만 그 기간 동안 나 역시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스님께선 '기도한 공덕이 절대 어디 가지 않고 분명 큰 도움이 되었을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전에 법회 끝에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모든 행위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 불교에서 항상 말하는 인과법. 우리가 잘 알아채진 못하지만 일체중생이나 조상 등을 위해 발원한 것이 영향을 미치고, 결국 돌아 돌아 나에게 온다고. 


그래서인지, 외할머니 49재를 앞두고 우연히 간 산부인과에서 '인과'를 경험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몸이 다르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 갈까 말까 고민하다 안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 전 시간이 잠깐 남아 시간 때우는 겸 근처 병원에 갔다. 초음파검사 후 난소에 기형종이 발견되었다. 약 60mm로 당장 큰 병원 예약을 하고 수술을 잡으라고 하셨다. 거의 6년 만에 한 초음파 검사였고 증상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연한 직감'과 '비는 시간'이 만난 이 타이밍에, 병을 더 키우지 않고 수술날짜를 잡게 되었다. 이 역시 정말 우연일 수 있겠지만, 외할머니께서 나한테 '직감'을 전 달해 주신건 아닐지 '행복 회로'를 돌려보았다. 발견한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고, 마음이 편안했기에. 



절에서 지내는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절에 들어오고 벌써 사계절을 한 바퀴 돌았다. 절에 들어와서 스스로 느낀 변화, 주변에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들은 놀라우면서도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의 힘이 길러졌다. 산의 기운을 받고 이 땅에서 자라난 것을 먹고 시간을 거스르지 않은 채 해가 뜨고 질 때 맞춰 하루를 살아가는 건, 밖에선 어려웠지만 이곳에선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이다. 이러한 일상만으로도 한 사람의 에너지가 변한다고 느낀다. 주변에 삶이 고된 친구들이, 절에 있는 나에게 한 번식 연락 온다. 

"아직 절에서 지내? 나도 가도 돼?" 

한 번 왔던 친구들은 힘이 들거나, 번뇌가 많아질 때마다 이곳이 생각난다고 한다. 멀지 않은 곳에 우리에겐 살아갈 힘은 어디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힘이 들면 언제든 오라고 말한다


외할머니가 나에게 알려주신 삶의 이치는 '청정하게 살아가는 방법'들이었다. 거짓 없이 진실하게, 예를 지키고 지혜롭게. 오늘도 이렇게 절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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