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도구의 언어

Part 2 책을 즐기고


6. 도구의 언어


나는 한국말과 영어를 함께 써. 시작이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나.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한 것은… 한 살? 두 살? 잘 모르겠지만 아마 오래전부터였을 거야.


“버튼? 버튼?? 버튼버튼버튼버튼!!”


태어나서 내가 처음으로 말한 완벽한 단어는 버튼(Button: 단추)이래. '엄마'나 '아빠'가 아니고 '맘마'도 '우유'도 아닌 버튼! 엄마, 아빠는 내 첫 단어가 버튼이었던 것이 너무 황당했다며 지금도 가끔 웃으며 이야기하곤 해.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아. 노아 너는 지금도 버튼을 외치던 그때와 똑같거든.”


나는 온종일 밖에 나가고 또 나가자고 우는 아기였대. 그때 우리 가족은 아파트 2층에 살았는데, 옷 입고 신발 신고 나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밖으로 가야 한다는 뜻으로 애절하게 '버튼'으로 울부짖었던 거야.

“옷! 슈!! 버튼!!! 으아아아아앙!!”


엄마가 찍은 비디오를 봤어. 못생긴 대머리 아기가 한국말과 영어가 마구 섞인 엉망진창 단어로 처절하게 외치고 있지. 하지만 적어도 눈빛은 완벽한 문장을 말하고 있어.

‘제발 밖에 나가요! 안 나가면 내가 백 배로 울어버릴 테다!!!!!!’


난 여전히 바깥에 나가는 것을 아주 좋아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비몽사몽 엄마에게 달려가 물었던 기억이 나.


“엄마, 오늘은 어디 갈까?”


엄마 말로는 이 질문을 몇 년간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들었다는 거야. 만일 내가 말을 한마디도 못 했더라면, 영어도 한국말도 못 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살 수 있었을까? 으악! 상상만 해도 말 못 하고 사는 삶은 너무 끔찍해. 소름이 돋는다고!

내 엉망진창 섞인 언어에 대해 해명을 해야겠다. 집에서 엄마는 나에게 항상 한국말을 쓰고, 아빠는 영어로 말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대. 그래서 내가 태어나고 두 가지 말을 동시에 들었지. 내가 뭘 알겠어? 배운 대로 섞어 마음대로 쓰다 보니 영어와 한국어 볶음밥이 된 거야. 엄마는 무조건 한국말, 아빠는 영어만! 사실 아빠는 한국말도 아주 조금 할 수 있지만 솔직히 형편없어. 아빠가 가장 자신 있게 쓰는 한국말은 이게 전부야.


세상에…

아이고…

대애박!


아빠가 나처럼 한국말을 잘하고 싶다면 공부를 아주 많이 해야 할 거야. 머리에서 뜨거운 불이 나와야 돼. 다른 나라 말을 배우는 것은 솔직히 아주 어려운 일이니까. 나는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 힘들었고 또 지금도 힘들어. 끝이 없거든. 말은 잘 하지만 쓰기와 읽기는 지금도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쉽지 않아.

고백 하나!

솔직히 한국말 배우기를 그만 하고 싶은 때도 있었어. 내 친구들은 주말이 되면 무조건 놀거나 스포츠를 배우러 가. 하지만 나는 토요일마다 한글학교에 가서 몇 시간씩 한글 공부를 했거든. 억지로 한 일은 아니야.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말을 배우고 싶었어. 매년 한국에 갈 때마다 가족, 친구들과 한국말로 이야기해야 되잖아. 또 언젠가 한국에서 초등학교도 꼭 다녀보고 싶은 소망도 있었거든. 그래서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지. 그래도 한국말 공부가 힘든 것은 사실이야. 얼굴 가리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 나에게는 눈물의 한국말이다.

다행인 것은 학교에서는 오로지 영어만 해. 나는 당연히 영어가 쉽지!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까. 모국어가 제일 쉬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야. 내가 가끔 친구들에게 재미로 한국말을 가르쳐 주거든? 듣고 따라 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친구는 거의 한 명도 없어.


“사과는 애플이야. 사과. '사과' 해 봐. 사-과!”

“엄… 싸아아구아…?”


얼마나 어려운지 봤지? '싸아구와'라고 말했다가는 한국에서 사과를 절대 못 사 먹을걸? 나는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진짜 부러워. 우리 엄마는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데 나도 언젠가는 꼭 엄마처럼 한국말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힘들고 지루해도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나에게 아주 어려운 일인 것처럼 아마 너희들도 영어나 중국어 같은 다른 나라 말을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야. 무엇이 더 어려울까? 영어? 아니면 한국어? 솔직히 나는 한국어가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영어나 중국어가 최고로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노아야, 세상에 쉬운 언어는 없어. 다른 나라 말을 배우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지. 하지만 다른 나라 말을 배우면 인생이 훨씬 더 즐거워져. 할 수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것, 읽을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왜냐하면 언어는 인생을 더 멋지게 즐기기 위한 도구거든! ”


언어가 도구라고? 도구는 드라이버, 망치, 가위 그런 것이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언어가 도구라고 했어.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어. 어떻게 언어가 도구가 될 수 있지?


Q. 언어를 알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책을 읽는다.

대화를 나눈다.

글을 쓴다.

만화도 볼 수 있다.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국적이 달라도 언어로 친구가 될 수 있다.


어때? 혹시 더 보태고 싶은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분명 더 있을 거야. 아니다. 분명히 아주 많을 거야! 요즘 나의 큰 즐거움은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아기 때 엄마가 읽어주던 한국 그림책을 나 혼자 볼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BTS 노래를 듣다가 한국말이 나오는 부분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멋지지. 친구들이 ‘강남 스타일’을 대충 흥얼거릴 때 난 싸이처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일이야.

나에게 한국어가 어려운 것처럼 세계의 많은 친구들이 영어를 배우려고 오랜 시간 고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아주 긴 시간 오래도록 공부해야 하고 중요한 시험도 많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If you cannot avoid something, just enjoy it.


내가 좋아하는 말이야.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끌려가는 것보다 훨씬 즐거울 테니까. 토요일 아침이면 소파에서 고양이들과 뒹굴며 스펀지밥 만화나 실컷 보고 싶은 마음을 접고 가방을 싸서 한글학교에 가. 방학 내내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 게임하고 놀고 싶었지만 엄마랑 매일 한국어 공부도 했지. 결론은 너와 나, 우리들의 목표는 서로 다르지만 걸어가는 과정은 같을 거야.


언어를 나의 튼튼한 도구로 만드는 것!


나는 열심히 한국말을 배워서 지금보다 더 많이 즐길 거야. 그러니 너희들도 힘내 줘. 영어를 잘하게 되면 미래에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엄청나게 넓어질 거야. 이건 내가 약속할 수 있어! 세상에 한국어를 쓰는 곳보다 영어를 쓸 수 있는 곳이 백 배는 더 크잖아. 그러니 내가 한국어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이득이야! 맞지?

사실 무엇이 되더라도 좋아. 한국어, 영어도 좋고 스페인어, 중국어도 모두 다 좋아. 언어를 내 도구로 만들어 보는 거야. 훗날 서로 친구가 되고 우리들의 능력을 합체하면 도구는 두 배, 세 배가 되겠지? 그러면 우리는 천하무적이야.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상상만 해도 즐거워.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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