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사이, 이야기는 밖에서 먼저 굳어지고 있었다
그 글을 처음 보게 된 건,
주변 대표님의 연락을 통해서였다.
“이거, 네 회사 이야기 같아 보여.”
짧은 메시지와 함께 링크 하나가 도착했고,
나는 그제야 상황이 개인적인 이야기로만 머무르지 않고
외부에서도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순간,
이 일이 나만의 감정으로만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처음 실감하게 됐다.
온라인에 올라온 글에는
시간, 장소, 대화의 흐름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을 읽으며
‘이 사람이 이렇게 느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시에,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누군가의 기록은,
그 사람의 입장과 감정을 중심으로 정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그 글을
사실 여부를 따지기보다,
그 사람이 느꼈던 경험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글 안에는
개인적인 대화 일부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어떤 맥락에서 오간 말인지,
그 앞뒤에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는
글만으로는 모두 알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부분이 선택되고 어떤 부분이 빠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겠구나.
그리고 이런 기록이 외부로 전달될 때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도 함께 더해질 수밖에 없겠다는 것도.
이후 조사 과정에서,
다른 시선과 기억도 함께 정리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동안 함께 일해온 관계 안에서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만큼,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같은 공간에 있어도
사람마다 경험과 인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실감하게 됐다.
그건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느끼는 현실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조직이 지켜야 할 기준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나는 그 절차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었고,
조직의 판단을 존중하는 입장이었다.
다만 개인으로서는,
상황이 전개되는 속도를 따라가는 일이
심리적으로는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건 절차의 문제라기보다,
한 개인이 감정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조직이 움직이는 속도 사이의 간극에 가까웠다.
그 시기에 나는,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보다는
조직의 결정과 절차에 협조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나에게 가장 편한 길은 아니었지만,
조직과 사람들에게 부담을 더 얹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자리보다는
내가 맡았던 역할과 책임을 끝까지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게 그 시점의 나에게는
가장 성실한 태도라고 믿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건
어딘가를 향한 원망이 아니라, 나 자신의 기준이었다.
나는 늘 조직을 먼저 생각하며 일해왔고,
그 선택이 나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만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내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지고 싶은지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그건 조직을 부정하는 질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나 자신을 위한 질문에 더 가까웠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는 누군가를 탓하기보다는
각자의 입장과 역할, 그리고 절차가 동시에 움직이던
아주 복잡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조직과 함께 일해온 시간에 대한 감사함과
개인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감정 사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경험은 나에게,
조직이 얼마나 많은 책임을 안고 운영되는 공간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 또한
얼마나 복합적일 수 있는지를 동시에 가르쳐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