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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Jan 08. 2020

85. 성교육이 안 된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


내가 가르치는 남학생 하나가 수업 중 자랑할 거리가 있다는 듯 싱글거리며 얘기 하나를 꺼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이라고 알려진 대학에 다니는 석사 학생이 연구 과제를 도와주는데 본인에게 칭찬을 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 과제는 시 교육청에 지원금을 받아 멘티 멘토로 대학원생이 고등학생들의 연구를 도와주는 건데, 이 지역에 사는 대학원생이 용돈 벌 목적으로 이 연구에 참여한 것 같다.)


뭔 칭찬일까?

아마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실험을 진행하며 잘 따라가니 너도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격려한 것이겠거니 했다. 근데 이게 뭔 개소리인지.


제 몸매가 클럽 가면 여자들이 환장할 몸매래요. 가만히 앉아있어도 여자들이 와서 원 나이트 하자고 할 거라는데요. ㅋ


고등학생 지도하려고, 돈 받고 온 대학원생이 미성년자한테 넌 여자들하고 잠자리하기 좋은 몸매라고 하는 게 칭찬인 걸까? 그리고 그걸 여자 선생님에게 자랑하는 이 머저리 녀석은 뭐야? 소름이 끼쳤다. 얼마나 성교육이 안 되었으면 원 나이트 하기 좋은 몸매라는 얘기를 칭찬으로 듣는 거지?


진짜 화가 나고 징그러워 한 시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우선 그런 칭찬을 하는 대학원생도 문제겠지만, 그 얘기를 듣고 이렇게 해맑게 즐거워하다니! 그 자리에서 엄청 혼을 내고 이 상황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얘기를 했다. 그리고 학생 어머니께 이 얘기를 전달하고 나는 이런 얘기를 하는 학생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이 어머니 왈


저도 야동 좋아해요. 선생님은 야한 농담  하세요? 그냥 남자들끼리 그런 농담하고 칭찬하는 거죠.  그렇게 심각하게.


남자끼리의 농담을 왜 여자 선생님 앞에서 자랑하는 걸까? 그리고 그게 야한 농담일 뿐일까? 이 어머니는 자기 자녀가 아무 여자와 하룻밤 자고 돌아다녀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대학 내에서 성희롱, 성폭행 등 성에 대한 문제들로 공론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런 사고를 지닌 학생과 어머니는 정말 위험하다. 여학생이 치마만 짧게 입어도 자신을 유혹하려 했다고 얘기할 녀석이니 말이다.


나는 이 일을 겪고 나서 이 남학생을 예전처럼 대할 수 없게 되었다. 도저히 좋은 시각으로 봐줄 수가 없게 됐으니. 결국 나는 이 학생과의 수업을 중단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 학생이나 어머니 모두 이해되지 않는다. 남자끼리는 그런 말 할 수 있다거나 그냥 허세 부리는 말로는 넘어갈 수 없는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고 본다. 이런 아이를 보니 대학원 때 전 날 원 나이트 스탠드를 했다고 자랑하며 허세 부리던 대학원 동기가 생각났다. 아주 대단한 일을 하고 온 것처럼 가슴을 당당히 펴고 낄낄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진짜 더럽고 역겨웠는데 고등학생한테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되다니.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 인간부터 되자! 잘못된 성의식으로 골로 가지 말자고. ㅇㅇㅇ, 너 조심해라. 진짜 큰 일 치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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