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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tman May 09. 2020

순례자의 시작과 끝 D-1

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산티아고 순례길 D-7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일주일 전이다. 파리 (Paris)에 막 도착했고 며칠 후면 프랑스 서남부에 위치한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라는 작은 마을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다.


산티아고 순레길을 찾아 이곳에 오게 되기까지 내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모든 일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일어난 일이지는 않겠지만, 많은 선택과 우연들이 겹쳐 ‘현재’가 존재하는 것이 인생이므로, 그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20대 중후반부터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십수년을 보냈다. 여러 국가에서의 삶은 다양한 각도에서 인생을 자극시키지만, 그 저변에는 늘 불안과 고독이 머문다. 어디에 살든 인간 삶을 관통하는 본질이지만, 타국에서의 삶은 더 철저히 자신의 불안과 고독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럴수록 난 관계와 일에 빠져들었고 그것으로 내 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자각이 들 무렵, 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었고, 이혼을 했고, 머물던 나라를 떠났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들(그렇지 않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의 특징 같은 것을 열거하며 이제 쉴 때가 되었다는 둥, 인생의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는 둥, 그런 말들 뒤로 숨기도 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명명해야할지 도저히 알지 못했다.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이삼십대의 공부와 일, 관계의 끈을 걷어내고 나니,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것,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조금 더 선명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온전히 내게 집중하고 싶다는 열망. 그것 외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을 잡아 끈 것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남들 다 가니 간다고 해도 좋고, 생고생하러 간다고 해도 좋고, 도망치러 가는 거라고 해도 좋다. 이제 그냥 걷고, 먹고, 자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왔다. 그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것. 한해 수만 명이 찾아가는 그 길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이유 같은 건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나 또한 명확한 이유가 있어 이곳을 찾아 온 게 아니니.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딱 들어맞는 이유 같은 게 어디 있기나 하던가.  




산티아고 순례길 D-1


나는 지금 프랑스 파리에서 생장피에드포르로 향하는 TGV 안에 있다. 기차 양쪽 창문으로는 프랑스의 시골 풍경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고, 옆자리에는 예닐곱살쯤 되어 보이는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와 그 아이의 동생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노란 곱슬머리에 커다란 눈. 인형같이 생긴 두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젊은 아빠는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다. 이른 아침 기차라서 그런지 두 아이는 곤히 잠들었다가 조금 전에 깨어 조근조근 수다를 떨며 손장난을 치고 있다.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내 마음도 밝아진다.


잠을 설치고 새벽같이 나서서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낯선 풍경 때문이기도 하고, 내일부터 있을 여정에 대한 기대와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내일부터 걷게 될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거리는 800km다. 스페인 북부지방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통하는 이 길은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한 명이었던 성야고보를 기리던 순례길이었는데,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자길에는 여러 갈래길이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프랑스길’인데, 시작점이 프랑스의 작은 마을이여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프랑스 서남부 끝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북부 지역을 내륙으로 횡단하는 길이다. 나도 이 길을 따라 걸을 예정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에 정해진 방법 같은 건 없다. 자기 집 앞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고, 프랑스길을 다 걷고 나서, 은의 길이나, 포루투갈길을 걷기도 하고, 프랑스길을 여러 해에 걸쳐 걷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상황과 여건에 맞게 걸으면 그만이다.


내가 이 길을 얼마나 걷게 될지는 모르겠다. 정해놓은 시간도 없고, 꼭 끝까지 마쳐야겠다는 다부진 각오도 없다. 내 몸이 과연 잘 버텨줄지, 몸과 마음이 지쳐서 그만두고 싶어지지 않을지…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도 없이 우선 첫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온다. 슬프지도 않은데 왜 눈물이 흐를까. 가슴 저 아래에서 무언가가 웅클댄다. 산티아고를 향해가는,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기차 안, 이 순간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동시에 내 자신이 ‘지극히’ 존재한다는 느낌. 무언가를 원해서 그 순간에 진실되게 놓여 있는 기분. 참 오랫만에 느껴본다.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의 좌절은 그 생각과 행동의 괴리에서 시작된다. 그 좌절감을 줄이려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생각을 멈추든, 행동을 하든 둘 중 하나. 그렇지 않으면 불안과 좌절의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깊어진다. 


나이를 좀 더 먹을수록, 결과나 성과가 아닌 과정을 위해 하는 일과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붙은 타성 때문에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배제하고 살아가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리거나 결과주의에 끌려다니며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매번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이 길도 내겐 그런 선택 중에 하나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마치고 나서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길에서 얻고자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여정 자체로 충분하다. 아름다운 풍경과 길 위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 그리고 단순하지만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행위들에 맞춰질 시간. 그거면 충분하다. 


800km를 보통 35-40일 정도에 걷는다. 하루에 20-25km씩 걸어야 가능하다. 큰 산도 여러개 넘어야 하고 험한 길도 있으니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수년전 교통사고로 한쪽 발이 조금 불편한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오래, 좀 더 힘겹게 걷게 될 것이다. 50일이든 60일이든 상관 없다. 정해진 시간 동안, 그 거리를 꼭 다 걸어야할 이유도 없다. 힘들면 중간에 멈추면 된다. 


인생에서 이렇게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은 큰 축복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그런 시간이다. 나라는 존재를 기쁘게 바라보는 이 순간, 맑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곧 바욘(Bayonne)역에 도착한다는 사인이 보인다. 바욘역에 내려서 작은 기차로 갈아타고 한두시간 가면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한다. 천천히 짐을 챙겨 내릴 채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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