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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Feb 04. 2020

89. 분필 도둑을 잡아라.

학원마다 칠판의 종류가 다르다 보니 판서용 필기구도 다양한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강사들은 사각사각 써지는 분필 판서를 선호하시고 특히 나는 분필로 판서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묘한 소리와 촉감을 좋아한다.


학원에서는 보통 저렴한 탄산 분필이 구비되어 있는데 색깔도 한정적이지만 가루 날림이 많고 글씨가 맨 뒤에 앉을 학생이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흐릿하게 써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강사 초창기부터 좀 무리를 해서라도 나름 분필계의 샤넬이라는 불리는 고급 제품을 개인 구매해서 사용했다. (원장이 가격 물어보더니 다시 말도 꺼내지 않았다는. ㅋ)


이 분필은 색깔도 다양하고 그립감도 좋아 판서가 안정적으로 되니 진짜 뿌듯하게 칠판을 한가득 채울 수 있었다. 아이들도 보라색, 연두색, 생전 보지 못한 색의 판서를 보니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스승의  선물로  분필에  맞는 홀더를 선물해주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던 듯하다. (차마 분필은 비싸서  사주는 듯. )


개인 강의실이 있다 보니 당연히 별생각 없이  책상 서랍에 분필을  정리해 넣어두고 주중 하루 쉬는    개운한 몸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분필  개가 사라져 있었다. 분필 홀더 4개에  넣어둔   보라색 하나가 없어진 . 그냥  착각을 했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학생 하나가 


ㅇㅇ 선생님도 보라색 분필 쓰던데요?


라고 얘기하는  아닌가?   분필이 개인 제작 제품도 아니고 기성품이니 그분도 쓰시나 싶었다. 그런데  이후에도 주중 하루 쉬고 오면 분필이  개씩 없어지는 것이다. 찜찜한 마음에 보라색 분필을 쓰신다는 선생님께 찾아가  분필 어디서 구매하냐고 물어봤다.


이거요? 알파 문고에서 팔아요.


근데  분필이 지금은 국내 제작이지만 그때는 일본에서만 제작을 해서 나도 직구하거나 지인을 통해 구매했던 것인데 이런 거짓말을 하다니.  분필이 오래   있어서 144 정도를 사면 1년은 썼으니

지인을 통해서 비교적 쉽게 구하지 알파 문고에서는  파는데  개소리야.


그거 일본에서만 팔아요. 저희  근처 알파 문구에는 없던데 어디 지점엔 있나 봐요?


이렇게 물으니 얼굴이 벌게져서는 자기가 샀다는데  의심하냐네. 솔직하게 말하면 넘어가려 했더니만. 아주 제대로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분필  사다 주실래요? 제가  드릴게요. 부탁드려요. 아니면 구매 가능 지점 알려주세요.


라고 얘기하니 사다 주겠단다.  그래 기다려주마. 2주가 지나도  말이 없기에 혹시 잊으셨냐 물으니


죄송해요. 애들이 얘기하기에 신기해서 조금만 써보고 돌려두려고 했어요.


이제야 사과하는 ㅇㅇ 선생님. 어이가 없더라. 결국 내가 넘어가 주긴 했다만 진짜 이런 경우 없는 분필 도둑이라니.


ㅇㅇ 선생님! 이제  분필 국내 생산되는  알죠?

인터넷에서 구매 가능하니 이젠 사서 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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