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가 아닌, 바람이 달리는 이유
- 영화 <말아톤>을 다시 보고
요즘 거리엔 러닝화를 신고 뛰는 사람들이 많다.
달리기가 유행이라는데, 나는 아직 그 맛을 모른다.
그런데 우연히 <말아톤>을 다시 보게 됐다.
어릴 적엔 초원이가 귀엽고, 엄마가 위대해 보였던 그 영화.
이상하게 이번엔, 코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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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그리고 구원의 나비효과>
코치는 한때 영광을 누렸던 운동선수였다.
지금은 술에 찌들어, 음주운전으로
장애학교에 봉사활동을 오게 된 사람.
초원이의 ‘코치’를 맡은 그는 처음엔 모든 게 귀찮아 보인다.
시킨다고 해도 그냥 달리기나 하라는 식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가 바뀐다.
기록도, 성과도, 결과도 중요하지 않은 달리기.
그냥 달리는 걸 순수하게 사랑하는 아이.
코치는 초원이를 보며,
자신이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기억해낸다.
심장이 뛴다. 숨이 거칠어진다.
그는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 영화는 초원이가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초원이에 의해 세상이 조금씩 구원받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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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혼자 전부였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단지 ‘사랑’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엄마는 늘 초원과 함께 있었지만,
사실상 사회와의 싸움은 혼자였다.
초원이 이제 성인이 되었다.
몸은 커졌고, 여전히 정신은 어린아이다.
그런 아이를 노년의 엄마가 돌보는 일.
감동 이전에, 절망에 가까운 현실이다.
예전에는 초원이를 피하거나 오해하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걸.
장애가 있는 성인 남성이 다가오면,
나 역시 본능적으로 움츠러들 것 같다는 걸.
이 감정을 인정하고 나서야,
진짜 이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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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말고, 바람의 맛>
영화 속 초원이는 초코파이 때문에 달리는 줄 알았고,
엄마의 인정을 위해 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달릴 때 느껴지는 바람을 좋아했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누구도 그를 장애인이라 부르지 않고,
그저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된다.
차별도, 시선도 사라진다.
그가 좋아한 건 그 자유, 그 리듬,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의 세계였다.
영화를 보며 나도 처음으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록도 목표도 없이, 그냥 바람을 맞으며 달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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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며, 영화도 달리게 된다>
<말아톤>은 여전히 같은 장면으로, 같은 이야기로 흘러가지만
나이 든 내가 그걸 다르게 본다.
어릴 땐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인물의 고통이 보이고,
예전엔 미워했던 군중의 마음이 이해된다.
무엇보다, 달리는 초원이의 표정이 전보다 더 깊이 박힌다.
영화는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달라졌고,
그래서 영화도 함께 달라졌다.
이것이 내가 한 작품을 몇 번이나 다시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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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달리는 중이다>
누구는 현실에서,
누구는 마음속에서,
누구는 시간 속에서 달리고 있다.
그 달리기에는 이유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달리기 안에는 우리 각자의 삶, 목표, 힐링, 생각 등
단순한 인기 운동이 아닌 많은 것이 담겨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