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초기 정착 성공!
집 앞 패스트푸드점에 채용됐다. 1주차에 5일 동안 4시간씩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매장 오픈에 대한 것이었다.(트레이닝을 트라이얼이라고도 하지만, 우리 매장에서는 트레이닝이라고 표현한다.) 매니저는 2주차 저녁 시간에 총 4일 동안 4시간씩 이루어지는 마감 근무에 대한 추가 트레이닝을 예고했다. 그뒤로 다른 친구들처럼 일 6~7시간 스케쥴을 주겠단다.
내심 오픈만 하는 스케쥴을 고정적으로 받는 걸 기대했다. 그래야 나만의 루틴을 세워 규칙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오프닝이고 다음 주에는 마감을 알려줄게'라는 동료 직원의 말을 듣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레쥬메에 적어둔 Full availability 때문인 듯하다. 물론 이렇게 해야 채용 확률이 높아진다는 꿀팁 때문에, 당장 돈이 급했던 나에게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외노자로 살면서 내 시간을 확보하는 게 사치였던 걸까? 스스로도 배가 불렀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밤 10시 잠에 드는 루틴을 지키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
뿐만 아니라 Full time을 원했지만 입사 초기이기도 하고, 캘거리의 2월은 slow season이라 손님이 별로 없어 스케쥴을 기대한 만큼 많이 받기가 어렵다. 그래, 이쯤에서 만족하자. 적어도 외부 지원없이 월세와 최소 생활비는 충당할 고정 수입원을 확보하지 않았나. 무엇보다 레쥬메를 드랍할 때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근무지가 있다는 게 엄청 크다. 숙소를 6개월 선계약을 해버렸으니 근무지와의 거리가 중대사항이었다.(동료들은 버스로 30분~1시간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한단다)
면접을 안 봤다. 매니저를 따라 주방에 들어갔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A4 용지에 빈칸을 기입하는 것으로 채용 절차가 마무리되었다.(SIN number도 적으라고 했는데 뭔가 미심쩍어 집에 두고 왔다는 핑계로 다음에 적기로 했다) 당장 내일부터 트레이닝을 시켜준다고 했다.
매니저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하다못해 트레이닝 기간 동안 임금이 지급되는지, 이후 스케쥴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등등 간단한 것들조차 물어보기 쉽지 않았다. 매니저가 내미는 모자, 티셔츠, 앞치마를 덜렁 받아들고 "내일 보자"는 그녀의 인사를 끝으로 매장을 나와야 했다. 관상으로 면접을 본 건가?(성실한 관상에는 자신있다) 레쥬메에 적힌 패스트푸드점 경력만으로 나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건가? 일단 트레이닝 시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의미인가?
밴쿠버 사는 현경씨에게 물어보니 면접 없이 트레이닝 하는 경우는 생전 처음 들어본다며 놀라워했다.(직원들에게 물어보고서야 트레이닝 기간에도 최저 시급이 정상적으로 지급된다는 걸 알게 됐다) 유튜브에서 '인터뷰 예상 면접 질문' 영상을 보면서 간단하게 답변을 준비해갔지만 쓸모없게 되었다. 오히려 다행이다. 왜냐하면 영상 속 등장 인물들의 대화가 무슨 소린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다.
내가 일하는 곳은 Carl's Jr라는 패스트푸드점이다. 햄버거를 판매한다. 사이드 메뉴가 있긴 하지만 할라피뇨 치킨 팝, 어니언링, 감자튀김, 와플형 감자튀김으로 총 4가지뿐이다. 튀기는 시간조차 대부분 2:30로 통일돼 있어 복잡하지 않다. 패스트푸드점 치고 단순해서 놀랐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 같은 초보 워홀러에게 희소식이다.
일~목요일까지 총 5일 동안 아침 10시~오후2시 출근해 오프닝 및 재료 손질, 버거 조리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버거킹, 맘스터치, 맥도날드 같은 한국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 경력이 여기서 되살아났다. 닭가슴살은 맘스터치처럼, 소고기 패티는 버거킹처럼, 햄버거 조리는 맥도날드처럼 진행되는 이곳의 시스템이 잊고 있던 과거의 파편들을 하나씩 불러일으켰다. 동료들은 대부분 필리핀 사람들인데, K-드라마나 한국 음식, KPop에 대해 우호적이라 한국인인 나를 잘 대해줬다.(그렇다고 우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부분은 조금 곤혹스러운데, 한국인 특유의 눈치 스킬을 적절히 사용해 배워나가고 있다. 아직 내 영어가 부족하기도 하고, 친구들의 영어에 필리핀 억양이 섞여 있어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애매하면 부족한 영어로 다시 한 번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은 친절히 설명해준다. 준비해간 작은 메모장에 교육 내용을 한국어로 받아적는다.(노트를 슬쩍 엿보던 친구들이 웃으며 자기들끼리 무어라 말한다. '한국어로 적어서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네~'라고 하는 듯하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씩 일을 배워나가고 있다.) 그 모습 때문인지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을 좋아해주는 것 같다. 레쥬메를 드랍할 때 필요한 건 자신감이지만, 일을 배울 때 필요한 건 성실함이다.
교육 5일차 매니저에게 '손님이 없는데 감자튀김을 너무 많이 튀기지 마라!'는 한마디 들은 것 외에 혼난 적은 없다.(그러면서도 그녀는 퇴근할 때마다 엄지를 척 들어올리며 오늘도 고생했다고 따뜻한 미소로 인사해준다.)
매니저가 언제쯤 채용 확정 통보를 내릴까 궁금했다. 트레이닝 3일차 아침 10시에 출근했더니 매니저가 내 직원번호라며 4자리 숫자를 알려줬다.(엄마 휴대폰 번호 뒷자리랑 똑같아서 내심 크게 놀랐다) 그녀가 직접 POS 기기에 내 번호를 입력해 Clock-in하여 출근 기록 남기는 법을 알려줬다. 오늘 퇴근부터 이렇게 하면 된단다. 이상하다... 트레이닝 중인데 벌써 직원번호를 준다고? 김칫국 마셔도 되는 부분인가?
주방 동료 Franklin이 스케쥴 보는 법을 알려줬다. 반대편 프렙 스테이션(햄버거 조리 테이블)으로 넘어가 벽에 걸린 A4 용지를 유심히 살폈다. 맨 아래 'An'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3주차까지 내 스케쥴이 배정돼 있었다. 다음 주는 마감 근무에 대한 추가 트레이닝을 받아야 된다고 이미 통보 받은 뒤였다.
1주차는 오프닝 트레이닝, 2주차는 마감 트레이닝이고 3주차부터 스케쥴을 받아 1인분을 하게 된다는 거였다. 특이한 점을 2가지 발견했다. 하나는 한 주의 시작이 일요일이라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저녁 시간인데 24시간 형식으로 표기돼 있지 않고 저녁 근무임에도 5:00~11:00으로 적혀 있다는 점이다. 벌써 헷갈린다. 분명 스케쥴 혼동한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이에 적응한 것인지 딱히 의문점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하지...
트레이닝 5일차 오후 2시 POS 기기에 퇴근을 찍으려는데 매니저가 옆에서 스케쥴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해줬다. 다음 주는 저녁에 마감 근무에 대한 트레이닝을 할 것이며, 그 뒤로 하루 6~7시간의 스케쥴이 주어질 것이라는 점.
"매니저님은 언제 쉬세요?"
교육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봐 왔기에 언제 Off인지 궁금했다. 내가 일해왔던 곳들은 모든 매장은 매니저들이 교대 근무를 했는데 여기는 매니저가 한 명인 듯했다.
"난 안 쉬어. 얼마 전에 2일 쉬기는 했지만."
"피곤하지 않으세요?"
"피곤하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돈을 벌어야 하니까."
우리 매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친구들은 가족이나 친척들을 따라 캐나다에 왔다고 한다. 아무 인맥없이 홀로 캐나다에 워홀 왔다는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이 용감하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런가...?(한국과 달리 필리핀 사람이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으려면 반드시 캐나다에 가족 또는 친인척이 거주 중이거나, 제 3자로부터 스폰을 받아야만 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워낙 맨땅에 헤딩하는 한국 워홀러들의 이야기를 숱하게 접해서 딱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레쥬메 드랍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났다. 트레이닝 중에 다른 매장 채용 담당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총 5곳이었다. 그중에서도 맨 처음 레쥬메를 돌렸던 Server 포지션으로 지원한 다운타운의 카페에서 연락이 왔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그때 멘트가 입에 붙지 않아 자신감이 없는 상태로 레쥬메를 드랍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채용 담당자들이 아니었나 싶다.(생각해보니 캐나다 와서 아직 스팸 연락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중에서도 보이스메일을 보내준 곳이 있었는데, 다만 보이스메일을 써본 적이 없어 상대방의 음성 메세지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며칠 헤맸다.
트레이닝을 받는 곳에서 반드시 근무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한다. 룸메이트인 인도인 친구와 워홀 경력자들의 조언이었다. 여기저기 다녀보면서 어디가 나와 잘 맞는지 비교해서 최고의 선택을 하라고 했다. 나 역시 향후 재개될 레쥬메 드랍을 대비하기 위해 적어도 대면 인터뷰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채용 담당자가 요구하는 일정과 나의 트레이닝 일정이 겹쳐 조율이 되지 않아 전부 캔슬해야 했다. 자기들은 아침 시간대가 아니면 면접을 받아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쉽다.
레쥬메 내용에 대해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다. 캐나다 밖의 경력은 현지인들이 받아주지 않는다는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이닝 기간 동안 하나씩 들어오는 인터뷰 제안은 내 레쥬메가 부족한 게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더 나아가 매장에 방문해 매니저에게 직접 레쥬메를 전달하는 게 확실하다는 것.(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직접 레쥬메 드랍해서 일을 구했다고 한다) 이번 경험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너 어디 살아?", "캐나다에는 언제 왔어?", "가족이나 친척은 없어?" 등 호기심 어린 친구들의 이런저런 질문을 받게 된다. 미숙한 업무를 하면서 부족한 영어로 이해하고 대답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들의 성의에 보답하려 최대한 열심히 머리를 굴려 대답한다.
매장에서 도보 5분이면 집에 도착한다는 말에 친구들이 제일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버스로 30분~1시간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벌지도 못하는데 버스비를 지출해야 한다니. 그럼에도 미숙한 나를 탓하거나 짜증내는 사람이 없다는 게 신기하다. 넘쳐나는 인복에 감사하다.
일자리가 확정되면서 나의 캐나다 워홀 초기 정착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뭐,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아, 사실은 마감 근무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데 깊은 귀차니즘에 빠져 버렸다. 일을 배우는 게 귀찮고, 목표했던 영어 공부를 해나가는 게 너무 귀찮다. 또다시 수렁에 빠졌다.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뭘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겠다. AI 혁명으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보면서 혼란스러워진다. 한국에 돌아가면 적어도 생계 유지를 위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때 무경력인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내가 워홀을 온 가장 큰 이유는 영어 공부지만, 이후 내가 바라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확실한 영어 익히기 꿀팁' 같은 영상을 보면서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걸 통감하면서도, 막힘없는 프리토킹을 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여기에 투자해야 하는건지 답답하다. 시간에 비례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시간을 쓰는 게 미래의 내가 돌이켜 봤을 때 필요했던 시기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아 답답하다. 그래서 집에 오면 유튜브를 켠다.
캘거리 하늘 위에 뜬 태양으로 인해 골목길을 잠가버린 눈덩이를 매일 조금씩 녹여낸다.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며, 필연적인 일상의 전환인 것이다. 캐나다 입국, 숙소 결정, 잡 구하기 이 모든 게 단 2주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아직 시간은 많다. 그래도 조급한 마음은 어떻게 해야할 지를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