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사람들은 왜 짜증을 내지 않는걸까?
어제 1일 단기 알바 공고에 지원했던 물류센터 알바를 다녀왔다. 일급 100,000원.(원천세 3.3% 제외, 익일 입금) 무려 점심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단다. 놀랍다.
고작 2주지만 아파트 건설 현장 노가다로 시스템 동바리라는 팀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 이런 류의 현장은 사람들이 매우 거칠고 욕이 난무할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밖에 없고, 애매한 지금의 나를 써주는 곳이 없으니 견딘다는 마음으로 아침 7시 50분 출근 버스에 오른다.
1시간 넘게 뒷문에 머물러 있는 에어팟 왼쪽 유닛. 출근 시간이라 많은 사람이 버스에 타고 내렸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주워서 주머니에 챙겨가지 않는다. 하필 맞은 편에서 이런 애처로운 모습을 잔인하게 지켜봐야만 했떤 나였기에,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기사님에게 인도한다. 더러운 바닥을 뒹군 탓에 새하얗던 이어팁이 새카맣게 변질됐다. 어떤 징조 같은 게 아닐까 괜히 신경쓰인다.
물류센터 경비소에 멈춰서서 인사 담당자에게 전달받은 현장 팀장님 번호로 전화를 건다. 바로 앞 흡연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다가와 들어오라고 안내한다. 생각보다 젊다. 나보다 조금 형일지도?
아침 9시 15분. 출근 명부에 이름과 시간을 적고 안전화를 받은 뒤 2층 휴게실로 이동한다. 남자, 여자를 포함해 10명 정도 머무르고 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마치 고요한 새벽의 인력사무소의 공기를 흉내내는 듯하다. 얼핏 보니 여자들은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짙은 화장을 하고 왔는데, 무슨 이유가 있나 문득 궁금해진다.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고 팀장님의 뒤를 따라 간다. 문 하나 지났을 뿐인데 분주한 물류센터의 모습이 개시되었다. 내 앞을 가던 남자 2명이 마치 감옥에 끌려가듯 질질거리며 이동한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을 추월해 1등으로 팀장님 시야에 들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이동한 곳은 담배장. 대전의 모든 편의점들의 발주를 받아 담배를 출고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침 9시 30분. 남자 1, 여자 2 그리고 나. 또다른 여자 1명은 나중에서야 왔다. 조장 1, 반장 1, 스태프 2, 알바 1(나) 총 5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가장 나이가 어린 친구가 책임자라는 사실에 놀란다. 조장, 반장 중 누가 더 높은 직급인지 퇴근할 때까지 헷갈려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고생할 각오와 욕 먹을 각오로 왔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업무는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담배 박스를 컨테이너 하드 랙에 넣고, 반대편으로 넘어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박스를 놓는다. 랙에 설치된 LED 디스플레이를 참고하여 점포별로 발주 받은 담배를 알맞게 넣는 작업이다. 점포별로 고유 ID가 있고, 요청받은 담배 종류에 따라 랙에 빨간색 LED가 점등된다. 뜬금없이 여직원 한 명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박스 사이에 놓더니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재낀다. 젊은 친구들이랑 같이 일하는 건 역시 좋다. 나도 알고 있는 노래들이다. 내적 친밀감이 급격히 형성된다.
'1'이라고 적혀 있으면 담배 1케이스, '2'라고 적혀 있으면 2케이스를 박스에 담아 옆으로 넘기는 방식이다. 나이가 제일 어려보이는 조장님(또는 반장님)에게 설명 받을 때는 몰랐는데, 30분 정도 하다보니 금방 적응했다. Confirm이라는 빨간색 LED 버튼을 누를 때마다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출근 2시간 만에 팀장님이 와서 묻는다.
"내일 출근하실 수 있어요?"
물론 OK다. 어차피 여기 아니면 내가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다. 나에게 선택지는 없다. 오히려 좋아. 하지만 출국 전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매일 출근해서야 다음 스케쥴을 받을 수 있는지 매번 가슴 졸이는 불안한 안개를 빨리 걷어버리고 싶다. 더 오래 근무할 수 있는지 좀이따 물어봐야지.
물론 처음이라 헤매는 시간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해코지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실수하면 당연하다는 듯 다른 사람이 와서 뒤처리를 해주었다. 왜 아무도 짜증을 내거나 욕을 하지 않는거지? 참 이상하다. 아무리 내 나이가 제일 많아보인다고 해도 이곳은 현장이다. 어째서?
추측해본다.(나이가 들면서 얻은 이런 객관적 관점은 사회 속에 녹아드는데 꽤 큰 효과를 가져온다.) 이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것이다. 즉, 일일 알바로 왔다가 떠나가는 사람들을 숱하게 마주한 거라 더 이상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도 무리하게 거리를 좁히지 않으려 한다. 서로 부담스럽다. 자기들끼리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는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라 너무 좋다. 나는 공기 취급이지만 이게 너무 좋다. 편하다. 퇴근 전까지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말이 통하지 않아 일만 열심히 하는 외노자가 된 마인드로 왔다.
오후 2시에 되어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다. 벌써 2시라고???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게다가 1시간이나 휴식시간이 부여된다. 2층 식당에 가서 셀프 배식을 한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무료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휴게실로 돌아오니 옆자리 남자가 빤히 쳐다보길래 시선을 마주쳤다.
"승환이...?"
6년 전 영상 학원 다닐 때 같은 수업을 들었던 동갑인 친구다. 출근하자마자 얼굴을 보고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느낌이 맞았다. 대화를 나누다가 떠올랐다. 친구는 처음부터 나를 알아봤다고 한다. 워낙 말이 없던 조용한 친구이기는 했다. 너무 친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그런 관계.
“그래도 아는 사람 있어서 좋다.”
그는 나를 매우 반갑게 여겼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일도 나온다는 그의 말에 연락처는 그때 받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왜 여기서 만나야했을까.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복잡미묘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오후 3시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아침에 하던 업무를 이어서 한다. 설마 이것만 하고 집에 가지는 않겠지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렇게 쉬운 일을 하고 돈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물류센터인데. 이것보다 더한 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퇴근했다. 어라...? 심지어 예고되었던 6시 30분보다 4분 빠른 조기퇴근이었다. 모든 팀원들은 재빠르게 짐을 챙겨 출퇴근 명부에 퇴근 시간과 서명을 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로 앞에 설치된 버스정류장에서 퇴근 버스를 기다린다.
퇴근 전 어린 조장님(또는 반장님)에게 이번 주 내내 근무하고 싶다고 밝혔더니, 팀장님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면 스케쥴을 잡아주실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일 출근하자마자 똑같이 담배장으로 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퇴근 20분 전 다음 역할을 알려줬는데 '포장'이었다. 미리보기 느낌으로 알려주는거라고 했다. 다시 알려줄테니 참고만 하라고. 팀원들에게 들어가보겠다고 인사했더니 "내일 나올거죠?!?!?!"라며 한 여직원이 호소하듯 외친다. "내일 뵐게요. ㅎ"라고 답하며 뒷걸음질 친다.
퇴근길의 버스가 만원이라 1시간 동안 꼼짝없이 서서 왔다. 양쪽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선명하다. 조금 작은 안전화를 착용한 탓에 발톱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여러모로 당연한 피로감이라고 납득한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 8시를 조금 넘었다. 엄마가 요리해주신 고추장불고기와 탕국을 들이켠 후 편의점에서 사온 병맥주 하나를 통째로 마셔댄다. 간만에 고된 하루였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밝으니 긴장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금요일까지 일하게 된다면 그때 팀장님에게 1월 중순까지 스케쥴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다음 날, 퇴근하고 통장을 보니 일급이 들어와 있었다.(원천세 3.3% 제외) 무덤덤하다. 직급 순서가 반장 > 조장이라는 걸 알았다. 고로 나이가 제일 어린 친구가 반장이 맞다.
아는 사람이 있어 반갑다던 친구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팀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 새로 온 사람들을 현장으로 인계했다. 여기는 그런 곳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