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의 수명

by 무아

법정스님이 ‘어떤 각오로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가 ‘에 대한 법문 중,

“삶의 기술로서 오래된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세월의 무게를 지닌 낡은 것에 대한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고 하셨다. 세월에 대한 무게는 무엇도 바꿀 수 없고 세월 아니면 대체할 수 없다, 우리 집에 할머니 때부터 쓰던 가구가 몇 개 있는지 세보라고.


작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 댁의 짐을 정리해야 했다. 할머니 댁엔 수 십 년 된 노송옷장부터 반야심경이 새겨진 도자기, 침대, 소파 등이 많았다. 옷장은 그 당시에 천만 원을 넘게 주고 사셨다고 한다. 이 가구를 어찌할지 고민하다, 법사님께 여쭤보니 절에서 쓰자고 하셨다. 사람이 귀찮은 거지 가구가 귀찮다고 말을 하냐고, 좀 번거롭더라도 가구를 두면 있는 대로 잘 쓰고 나중에 또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 거라고.

“요즘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던 가구들을 그 값어치를 모른 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당근에 올리더라?”

빨리 처리하고 나만의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꾸미고 싶어 가구릉 팔아버리던 내 과거가 생각나 뜨끔했다.


절에 할머니의 가구를 옮기고 나니, 대중들이 쓰는 텅 비었던 방들도 장엄해 보이고 포근해졌다. 가구의 수명이 몇십 년은 더 늘어난 셈. 트렌드를 쫓아가느라 놓치고 있던 오래된 것들의 가치는 잘 못 보는 것 역시, 우리가 무명 속에 빠져있는 게 아닐까.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인 탐진치 중 치에 빠져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법사님이 늘 말하신 청빈함은, 궁핍함이 아니라 내가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오래된 세월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파에 앉아 가죽을 쓰다듬으니 할머니의 온기도 괜스레 느껴졌다.


절에서 살아가니, 잃어버린 전생을 찾듯 ‘아차’하고 놓쳤던 가치들이 무한히 쏟아졌다. 절에선 참 많고 당연한 일들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