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를 한국처럼 계좌로 입금해주시면 안될까요?
캐나다 캘거리에 온 지 32일이 지났다. 그것밖에 안 지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로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숙소와 잡을 빨리 해결한 덕분인 듯하다. 어느 하나 아쉬운 것이 없어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순간이다.
한국과 다르게 캐나다는 '주급'으로 급여를 제공한다.(정확히 2주 단위라 '2주급'이라는 표현이 올바른 것 같지만, 편의상 주급으로 통일하는 듯하다.) 한 달에 급여를 1번 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여기는 1달에 급여를 2번 받는 셈이다.
내가 사회초년생이었다면 '급여 2번 받으니까 돈 많이 버는 거 아니야?'하고 순진하게 반응할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투잡을 통해 월급을 2번 받아본 경험이 있어 놀랍지 않게 되었다. 조금은 슬프다.
'페이첵'이라고 하여 Pay Check인 줄 알았더니 Cheque라는 단어가 따로 있었다. Cheque는 '수표'라는 뜻인데, 급여 명세서라고 보면 될 듯하다.(문득 우리나라 체크카드의 Check와 페이첵의 Cheque의 유사성을 생각했지만 머리 쓰는 게 싫어 생각을 그만두었다.)
2월 14일 토요일, 생애 첫 페이첵을 받았다. 다른 친구들은 하루 전인 13일 금요일에 받았다지만 하필 나는 OFF였던 탓에 하루 지나서 받은 것이다.
"An, 네 페이첵이야."
"응? 감사합니다."
워홀 경험자들이 남겨놓은 후기에서나 듣던 '페이첵'이라는 걸 처음 받아보니 얼떨떨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커뮤니티에서도 페이첵이라는 단어는 많이 접했지만 정확히는 뭔지 아직 모르겠다. 해보면 알게 되겠지.
휴게 시간에 햄버거를 먹으며(식사 제공을 안 해줘서 직원 할인 50% 받고 햄버거를 사 먹는다) 페이첵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선진국이라는 캐나다에서 왜 굳이 이런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걸까? 레쥬메 드랍부터 급여 지급까지 도무지 머리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당황스럽다. 이 종이 쪼가리를 잃어버리면 내 급여가 사라지는건가? 우리나라처럼 급여를 통장에 직접 꽂아넣지 않는 이유가 대체 뭘까 궁금해진다.(Direct Deposit이라고 근로자 계좌로 직접 입금하는 방식도 있지만, 관공서나 대기업 같은 곳에서 채택하는 방식이라 카더라.)
내 영문 이름은 An SeungHwan 인데, 급여 명세서에 Sung 라고 기재돼 있다. 이건 분명한 에러다. 매니저가 실수로 이름을 잘못 입력했나? 가볍게 생각해도 은행에서 쉽게 처리해주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계좌 앱에 등록된 내 이름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아... 벌써 피곤하다. 내 돈 받는데 대체 왜 쓸데없는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매니저에게 물어봐야지.
휴게를 마치고 주방에 돌아가니 매니저는 퇴근한 뒤였다. 난 어려서부터 항상 이런 타이밍이 안 맞았다. 나이가 드니 이제 이런 상황에는 그러려니 한다.
다음날 아침, 매니저에게 바로 페이첵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다.
"매니저님 페이첵에 적힌 제 이름이 이상해서요."
"한 번 보여줄래? 음... 그러네? 이건 나한테 줘. 다음 주 화요일에 수정해서 다시 줄게. 미안해."
다음 주 화요일에 나는 OFF 인데... 그 다음날은 마감 근무라 매니저가 또 없다. 뭔가 계속 꼬인다.
페이첵으로 급여 수령하기
1. 은행 지점 직접 방문
2. 뱅킹 App 사진 업로드
3. ATM 입금
나처럼 계좌를 신규 개설한 초반 워홀러들은 App을 통해 페이첵을 온라인으로 제출하면 2~3일 영업일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은행에 직접 방문하면 즉시 입금 처리가 된다고. 대체 왜...? 굳이 은행에 방문할 생각은 없었지만, 매니저가 새로 내어준 수정된 페이첵을 보고 가야만 한다고 느꼈다. 내가 원치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서 콘텐츠를 만들어주니 참~ 감사하다.
- 2월 1번째 페이첵
돌고 돌아 페이첵을 다시 받는데 3일이나 걸렸다. 그런데 새로 인쇄한 것이 아닌, 볼펜으로 직접 작성한 이름과 매니저 서명이 담긴 페이첵이다. 이게 효력이 있나...? 매니저에게 얘기했으니 전산상으로도 처리된거겠지? 우리 매장은 프랜차이즈라 사장이나 매니저에게서 급여가 나오는 게 아니라, 본사로부터 직원들에게 뿌려지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온라인 앱으로 제출한다고 가볍게 처리될 것 같지가 않다. 당장 은행에 가고 싶지만, 이번 주는 내내 오프닝이라 퇴근하면 은행도 문을 닫아 도저히 업무를 볼 수가 없다. 다음 주 월요일에 가야 돼...
항목에 Vacation Earned라는 항목으로 12달러가 추가되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주휴수당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될 듯하다. 파트타이머에게 적용되는 급여 항목이라고.(일부러 떼 먹는 고용주도 있다고 하니 잘 체크해보자.)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약 4명. 그런데 창구 직원은 단 2명이라 3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페이첵에 볼펜으로 수정된 이름을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진다.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며 내 사정을 미리 실토하듯 설명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직원이 '이건 뭔가요?'라고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 저 멀리 여직원이 손을 들어 '다음 고객님!'하고 손짓한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생애 처음으로 페이첵을 받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가져왔어요. 여기서 처리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페이첵을 주시겠어요? 가져오신 카드를 앞에 놓인 단말기에 꽂고 비밀번호 4자리를 눌러주세요."
'띡, 띡, 띡, 띡'
창구 직원은 페이첵에 적힌 볼펜 자국을 들여다보더니 가볍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이름이 잘못 기재돼 있네요. 맞죠?"
"네. 그래서 매니저한테 이야기해서 3일 뒤에 이걸로 다시 받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막힘없이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는 그녀의 자신감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낀다. 별일 없이 처리됐으면 좋겠다. 귀찮은 일은 사양이다.
"은행에 직접 오신 건 아주 잘 하셨어요. 고객님처럼 특이사항이 있는 경우 온라인으로 처리하려면 굉장히 까다롭거든요. 다음부터 직접 방문하지 않으셔도 앱을 통해 온라인으로 페이첵 제출이 가능하세요."
역시. 귀찮더라도 직접 와보길 잘했다. 유능한 직원을 만난 덕분일까. 별다른 변수없이 한방에 처리되어 속이 시원하다. 직원이 보는 앞에서 앱을 켜서 계좌 내역을 확인했는데, 페이첵에 적힌 금액 296.36 CAD 가 입금돼 있었다. 별도 대기기간 없이 당장 296.36 CAD 전액 사용할 수 있단다.
- 2월 2번째 페이첵
2월 28일, 토요일 아침 10시에 출근하니 매니저가 페이첵을 건네준다. 저번 주에 페이첵 받고 1주일 만에 또 받는다. 이번 페이첵에 찍힌 급여는 700달러가 넘었다. 이러다 금방 부자되는 거 아니야? 라는 망상에 잠깐 빠졌다가 현실로 금방 되돌아왔다. 그렇지. 이건 1주급이 아니라 2주급이었지. 2주 근무하고 700달러면 위험한 거 아니야? 정신이 아찔해진다. 일자리를 또 알아봐야 하나?
이번엔 은행에 가지 않고 App 으로 페이첵을 제출해본다. 점심 휴게 시간에(15분) 왼손으로 햄버거를 먹으면서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만지작댄다. TD Bank 앱을 켜서 페이첵 사진을 앞뒤로 찍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페이첵의 Front, Back을 모두 촬영하고 제출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계속 Error가 난다. 휴식 시간이 3분밖에 남지 않아 나중에 해보기로 한다.
우리 매장의 오후 4시는 손님이 뜸한 애매한 시간대다. 게다가 어제 폭설까지 내려 더더욱 손님이 없다. 마침 주방이 한산하여 친구들끼리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An, 페이첵 받았어?"
"응. 오늘 아침에 받았어."
"잘 됐네."
내 마감 트레이닝 코치였던 Axle이 먼저 페이첵에 대한 미끼를 던져준 덕분에, 자연스레 App 으로 페이첵 제출하는 방법을 물어볼 수 있었다.
"너 혹시 TD Bank 앱으로 페이첵하는 방법 알아?"
"난 모르겠네... Franklen은 알거야. 야 Franklen!"
"너도 TD Bank 써? 휴대폰 가져와 봐."
탈의실에 걸어둔 패딩 주머니에서 휴대폰과 페이첵을 꺼내 Franklen에게 내민다.
"App으로 페이첵 제출하면 영업일 기준 5일 정도 지나서 입금되는데 괜찮아?"
"응."
그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휴대폰 카메라로 페이첵의 앞, 뒷면 사진을 촬영한다. 아까 내가 했던 똑같은 방식이다. 나도 그렇게 했는데 안 됐어. 그런데 Franklen은 한방에 처리했다. 왜지? 촬영한 사진의 명암이 문제였던 것일까? 구도가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면 손가락...?
"An, 네 통장에 원래 얼마 있었어?"
"600달러 있었어."
그때 갑자기 들어온 주문을 처리하고 되돌아왔다.
"음.. 잘 된 거 같다."
Franklen은 테이블 위에 내 휴대폰과 페이첵을 남겨두고 쿨하게 자기 할 일을 하러 갔다. 계좌를 보니 1,380달러가 있었다. 어라? 영업일 기준 5일 걸린다고 했는데 왜 한번에 돈이 들어온거지? 거기다 600달러를 초과하는 금액은 영업일 5일 이내에 입금된다고 App 내 메세지에서 확인했는데 이상하다. 당황스럽다. 도대체 뭐가 맞는거야? 찜찜하다. 선진국 캐나다에서 왜 이런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급여를 지급하는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돈 버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돈을 쓰는 건 찰나의 순간이다. 그건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가 안다. 왜 이리 돈 모으기가 어려운지. 다행히 월세가 저렴한 곳에 살고 있어(월세 50만 원을 저렴하다는 게 이상하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지만,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금액이 빠져나가는 건 분명 타격이 크다.
Pay Cheque을 통해 급여를 받게 되는 것으로 나의 캐나다 워홀 초기 정착은 성공했다. 이제 바라던 대로 유창한 영어 실력을 위해 꾸준한 공부, 그간 해보고 싶었던 취미 활동(을 빙자한 사업 활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내년 이맘 때 나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어떤 모습이든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3월 1번째 페이첵
TD Bank ATM 기기에 가서 페이첵을 지불하는 방법도 있었다. 실물 Card가 필요하다. Card를 삽입하자마자 우측 하단의 Deposit을 눌러 Cheques 버튼을 누르면 매니저에게 받은 Pay Cheque 용지를 제출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위 사진처럼 기기의 정중앙에 Seal이 찍힌 부분만 똑 떼어 카드 넣듯 밀어 넣으면 된다.
App에서 처리할 때와 동일하게 600$ 이상은 일정 기간이 지나야 사용할 수 있다는 홀딩 타임 안내가 나온다. 번거로운 조치이기는 하지만, 홀딩 타임에 걸릴 정도로 임금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하면 뿌듯하기도 하다.
영수증에 제출한 Pay Cheque 실물 사진도 인쇄 요청할 수가 있다. 단, 제출한 Pay Cheque 용지는 돌려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TD Bank App에 들어가보니 Pay Cheque에 적힌 금액 100%가 입금되었다. 여전히 헷갈린다. 600$ 이상은 일정 기간이 지나야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에, 저 금액에서 직접 카운팅을 해야 된다는 것일까? 표기라도 제대로 해주면 좋을텐데. 급여를 받아서 기분이 좋으므로 그냥 넘어가주도록 한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종종 스타벅스를 사준다. 돈을 준다 해도 받지 않으려 하기에 '나 오늘 아침에 커피 마셨어...'라는 핑계로 거절하고 있다.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은데 뭘로 해야할 지가 깊은 고민이다. 고마운 녀석들을 만나 일하는 게 즐겁다. 물론 매니저에게 혼날 때는 서럽다. 이제 나는 혼나도 되는 시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