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수 있었지만, 싸우지 않기로 했던 이유
주변 회사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대표님들과 법인장님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전화가 이어졌다.
"이야기 들었어요. 많이 힘들지 않으세요? 괜찮으신가요?”
그 질문들에,
나는 상황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조직 내에서 절차에 따라 정리 중입니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의 나는,
개인적인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로 인해 가족까지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채로,
밤마다 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개인 감정만으로만
끌고 갈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조직이었다.
이 선택이
동료들과 진행 중인 일들,
그리고 이후의 업무 흐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나는 이 상황이
누군가를 이기는 문제로 흘러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마무리하는 게 맞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다.
‘이 상황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선택이,
정말 내가 서고 싶은 자리일까.’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똑같이 하면,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된다.”
나는 누군가를 심판하는 위치에 서기보다는,
내가 지켜온 기준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승패가 갈리는 싸움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우리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 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너희들의 관리자이고, 너희들의 편이다.”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내가 이 조직에서 스스로에게 지켜오던 기준이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도,
나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이 아니라
조직과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을 남기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그동안 말로 해왔던 책임과
모순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남은 질문은 하나였다.
‘그럼 나는 앞으로 이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혼자서 결정하지 않았다.
아내와 긴 대화를 나눴고,
결국 지금의 역할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방향을 선택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정을 정리하는 문장은
내가 아니라 아내가 먼저 써주었다.
그게 그 시점의 나에게는,
가장 차분하고 정리된 방식의 선택이라고 느껴졌다.
그날 밤,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하나님이 오빠에게
자리를 옮기라고 주신 신호 같아.”
그리고 덧붙였다.
“얼마나 억울한지는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니까
우리는 입을 지키자.”
그 말이,
그 순간의 나에게는 이상할 만큼 현실적으로 들렸다.
내가 모든 걸 설명하고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지금은 침묵하는 선택도 하나의 믿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인장으로서 나는,
조직을 먼저 생각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그 선택이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낮에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일을 이어가려고 애썼고,
주어진 역할은 끝까지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동안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몸으로 먼저 올라왔다.
잠에서 깨는 날도 많았고,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아침을 맞는 날도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겉으로는 차분하게 정리를 하고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큰 감정의 파도가 지나가고 있었다는 걸.
지금 돌아보면,
나는 상황을 피해서 물러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마주한 뒤 방향을 바꿨다.
조직이 요구하는 절차에 참여했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설명했고,
그 이후에야 다음 선택을 했다.
그래서 이 결정은,
나를 지키기 위한 회피라기보다
조직과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을 남기지 않기 위한 정리에 가까웠다.
그게 그때의 나에게는,
가장 어렵고도 가장 무거운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