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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Mar 01. 2020

90. 저는 명품을 안 사는 선생입니다만?!

개인 수업 중 학생이 툭 던진 말


엄마가 그러는데요, 수학 선생님은 샤 0 슬리퍼도 신으시고 본인이 번 돈을 자기 자신한테 투자하는 것 같은데 과학 선생님은 왜 이렇게 돈을 아끼는지 이상하데요. 명품도 안 쓰시는 것 같고.


지난번, 월세 세입자와의 계약 건으로 수업 시간을 조금 늦춰도 되겠는지 양해를 구하기 위해 연락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때 이 어머님은 자기 딸한테 과학 선생님은 스스로에게 투자하지 않고 왜 부동산 같은 것에 투자하냐고 물었던 모양이다.


그래, 사실 나는 명품을 사지 않는다. 선물 받은 건 몇 개 있지만 내 돈으로 산 건 단 하나도 없다. 가방도 신발도 워낙 칠칠맞은 행동거지 탓에 곱게 사용할 리가 없고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비싼 명품을 쓰는 게 우스워 보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비싼 명품을 들고 다니면 다들 짝퉁으로 볼 게 분명하다. ㅎ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내 수준에 맞게 고터 지하상가에서 기본 티셔츠나 레깅스를 사고 가끔은 아웃렛에서 할인 팍팍된 메이커 있는 원피스를 산다. 신발은 길가다 마음에 드는, 그냥 내게 어울리는 적당한 것을 사는 편인데 누군가에게는 이 외양이 궁상맞은 짠순이처럼 보였다니... 솔직히 몹시 기분이 나빴다. 더군다나 현관 앞에 벗어 놓은 구두나 들고 다니는 가방을 보고 나에 대해 평가를 하다니. 평소 가지고 있던 이 학부모에 대한 호감이 싹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하긴 원래도 이 엄마는 호감은 없었다. 과학 따위는 암기 과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진 분이었으니 뭐. 나도 당신 별로야.)


수업을 마치고 난 후, 포털사이트에서 명품 신발, 가방, 옷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봤다. 5000원, 10000원짜리 슬리퍼나 신던 나는 절대 납득할 수 없는 가격. 무엇보다 난 저걸 쉽게 살 수 있을 만큼 돈벌이가 신통치 않은데 나 스스로에게 투자한다는 게 무리해서라도 명품을 걸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남 바닥에서, 소위 잘 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너무 초라한 꼴로 다닌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이제껏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내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것이지 사실 너무 궁상맞게 살아서 이 바닥에 안 맞는, 격이 떨어지는 선생이 아니었을지.


뭐 결론은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내가 명품을 사는 건 아주아주 희박한 확률이 아닐까 싶다. 나 같은 가난한 유부녀가 잘 사는 부자 동네에서 수업을 한다고 그들을 따라 하다가는 가랑이가 쫙 찢어지지 않을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잖아. 내면이 명품인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는 걸로 목표를 가져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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