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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Apr 22. 2020

99. 내가 브런치 작가를 시작한 이유

어릴 때의 나는 좀 산만한 아이였다.

요조숙녀였던 우리 엄마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말괄량이에 활력이 넘치고 뻔뻔하기까지 했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ADHD, 주의력 결핍 장애를 지닌 어린이였던 것 같다. 지극히 옛날 분인 우리 엄마의 눈에 난 아주 이상한 아이였고 이걸 고치지 않으면 사람 구실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다고 한다. 결국 이런 문제아인 나를 여자답게 얌전하고 모범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원대한 꿈을 지니고 있던 엄마는 급기야 8살짜리 아이를 의자에 앉혀 빨랫줄로 묶어버리셨다.


무슨 아동 학대처럼 보이겠지만 그냥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어 보라는 거였기에 손도 발도 자유로웠다. 실제로 이렇게 묶어두기 전까지는 10분 정도로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어디가 아프거나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지만 천방지축 어린아이가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좀이 쑤시고 땀이 삐질삐질 나기는 했다. 늘 번잡하던 8살 아이에게 가만히 앉아있으라니. 할 일이 없어진 내 눈에 들어온 건 책꽂이에 꽂힌 ‘작은 아씨들’이라는 책이었다. 이 당시 전집 방문판매를 하셨던 고모가 거의 강매하다시피 해서 우리 집에 오게 된 책들이 많았는데 그것들 중 한 권이었던 것 같다. 너무 심심했던 나는 손을 뻗어 그 책을 집어 들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이미 4살 때 한글은 깨쳤지만 동네 간판이나 읽고 다니던 내가 그제야 제대로 된 글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엄마가 의자에 억지로 묶어두지 않아도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작은 아씨들’의 둘째 딸 조세핀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런데 참 운명의 장난인 건지. 난 국어는 잘 못하고 수학과 과학 성적은 좋은 속칭 이과형 아이였다. 내 인생의 흐름은 문과가 아닌 이과로 이어졌고 결국 나는 학사와 석사를 거쳐 빼도 박도 못하는 이공계 전공자가 되었다. 또한 글을 쓸 기회라고는 학교 때 쓰던 독후감이나 백일장 밖에 없었으니 작가의 꿈은 잊힌 지 오래였다.


이런 내가 다시 작가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정말 우습게도 복수라는 감정 때문이었다. 강남에 한 학원을 그만두면서 받은 모욕과 상처를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온갖 비리를 낱낱이 폭로하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써보리라 다짐하고 작가 관련 책을 보며 습작을 시작했다. 그런데 두둥~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던 중, 나는 운명처럼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유명 블로거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이번 브런치 작가 지원에서도 떨어졌다는, 절절한 하소연이 담긴 글이었다. 나는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쓰고 블로그를 활발히 운영하는 분을 떨어뜨리는 브런치라는 게 뭘까 궁금해졌다. 잠깐의 포털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누구나 글을 쓰고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일반적인 블로그와는 달리 심사를 거쳐 작가로 승인을 받아야만 정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보수적인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거구나.

그래도 나는 도전해 보고 싶었다.

마치 작가를 꿈꾸던 8살 아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미숙한 나라도 진심을 보여주면 기회를 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안고 앞으로 내가 쓰게 될 글의 목차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몇 개의 글을 쓴 후 용감하게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게 되었다. 보통 1주일 이상 심사가 걸린다는 후기를 읽었던 터라 결과는 느긋하게 기다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혹시나 떨어질까 주변에 얘기도 못하는 쫄보 주제에 뭐 이번에 떨어지면 고치고 또 도전할 거니 괜찮다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하며 새로운 메일에 내가 원하는 소식이 오는 건 아닐까 초조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2018년 3월 15일 목요일 접수.

딱 3일 뒤 일요일, 3월 18일 20시 드디어 합격 메일을 받게 되었다.

기쁘다는 감정보다는 얼떨떨한 마음이 앞섰다. 당연히 한 번에 붙을 것이라 감히 상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사법고시를 단 한 번에 통과한 기분이 이런 것인지. ^^


남편에게 이 기쁜 합격 사실을 얘기하니


그거 돈 주는 거야?


라는 말이 먼저였다. 돈 주냐고?  안 준다. 이 인간아! 마누라가 어려운 작가 심사 통과했다는데 저 세속적인 발언은. ㅎ


나는 이렇게 작가가 되었다. 8살 때 꿈꾸던 일을 40살이 다 되어서야 시작하게 되었다니. 참 오래도 걸렸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의 주제가 이미 드라마로 나왔다는 것. ㅜㅜ

그 유명한 ‘스카이 캐슬’과 ‘블랙독’이라는 드라마에서 내가 쓰고 싶었던 것들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뭐 어쩌겠는가. 복수 따위는 집어 쳐야지. ^^

이제 복수심은 개나 줘버린 나는 사교육의 민낯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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