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오늘은 걷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먼 거리를 걸은 날이다. 8시간 동안 26킬로를 걸었다. 해가 뜨기 전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산을 올랐다. 800미터 고원지대 위에 또다른 산이 놓여 있다. 자그마한 동네 뒷산 정도려니 생각했는데 한시간이나 꾸역꾸역 올라가야 했다. 산에 오르니 저 멀리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행성에 툭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막의 모래언덕 같아 보이는 들판. 황금빛 들판이 야트막한 언덕들을 이루며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 사이사이 하얗게 나 있는 길을 따라 하루종일 걷는다. 내가 걷고 있는건지, 내 두 다리가 나를 끌고 가는 건지…순간 내 몸을 빠져나온 영혼이 내 몸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인다.
지난 주에 만난, 네덜란드에서 온 마고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걷기 시작하고 이주가 지나자, 잡다한 생각들은 잦아들고, 걷고 자고 먹고 책을 읽고 동네를 산책하는 단순한 일과만이 고스란히 남더라고. 내 상태가 그녀가 말한 것과 같은 상태에 이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 전에 걷기 시작하고, 점심 즈음까지 걷고 있는 일상. 내 머릿속에 다른 생각들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머릿속이 완벽하게 하얘져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는 상태는 아니지만, 사는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에 몸과 마음이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그림을 감상하고, 조용히 걷고 있는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그리고 감사하다.
산티아고로 떠나오기 직전에 한라산에 올랐었다. 장마철 한라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비가 내려 우비를 입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지만, 산 중턱부터는 이루말할 수 없이 쾌청했고, 정상에 올라서니 우비가 날라갈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댔다. 그 바람, 한라산 정상에서 맞았던 바람을 이곳 산티아고 메세타 고원에서 만난다. 비슷한 높이에서 부는 바람이어서 그런 걸까. 바람의 결이 매우 흡사하다. 기억과 경험은 온몸에 퍼져있는 감각기관을 통해 재결합하고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낸다. 온몸에 와닿는 이곳의 바람이 한라산에 올랐던 기억을 끄집어 낸다. 경험은 잊혀지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세포 하나하나에 심어져서 언젠가 새로운 자극이나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기억한다고 생각치도 못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과 경험은 오늘의 경험으로 인해 되살아난다.
순레길 여정의 반쯤을 걸어내고 나니 걷는 것에는 어느정도 익숙해졌지만, 그렇다고 몸이 덜 힘들거나 덜 아파지는 건 아니다. 숙소에 들어서서 신발과 양말을 벗은 순례자들의 발을 보면 반창고 한두개 붙어있지 않은 발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저기 잡힌 물집을 소독한 바늘로 터트려 반창고를 갈아 부치고, 발목이나 무릎에 보호대를 끼고, 파스나 근육 완화제를 바르는 등 다들 몸의 한두군데는 아프고 불편하다. 그렇게 몸이 불편한 순례자들을 위해 길 중간 중간 병원이 마련되어 있다. 병원이라기보다는 오래된 건물 한켠에, 의사나 간호사 한둘이 순례자들의 몸 상태를 살피고 간단한 치료를 해주는 곳이다. 수백년 동안, 순례를 위해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현지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일 것이다. 마음을 보살피러 왔다가 몸이 상할 수도 있다. 나 또한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걷다보면 더는 못 걷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 있다. 발도 어깨도 심하게 아프고, 정말 한발짝도 더 내딛기 힘든 상태에 이른다. 아주 짧은 순간일 수도 있고, 진지하게 걷는 것을 포기할까하는 생각이 저녁내내 머리 속에 머물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면, 하루 저녁 푹 자고 나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나 싶게 나는 다시 길 위를 걷고 있다. 내가 아닌 내 몸이 걷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은 내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생각이 먼저고 몸의 움직임은 그 생각을 쫓는다고 여겼던 내 생각이 뒤집힌다. 내 생각과 마음은 내 몸을 쫓아 새로운 풍경과 낯선 사람들과 조우한다. 피곤하고 지쳐 포기할 만하다고 내 몸 상태를 단정짓는 순간에도 몸은 이미 스스로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내 몸조차 한계지워버리는 짧은 내 생각과 협소한 마음. 내 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 무엇을, 그 누구를 쉽게 판단하고 한계지울 수 있을까. 곡예사나 스포츠 스타의 몸처럼 내 몸도 상상 이상의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체험해 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나를 넘어서 생명체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안다는 것’의 한계를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걷다보면 저렇게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꽤 많다. 나도 도저히 한발짝도 더 갈 수 없을 것 같을 때, 무거운 짐을 땅에 부려놓고, 저렇게 속수무책으로 철퍼덕 앉아 버리기도 한다. 왜 아니겠는가. 누가 대신 걸어줄 수도, 가방을 대신 짊어져 줄 수도 없는 길.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꽤 자주 찾아온다. 그녀는 어제도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함께 걸어온 학생이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친구 한명과 그 둘을 이끄는 선생님 한분과 같이 걷고 있다. 중년의 선생님은 두 소녀보다 훨씬 잘 걷는다. 일정한 속도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꾸준한 운동으로 탄탄하게 단련된 몸이다. 반면 두 소녀는 힘겹게 힘겹게 선생님을 쫒아 걷는다. 하지만 매번 뒤처져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고 있다.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 싶지만, 그녀의 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잠시후면 내 뒤로 걸어올 것이다.
오늘도 역시나 매우 덥고 뜨거웠다. 오후의 태양을 피하려 일찍 길을 나섰지만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중반 이후부터는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가 무척이나 힘겨웠다. 오후 네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고, 샤워를 마치자마자 나는 침낭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귀마개를 꽂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무리 피곤해도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어수선한 숙소에서 잠들기 쉽지 않았는데, 오늘은 몸이 버텨내기 힘들어 한다. 한시간 반쯤 깊은 잠을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가볍다.
오늘 도착한 Fromista는 제법 큰 마을이다. 7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뜨거운 햇볕은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동네 구경에 나선다. 일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려면 8-9시는 되어야한다. 그 전까지 동네 한바퀴 둘러보고 내일 마실 물과 먹을 거리를 사놓으면 되겠다.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작은 지도를 들고 천천히 산책하듯 둘러본다. 성당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작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순례자를 위한 콘서트’라고 적혀 있고 시간을 보니 십분 후부터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니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숙소에서 봤던 사람들도 눈에 띈다. 잠시 기다리니, 한 남성이 기타를 들고 들어선다. 이 마을 사람인건지 아니면 성당에서 초대한 유명한 기타리스트인지 잘 모르겠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마치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을 연주한다. 기타 연주에 대해 잘 모르는 내 귀에도 매우 뛰어난 연주 실력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나라, 스페인에서 들어서일까. 오래된 성당 내부로 잔잔히 울려퍼지는 기타선율이 마음을 파고든다. 순례길을 마치고 스페인 남부지역도 가보고 싶다. 이곳보다 더 더운 날씨라고 했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바라보는 달이 그토록 고혹적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붉은 궁전 위의 푸른 밤하늘, 그 한가운데 하얗게 떠 있는 둥근 달이 눈앞에 그려진다. 삼사십분 계속된 그의 연주에 귀가 말랑말랑해진다. 길을 걸으면서 아이팟으로 음악을 한두번 듣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음을 비워내고 싶은만큼, 머리와 마음, 감각마저도 군더더기 없이 있는 그대로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오랫만에 마주한 라이브 기타 연주는 지친 순례자의 마음과 귀에 따스하게 스며든다.
기타연주를 듣고 있는데 앞자리에 마사이와 한나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나는 순례길 첫날 같은 숙소에서 묵은 이후로 종종 마주치는 독일에서 온 젊은 여성이고, 마사이는 일본에서 온 대학생이다. 마사이는 며칠 전 길에서 한번 마주쳤던 친구다. 이름과 국적, 그리고 학생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연주가 끝나고 성당을 함께 나서며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모두 혼자 이 길을 걷고 있다. 외롭고 힘드니 누군가와 식사를 하고 같이 걷기를 원할 것 같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애초에 이곳에 혼자 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고, 그렇게 어울리고 사람을 찾아 나설 거였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애써 사람을 피한다는 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런 만남과 헤어짐을 받아들일 뿐이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한나지만, 식사를 같이 하는 건 처음이다. 마사이도 물론이고. 마을 입구에서 본 빠에야 전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전통 음식 중 하나인 빠에야. 각종 야채와 해산물을 쌀과 함께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인 음식이다. 쌀이 죽도 밥도 아닌 상태지만, 각종 향신료의 독특한 향과 어우러진 야채와 해산물을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마사이는 대학교 4학년생이다. 졸업을 한학기 남기고 이곳에 왔다. 법대를 다니는 그는 졸업을 하고 무엇을 할지 고민중이라 했다. 영어가 서툴지만, 어떤 질문을 해도 명확하게 알아듣고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할 줄 아는 똑똑한 친구다. 나도 대학교 4학년 때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내 인생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가. 난 어디로 향하고 싶은가. 내가 마사이처럼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이 길을 걸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과 달랐을까. 나는 그 여름 이미 취직을 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IMF경제위기 직후 채용이 없던 그 시절 남들보다 빨리 취직이 된 것에 안도하며 말이다. 방학때 한두달 다니다 싫으면 관두면 되지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던 첫 직장을 난 3년을 다녔다. 취직 대신 이 길을 두 달 걸었다면…인생의 어느 부분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지금의 이 시간이 내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리란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처럼. 마사이는 이년전, 일본의 시코쿠 길을 40일간 걸었다고 했다. 시코쿠 섬의 1200킬로의 길, 88개의 절을 거치는 그 길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게 걸었노라고 했다. 이곳처럼 일정이 짜여져 있지도 않고, 잘 정비된 숙소도 없기에 아침에 눈 떠서부터 밤 늦게까지 온종일 걷기만 했다고 한다. 하루 30킬로씩 40일을 묵묵히 걸었을 그. 말수가 많지 않지만 우물 속처럼 까맣고 깊은 눈동자를 지닌 청년이다. 일본에는 널리 알려지지도 않은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아온 이유를 알겠다. 나도 이 길을 걸으며 시코쿠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그에게 첫 외국 여행이자 순례의 시간인 이 여행이 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조금은 어색하고 어눌한 듯한 표정과 혼자만의 시간을 더 편안해하는 그지만, 서슴없이 그의 속 마음을 이야기한다. 짧은 몇마디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통할 수 있다. 그의 진지한 고민과 생각이 전달된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다. 과연 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왔던가. 그의 고민이 결코 나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 순간 서로 그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오래 알아온 친구들과도 쉽게 나누지 않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주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이 길의 매력 중에 하나다.
Distance: Castrojeriz - Fromista (26km)
Time for walking: 6:00 am – 4:00 pm
Stay: 공립 알베르게
A thing to throw away: 브래지어 (세 개 중 하나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