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 자리에 그렇게 오래 남아 있었을까

책임, 버팀, 떠나지 못했던 이유

by 김현규 Sean

베트남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오래 머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년 정도 경험을 쌓고, 다시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얼마나 더 남을까’가 아니라,

‘여기를 어떻게 지킬까’를 먼저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이 늘어날수록, 책임도 같이 늘어났다.

교육 과정 하나, 행사 하나, 협업 프로젝트 하나가 내 결정 하나에 따라 방향이 바뀌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빠지면, 이 일은 누가 책임지지?”


그 질문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조직이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수록,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수록,

나는 더 자주 ‘조금만 더 버티자’는 선택을 했다.

사실 떠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른 제안도 있었고, 쉬어갈 수 있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매번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이 있고, 내가 시작한 일들이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 선택이 언제부터 책임이 아니라

습관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떠나는 선택이 오히려 무책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

문제가 생기면 정리하고,

일정이 밀리면 대신 책임지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먼저 나서서 조율하는 역할을 계속 맡았다.


그게 리더의 일이라고 믿었고, 적어도 내가 떠나기 전까지는

큰 사고 없이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조직을 지키고 있다기보다

어쩌면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정리하고 갈 수 있어.”

“지금 나가면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빠지면 더 복잡해질 거야.”


스스로에게 내뱉는 그 말들은 전부 그럴듯했고,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조금씩 넘기고 있었다.

버틴다는 감각에 익숙해지면서,

어디까지가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무리인지 점점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시간 덕분에 배운 것도 많았고,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도 바뀌었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인지

꽤 정확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 자리에 오래 남아 있었던 이유는 회사가 필요해서만은 아니었고,

조직이 나 없이는 안 돌아가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이 나를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게 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과거의 선택을 미화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때의 나는 그 나름대로 최선의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음 선택은,

같은 방식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남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 결정 이후에 내가 무엇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