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잘 돌아간다는 착각

겉보기 성과 vs 현장의 미묘한 불안

by 김현규 Sean

겉으로 보면, 조직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업무 일정은 큰 차질 없이 진행됐고,

프로젝트도 예정된 날짜에 맞춰 마무리됐고,

외부에서 보는 성과 지표도 나쁘지 않았다.


회의를 마친 뒤 가장 자주 나왔던 말은 “이번엔 잘 넘겼다”였다.

문제가 없었다기보다는, 문제가 커지기 전에 정리됐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괜찮다.”

“일단 돌아가고 있다.”

“당장 멈출 일은 아니다.”


그게 바로, 조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의 시작이었다.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숫자와 조금 달랐다.

회의에선 정리된 보고가 오갔지만, 사무실과 회의실에서 나누는 대화는 달랐다.


“이건 누가 담당하는 거죠?”

“이 부분은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

“그건 일단 다음에 이야기하죠.”


작은 질문들이 계속 떠돌았다.

명확한 주인이 없는 일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누군가는 자기 역할보다 더 많은 일을 떠안고 있었고,

누군가는 어디까지가 자신의 일인지 점점 헷갈려 했다.


겉으로는 일정이 굴러가고 있었지만, 안쪽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방향을 다시 맞추고 있었다.

나는 그 불편함을 꽤 오래 무시했다.

사업이 진행될수록 이런 혼란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조율하는 데 시간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때마다 이렇게 정리했다.

“조금 더 정비하면 괜찮아질 거야.”

“이번 프로젝트 지나면 숨 돌릴 수 있겠지.”

“지금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이니까.”


문제는, 그 ‘조금 더’가 계속 다음으로 미뤄졌다는 점이다.

정비는 늘 계획에 있었지만, 실제로 시간을 들여 정리하는 순간은 오지 않았다.


늘 급한 일이 먼저였고,

늘 당장 마감이 있는 일정이 우선이었다.

조직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대부분 구조를 점검하지 않는다.

돌아가고 있는데 굳이 멈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 방식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누군가가 크게 흔들릴 거라는 걸.


업무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 지칠 거라는 걸.


성과는 유지되는데, 표정은 점점 줄어드는 순간들을 보면서

나는 자주 같은 생각을 했다.


“이게 정말 괜찮은 상태일까?”

지금 돌아보면, 그때 가장 위험했던 건 큰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큰 사고가 없으니, 지금의 방식이 틀렸다는 신호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같은 방식으로 일했고,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고,

같은 방식으로 버텼다.


조직이 잘 굴러간다는 느낌은

사실, 사람들이 각자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문제가 없다는 말은, 문제가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확히 말로 꺼내지 못했다.

불편했지만, 설명하기 어려웠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은 늘 뒤로 밀렸다.

그래서 지금도 기억난다.

아무 일 없는 하루들이 계속 이어지던 그 시기.


문제가 없어서 불안했던 게 아니라,

문제가 보이지 않아서 더 불안했던 시간들.


조직이 잘 돌아간다고 믿었던 그때가,

사실은 가장 많은 것들이 조용히 쌓이고 있던 시기였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조용한 누적은, 언젠가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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