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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tman May 24. 2020

순례자의 시작과 끝 Day 3

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Day 3 


어제 그렇게 큰 알베르게에서는 잔 건 처음이었다. 어제가 겨우 이틀째였으니, 비교할 곳도 한 곳 뿐이지만. 새로 개비한 사오층 건물 각 층에는 백개 정도의 침대와 공용 화장실, 욕실이 위치해 있었다.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자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무척 피곤했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침대 옆에 꽤 높은 칸막이가 있어서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 움직이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 소근거리는 소리, 코고는 소리 등 잠을 쉽게 청할 수가 없었다. 10시가 되면 건물 전체를 소등하기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잠을 자야하고 다음날 아침 8시 전에 숙소를 떠나야 한다. 뒤척이다가 느즈막히 잠이 들었지만, 이런저런 소리에 자꾸 깨다가 문득 내 가방 속 어딘가에 귀마개가 있다는 게 생각났다. 일어나서 가방을 더듬더듬 뒤져서 귀마개를 찾아 귀에 꽂았다. 아주 작은 스펀지 조각 두개. 꾹 누르면 아주 작아지는 스펀지. 처음 써보는 귀마개를 돌돌 말아 귀 안에 쏙 집어넣으면 스르륵 펴지면서 귓구멍이 막아지는 것이다. 넣고 나서 몇초가 지났을까.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세상이 일순간 멈춘 듯했다. 고요가 찾아왔다. 그리고 스스륵 깊은 잠에 빠졌다. 


지난 밤에 내가 느낀 그 고요는 청각 장애인의 일상일 것이다. 내게 그 고요는 몇시간의 단잠을 위한 고요였지만, 그들에겐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평생의 고요일 것이다. 코고는 소리도, 방귀뀌는 소리도, 잠꼬대 소리도 사라진 그런 세상의 고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이 존재할 것이다. 소리는 사라졌지만, 다른 감각으로 더 크게 느끼는 세상. 경험은 때론 전혀 다른 세상의 이해를 돕는다. 

시에스타, 한국말로도 꽤 익숙한 단어다. 걸그룹 이름 같기도 한 이 단어는 스페인의 낮잠 시간을 일컫는다. 보통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스페인의 태양을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오전에 잠깐 일하고 점심먹고 한숨자고 일어나 두세시간 일하다가 퇴근하는 일상이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게으른 게 아닌가 싶었다. 근데 스페인의 한여름 태양아래 이틀을 걷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들에게 시에스타는 한낮의 휴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것이란 것을. 육체의 활동을 멈출 수 밖에 없는 시간, 그것이 이들의 시에스타다. 


한여름 40도를 넘나드는 태양아래 걷는다는 건 고통 그 자체다. 살이 익어가는 것 같은 느낌. 모자를 써도 내려쬐는 태양에 머리는 점점 뜨거워지고,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흐른다. 오전 10시만 넘어도 태양은 하늘과 땅을 지배한다. 저녁 7-8시나 되어야 그 태양은 졸음에 겨운듯 조금씩 힘을 잃는다. 걷는내내 그 태양을 마주해야 한다. 피할 곳이 없다. 


그래서 물은 필수다. 내 짐은 8킬로 남짓, 물 1.5L와 과일 한두개, 점심을 위한 바게뜨 한 개를 넣고 나면 10킬로를 훌쩍 넘는다. 1.5L의 물도 부족하다. 순례길 코스마다 마시는 물을 채울 수 있는 식수대가 있지만,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여름이라면 더욱 그렇다. 몸채만한 짐을 지고 하루에 7-8시간 넘게 걷기 때문에, 온몸의 근육은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등산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이 정도의 운동량이면  하루 3-4L의 물을 마셔야 한다고 한다. 가방이 아무리 무거워도 가득 채워야하는 물. 무겁지만 꼭 이고 가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이 순례자 길에서도, 인생길에서도. 무겁지만 내 어깨에 지고 가야할 것들, 그것이 책임이든 의무든, 그로 인해 내가 힘들어도 참고 감수해야할 것들이 있다.  힘들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주는 달콤한 물. 그래서 무겁지만, 오늘도 내 가방에는 1.5L 물 한병이 들어 있다. 오래전 한국에서 첫직장을 다닐 때, 윗사람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던 한 선배가 있었다. 능력을 인정 받지도 못하면서, 많은 일을 맡아서 묵묵히 하던 그는 두 아이를 둔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었던 나는, 왜 그가 그렇게 힘들게 견디면서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 물었을 때는 그는 그 이유가 ‘가족’이라고 했다. 가족이 있어서 힘들어도 괜찮다고. 오늘 무거운 물을 가방에 넣으며, 십여년 전 그 선배의 엷은 웃음을 떠올린다. 그에게 가족은 이 물이지 않았을까. 

 

이곳에 오기 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에 한국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다. 한국에서 출판된 산티아고에 관한 책에서도 읽었고,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를 통해서도, 그리고 산티아고를 가기 위한 온라인 카페를 봐도 그랬다. 그런데 며칠을 걷고, 여러 순례자 숙소에서도 묵었지만 아직 한국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먼 곳에서 온 동양인이 낯선 모양이다. 그리고 이 길에서 만나는 동양인이 거의 모두 한국인이라는 사실 또한 신기해한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요.’

‘아 그래요? 어제도 한국 사람을 만났는데. 이름이 xx라고 하더라고요. 누군지 알아요?’

‘아니요.’

‘그런데 이렇게 멀리까지,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뭔가요? 한국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한가요?’

‘개인마다 찾아오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요…한국 사람들은 걷는 걸 좋아합니다. 국토의 70%이상이 산이라 등산도 즐겨하구요. 걷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산티아고 순레길을 잘 알지요. 산티아고에 대한 책들도 많고, 여행 프로그램에서 여러번 소개되기도 해서 많이 알려져 있답니다.’

‘아 그렇군요.’


매일 한두번씩 반복하게 되는 대화다. 대답을 위한 대답일 뿐, 왜 한국 사람들이, 올레길도 둘레길도 아닌, 이 먼 곳에 있는 순례길을 찾아오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찾아온 이유도 분명치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찾아온 이유를 알 리가 만무하다. 막연하게나마 몸을 쓰고 싶었고, 자연을 보고 싶었고, 낯선 곳에 뚝 떨어져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서였다는 정도를 말 할수 있을 뿐이다. 도피일 수도 있고, 휴식일 수도 있고, 재충전의 시간일 수도 있다. 뭐라고 부르든, 생각을 잠시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고 있지는 않다. 이제 고작 삼사일을 걸었을 뿐이니, 좀 더 두고 볼 일이겠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온다고는 하지만, 이곳까지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한달여의 시간과 그 시간 동안 ‘현실’로부터 완전히 분리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다들 먹고 살기 바쁘고, 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지며 살아가야할 많은 일들이 있을테니 말이다.


이곳을 걷는 사람들 중에 젊은 친구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20대 초반 대학생들도 종종 볼 수 있지만, 대부분 나와 비슷하거나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이다. 이 길을 걷는다는 건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서울 부산 거리를 왕복해서 걷는 것이다. 한달 넘게 걸어야 하고, 하루에 7-8시간씩 걸어야 한다. 게다가 이 곳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을 견뎌야 한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도 50,60대 이상의 사람들이 많다. 힘든 이 길을, 젊은이들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는 이 길을 그들은 왜 걷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서인지 내 시선이 나이 지긋한 사람들에게 자꾸 가 닿는다. 내가 이삼십년 후 이 길을 다시 걷게 된다면 그 이유는 무얼까. 지금과 무엇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이 길을 걷는게 수월할거란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힘들 줄 예상하지 못했다. 내 평생 이렇게 장시간 무거운 짐을 메고 걸어본 적이 없으니, 어느정도의 힘겨움인지 예측한다는 건 사실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험하지 않은 일을 쉽게 단정지어 버리는 습관은 삶 곳곳에 베어 있다.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쳐 저녁 무렵에 도착한 수비리 (Zubiri). 순례자 공립 숙소는 물론 여러개의 사설 숙소에도 남은 자리가 없었다. 한시간 남짓 숙소를 찾아 헤맸다. 이미 몸은 지칠대로 지쳐서 한발짝도 더 걸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한두시간 더 걸어야 다음 마을이 나오는데 이미 어둑어둑해져서 더 걸어 갈 수도 없다. 여기저기 마을을 헤매다니고 있는데 관광안내소가 저 멀리 보인다. 그곳에서는 이 마을에 위치한 모든 숙소 리스트와 가격, 그리고 연락처 등을 가지고 있어 관광객에게 숙소를 알려주거나 빈자리가 있는지 확인해 준다. 관광 안내소 직원이 몇군데 전화를 걸어보더니 자리가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마지막 남은 곳이라며 전화를 걸더니, 방이 딱 하나 남아 있다는 기적같은 소리를 듣는다.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내뱉으며 그곳에서 일러준 호스텔로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걸어간다. 


Distance: 론세스바예스 (Roncevalles)에서 수비리 (Zubiri)까지 21km 
Time for waling:  7:30 am - 6:30 pm  
Stay: Hos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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