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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tman Jun 13. 2020

순례자의 시작과 끝 Day 20

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Day 20 피트와 리자



어제까지는 여름, 오늘부터는 가을이다. 계절의 변화가 이렇게 명확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꼭 하늘, 바람, 해가 모여 회의를 해서 내린 결론처럼, 오늘은 가을이었다. 그렇게 뜨겁던 태양도 오늘은 그저 따사롭게만 느껴지고, 공기를 옮기는 바람의 숨결도 헉헉이 아닌 쎄엑쎄엑하며 불어댄다. 한두시간 걸으면 가방을 멘 등짝은 땀으로 흠뻑 젖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잠시 쉬는 동안 시원한 바람에 금새 다 말라버린다. 이렇게 걷기 좋은 날씨는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날씨가 조금 덜 더우면 걷는게 훨씬 수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여름에 걷기 시작한 것이 후회스럽진 않다. 여름과 가을을 다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 확연한 차이를 하루 만에 이렇게 느낄 수 있는건, 내 몸이 자연 속에 온전히 머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귀 기울였으면, 조금만 몸의 촉수를 세웠으면 서울에서도 엘에이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순례자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는 다양하다. 비석처럼 세워진 돌에 파랑과 노랑의 순례자 사인이 박혀있기도 하고, 자동차 도로 사인처럼 큰 표지판이 세워져 있기도 하고, 작은 노란 화살표가 벽에 그려져 있기도 하고, 나무판자 위에 새겨져 있기도 하고. 헤깔리는 지점에서는 앞서 걸은 순레자들이 돌이나 나뭇가지로 화살표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오늘 마주친 순례자 비석 위에 누군가 적어놓은 글귀다. 


Slow as a turtle, always arrive.

‘거북이처럼 천천히 걸어라. 언젠가는 꼭 도착하리니.’


확연히 달라진 날씨 탓인지, 아니면 큰 굴곡없는 오늘의 길 때문인지, 아니면 순례길 중반에 접어들어 내 몸이 익숙해져서인지, 오늘은 십킬로의 가방도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캐리언(Carrion)을 향해 걸어가는데 내 뒷편에서 읊조리는 듯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노래인지 주술인지 모를 소리. 뒤돌아보니 마른 몸에 짦고 흰 머리칼. 가는 다리로 힘차게 걷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외던 주문을 계속 읊는다. 불교 수행에서 쓰이는 만트라. 뜻을 알 수 없는 음성들의 조합. 깊고 굵은 그의 목소리를 타고 신비로운 기운이 주변을 감돈다.

네덜란드에서 온 그의 이름은 피트. 62세이고 아내와 함께 오고 싶었지만, 아내는 무릎 연골에 문제가 있어서 결국 동행하지 못했다. 함께 걷지 못해 아쉽지만 하루에 한번씩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을 나눈다. 결혼 생활 삼십년 동안 이렇게 긴 시간 서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며 그의 눈엔 애틋함이 어린다. 그의 가방을 얼핏 보니, 마른 몸에 비해 부피가 무척 크다. 50리터짜리 가방이 빵빵하다.

‘가방이 매우 크시네요.’

‘응 기본적인 짐은 얼마 안되는데, 우쿠렐라 때문에 부피가 좀 크지.’

‘악기를 가방에 넣고 다니시는군요.’

‘노래와 연주는 내 분신과도 같아. 길에서든 숙소에서든, 혼자서든 사람들 사이에서든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는 것이 내 삶의 기쁨이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연주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되면 보게 될거야. 항상 노래를 부르니까.’


육십년 살아온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고 싶다는 그. 대단한 새로운 목표를 갖기보다 현재 누리는 행복에 감사하고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할아버지.  짧은 대화 후 그가 다시 부른 노래는 ‘don’t worry, be happy’였다. 

  

숙소에서 만난 리자. 배정받은 침대에 앉아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까 접수할 때 설명해 주었던 저녁 식사에 대한 얘기를 내게 다시 물어본다. 저녁을 숙소에서 만들어 준다는데 자기가 제대로 알아 들은 게 맞냐며. 미국에서 온 그녀는 오십대 중반쯤 되어보였다. 나도 그렇게 알아들었다고 대답하고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오후에 빨래를 해놓고 숙소 마당, 큰 나무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서 햇볕에 뽀송뽀송 말라가는 빨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리자가 다가와 옆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만트라를 읊조리던 피트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는다. 우리 셋은 거두절미하고, 인생에 대한 질문을 묻고 대답한다. 난 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쪽이었지만. 일상 속에서는 쉽게 묻지고, 애써 생각하지도 않는 많은 질문들을 토해내고 함께 고민한다.


리자, 자네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피트 할아버지가 질문한다.


‘난 내가 잘난 줄 알고 살아왔어요. 좋은 교육을 받았고, 부모가 가르쳐준대로 크게 엇나가지 않은 삶을 살아왔죠.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또 그런대로 그 경쟁에서 잘 버텨왔죠. 남들보다 앞서 나간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앞서 나간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더라구요. 나이가 들수록 온화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예민해져가는 내 자신도 견딜 수가 없었죠.’

‘이 곳을 걸으면 좋아질 것 같은가?’

‘글쎄, 뭔가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죠. 인생에 그런게 있기나 한가요. 부모로부터, 학교에서 받아온 교육, 직장에서의 내 위치,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내 틀을 좀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뒤늦게 들어버린거죠. 하지만 이미 익숙해져버린 내 삶의 패턴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오히려 혼란만 더 가중될 뿐이기도 하구요.’

‘죽는 날까지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사는 것이지.’

‘내가 남들을 이기고,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이 나이가 되니 조금 알게 되더군요. 그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려 살아온 시간이 제 삶이었던거 같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성취해도 더 큰 것을 가져도, 끊임없이 부족할 뿐이었죠. 누구 위도 누구 아래도 아닌 그저 내 자신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어요. 길 위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의 물꼬를 튀어 준답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까 고민한다는 피트 할아버지. 지금처럼 하루하루 감사하며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다며,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꽤 오래 직장생활을 했던 내게 리자는, 회사 생활하면서 만나온 누군가의 모습이기도 했다. 딱부러지는 인상에 논리적인 언변과 태도.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가 몸에 베어있지만 자신의 감정은 쉽게 드러내지 않는 비지니스적인 태도. 남들보다 조금 앞서야 인정받고 승진하고. 눈치 빠르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익과 손해를 명확히 따질 줄 알아야하고. 어눌하거나 한템포 늦게 반응하면 뒤쳐지는 것. 나 또한 회사를 다니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더 독하게 살았던 것 같다. 외국인이니까.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살아남아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그 순간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일이었고 그 자리에서 잘하고 보자는 마음이 더 컷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 또한 리자와 같은 질문들을 해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한번 들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묻어두려해도 끊임없이 목구멍 위로 올라와 대답을 강요한다. 왜 이제서야 그런 질문을 하냐고, 진작에 그런 질문을 했더라면 좀 더 일찍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겠냐며. 이미 내가 선택한 길을 잘 걷다가 왜 멈춰서서 그러냐며 난 나를 달랬다. 더 깊이 내 속을 바라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두려웠고 불안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이. 무언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진실이 그 속에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주변을 돌아보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삶에 대한 책이나 기사들을 접하면서 그런 질문을 하며 사는게 나뿐만이 아니며,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란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당장 내놓지는 못해도 그런 내 안의 이야기에 스스로 귀 기울이는 것이 시작이란 것을. 그렇게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관심을 갖다보면 매일매일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일들, 크고 작은 선택 앞에서 좀 더 당당하게 내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리자 또한 산티아고를 오기까지 크고 작은 많은 선택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 선택들은, 이전에 그녀가 결코 해본 적 없는 선택들이었을 테고. 회사일로부터 멀어져 장기간 휴가를 떠나기까지, 가족으로부터 오랜 시간 떨어져 있기까지, 그 시간동안 회사에서 벌어질 일들에서 관심을 거두기까지. 아픈 무릎으로 여기까지 걸어오기까지, 그녀는 그녀 스스로에게 낯선 많은 결정들을 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그녀를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 작은 마을, 작은 숙소에서 나와 피트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었다.

 

Distance: Fromista - Carrion (20 km) 
Time for walking:  6:00 a.m. – 12:00 pm 
Stay: 사립 알베르게
A thing to throw away: 얇은 후드 셔츠 (밤에 입고 자던 셔츠. 좀 더 두꺼운게 하나 더 있고, 날이 제법 쌀쌀해져 도톰한 거 하나면 충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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