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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14. 2019

82. 수능 샤프 바뀌니 불안하다고?

왜? 시험 보는 장소는 네가 원래부터 시험 보던 장소니?

2020학년도 대학능력 수학 시험장.

응시생 49만여 명은 시험장에서 민트색 샤프를 한 자루씩 받았다. 샤프엔 제조사나 모델명이 쓰여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이 샤프의 정체는 알려져 있었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동아 XQ세라믹’가 새 수능 샤프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았기 때문이다. 공개된 샤프의 모양도 XQ세라믹 모델과 유사했다. 이 수능 샤프가 뭐 문제인가 싶겠지만 애들 입장에서는 달랐던지 이제껏 예전 수능 샤프와 같은 모델로 시험대비를 했는데 갑자기 바뀌었다고 난리가 났다.


실제로 일부 수험생은 ‘바뀐 수능 샤프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예민한 수험생들이 시험에 미리 적응할 수 있도록 바뀐 샤프의 제품명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아니 샤프가 바뀌면 시험을 못 보는 건가? 싶기도 하다가 그래, 오죽 불안하면 그러겠냐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똑같은 도구로 공평하게 시험에 임하는 것인데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샤프라 불안하다고? 그건 핑계라고 본다.


물론 나도 학창 시절, 미신과 같은 징크스가 있었다. 근데 그 징크스가 제대로 맞은 경우가 반이나 될까? 그냥 내 마음을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었던 거다. 수험생들도 시험이라는 압박감이 저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수능 샤프를 바꾼 정부를 무능하다고 욕한다. (수능 샤프 바꾼 배경을 밝혀야 한다나? 이번 수능 샤프 납품 업체인 동아연필과 정부 사이에 무슨 유착 관계가 있다고 한다. 진짜 명예훼손 감스러운 발언이다. )


샤프가 바뀌어서 불안하다면 늘 앉던 책상이 아닌데, 의자도 아닌데 그건 왜 얘기하지 않는 거지? 미리 시험 볼 학교 알고 책상, 의자 미리 준비해서 몇 달 전부터 앉아보고 익숙해질 것인가? 이런 고민 빠질 시간에 국어영역 지문 하나 더 읽어보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라고 해주고 싶다. 실제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도 수능 샤프 바뀌어서 불안하다기에


너, 수능으로 대학 안 간다며? 수시도 최저 보는 학교 안 썼잖아? 왜 핑계를 대는 거야? 평소 쓰던 샤프 쓰면 갑자기 국어영역 3등급이 1등급 나와? 좀 웃겨.


미안하게도 가식적인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내 얘기를 들은 녀석은 선생님은 너무 냉정하다며 서운해했다. 근데 나약한 이 녀석의 발언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스스로 발전시키고 나아지려는 노력 없이  누군가에게 현재의 불운의 원인을 찾으려는 태도가 말이다. 원래부터 그런 녀석이었지만 마지막까지 도구 탓, 나라 탓을 하다니. 어린 녀석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 옳지 않다. 초등학생도 내가 쓰던 연필이 아니라 단원평가 망쳤다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


수험생의 불안이 안쓰럽기도 하다만 그 불안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말기를. 그 불안은 네가 만든 것임을 알고 떨쳐버려라. 너희는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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