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24절기가 있지만 오늘이 대서인지 다음 달이 입추인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덥고 추울 땐 쉽게 적정온도를 맞추며 살고, 배고프면 적당히 한 끼를 때웠다. 농사를 짓고 자연의 변화가 시시각각으로 알아채지는 지리산 자락의 절에선, 절기에 따라 사계절을 살아가게 된다. 교과서에만 보고 배웠던 각 절기와 명절들을 여실히 느낀다.
눈이 잘 쌓이지 않는 이곳에도 한 번씩 소복이 쌓일 때가 있다. 온 도량이 솜이불을 덮듯, 새하얘지고 온도도 포근해지는 풍경과 달리 온몸이 얼어버린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다던 동지가 왔다. 3000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때쯤, 한파가 찾아오고 눈까지 쌓이고 해도 짧아지니 요사채 밖으로 한 발도 내딛기 싫은 날이었다. 공양간에선 이른 아침부터 팥 쑤는 냄새가 났다. 냄새를 한껏 맡은 뒤 요사채를 나섰다. 법당은 바닥이 스케이트장보다 더 딱딱한 얼음장 같았다. 너무 날이 추워, 법사님께서 처음으로 온열기를 꺼내주셨다. 온열기는 전기세를 쪽쪽 빨아먹지만, 염치를 불구하고 몸을 데웠다.
오전 10시쯤, 온열기를 켜고 히트텍에 덧신, 장갑을 챙겨 입고 홀로 법당 안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온열기를 틀어도 엉덩이만 따뜻하고 계속 움직이는데도 몸이 데워지지 않았다. 추위에 머리가 띵해 두통이 생기고 혼미해지고 있었다. 그때 법당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법우님 안 추워요?"
누군가가 옆으로 다가와, 벽에 있는 보일러 조절기를 만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보살님이겠거니 하고 고개를 돌리니, 부전스님이 계셨다. 천도재가 없는 사시예불(오전 10시 예불)엔 보통 법사님이 집전을 하신다. 그날은 동지라 법사님은 근교 도시의 포교당에 법회 하러 출타하셨다. 그날은 특별히 동지라, 스님이 예불을 집전하러 법당에 올라오신 거였다.
"..온열기 있어서 괜찮아요."
머리가 어지럽고 추위에 서글퍼하며 절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스님의 등장에 괜히 머쓱해졌다.
"전 예불을 올리테니, 저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절하세요!"
그 말이, '우리 각자 할 일을 잘합시다!'로 들려 조금은 힘이 났다. 고요한 법당의 스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보일러가 들어와 마음도 몸도 조금씩 온기가 올라왔다. 그렇게 추웠던 법당에 햇살도 들어오고 있었다. 예불이 끝나고 평소보다 일찍 11시에 점심공양 목탁소리가 들렸다.
공양간에 들어서자마자, 팥죽 냄새가 가득했다. 새알과 함께 대접에 한가득 팥죽을 담았다. 쫀득한 새알과 통통한 팥알을 함께 꼭꼭 씹어 부드러운 팥죽을 삼키니 목구멍을 타고 흘러가 온기가 온몸을 채웠다. 괜스레 악귀가 쫓아지고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혼자서는 팥죽을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렵지만, 절에서 다 같이 사니 그제야 '동지'가 어떤 날인지 실감이 났다. 다 같이 팥죽을 먹고 안녕을 기원하는 예불을 올리며, 다가온 겨울을 이렇게 이겨내는구나, 이게 내가 살아왔던 한국의 시간이구나 하면서.
또 몇 달 후, 어느새 겨울의 추위가 조금 가시고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이 찾아왔다. 3000배 100일 중, 단 13일만 남아있었다. 공양으로 각종 마른 나물, 오곡밥과 수수부꾸미까지 해주셔서 먹었다. 수수부꾸미를 이곳에서 먹다니! 팥소가 가득 들어가 있어, (스님 피셜로) 왕 큰 붕어빵 같은 맛이었다. 정월대보름이 실감이 났다.
이곳에 산지 4개월 차가 넘으니 동네가 익숙해져 동네의 삶이 보였다. 몇 주전부터 '정월대보름 행사'를 한다고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그중에 묘미는 달집 태우기. <한국기행> 같은 로드 다큐 프로그램에서만 본 행사지만, 가까이에서 한다고 하니 궁금했다. 공양을 먹고 법사님께 달집 태우기를 구경하고 와도 되냐고 여쭤봤다. 원래 100일 기도 중엔, '마장'이 낄까 봐 함부로 외출을 할 수 없지만 법사님께서 허락해 주셨다.
법우들과 함께 같이 마을의 다리 밑에 있는 갈대밭으로 갔다. 근처 카페에서 핫팩 삼아 따뜻한 차를 사들고 갔다. 이미 달집에 불이 붙어있었다. 갈대밭엔 달집이 타고 있고, 근처에는 테이블이 깔려있고 가마솥에 국밥이 끓고 있었다. 우리가 차마 놓친 풍물놀이패도 음식을 먹으며 달집을 구경하고 있었다. 달집 바로 앞에는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서로 나눠먹으며 타오르는 달집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앞에서 각종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니, 그곳이 화탕지옥 같으면서도 모든 부정과 업이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추운지도 모른 채 한참을 불타는 달집을 바라봤다. 3000배 100일 기도가 얼마 안 남아, 끝날 때까지의 무사를 기원했다. 그제야 한 해가 시작된 것만 같았다.
절에 와서 처음 알게 된 명절도 있었다. 바로 '백중(百中)'. 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고통의 죗값을 받고 있는 지옥중생을 구제하고,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목련이 지옥으로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하고자 정성이 든 음식을 공양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즉,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올리는 불교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백중인 음력 7월 15일까지 49일 동안 매주 한 번씩 초재부터 49재까지 7번에 걸쳐 재를 올린다. 매주 이 먼 곳까지 많은 대중들이 재를 모시러 오셨다. 백중기간에는 <부모은중경>이나 <목련경>을 함께 독경했다. <부모은중경>엔 어머니의 은혜를 노래하는 구절들이 담겨있다. 노래 '어머니은혜'에 나오는 '마른자리 진자리'라는 가사도 이 경전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목련경>은 나복이 출가 후 부처님 제자로 '목련'이 되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하는 내용이다. 나복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산을 나눠 1/3 비용을 들고 장사하러 떠나고, 어머니께 1/3은 생활비를 하고 1/3은 삼보께 공양하라고 드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방탕한 생활로 나복이 돌아온 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 지옥으로 떨어졌다. 나복은 3년상을 치른 뒤, 출가하여 목련존자가 되었고 신통력으로 어머니가 지옥에 계신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부처님께 간청하여 우란분절에 공양을 올리면 어머니를 정토에 태어날 수 있게 된다는 법문을 들어 재를 지내며, 목련의 어머니가 도리천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이 경을 함께 읽으며 '효'가 무엇인지, 효심은 어디서 나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절로 부모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쇠한 모습이 떠오르면 잘해드리진 못한 일들만 생각난다. 보살님들의 모습만 봐도 효심은 '받은 은혜에 비해 늘 부족해 더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공동차례처럼 다례제를 지낸다. 다례제 상에는 다른 어떤 천도재나 법회보다 그득하게 공양물이 올라온다. 공양주 보살님들은 마당에 심어둔 대추나무에서 난 단 8개의 대추도 끌어모아 올린다. 다른 보살님은 며칠 동안 엿기름을 불리고 쌀을 쪄 정성 들인 식혜를 올린다. 또, 전국에서 각종 과일이 쏟아진다. 한 법우가 현대백화점에서 사서 올린 '15만 원짜리 사과와 배'도 추석 며칠 전에 도착했다. 보통, 여러 종류의 과일이 올라오지만 공양물이 많이 들어와 사과 종류가 2종이 되기도 하고, 망고 등 평소에 잘 올라가는 과일도 올라간다.
"사람들 많이 오기 전에 우리 어머니에게 절 올리고 가야겠다."
추석상을 다 차린 뒤, 공양주 보살님은 정성스레 절을 올리셨다. 아직 우리 부모님은 다 살아계시지만,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도 하다.
최근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49재를 지내게 되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실 준비를 하실 때부터 49일이 지날 때까지 가족들의 효심과 나도 잊고 살았던 할머니에 대한 마음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미안했던 마음은 참회하고 떠나신 부모님들이 '원왕생'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수행을 정진하는 일이 효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에서 여러 종류의 절기와 명절을 보내면서, 기념하는 모든 행위들에는 발원하는 청정한 마음들이 깃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