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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Apr 21. 2020

98. 기분 도둑이 뭔 줄 아시나요?

우리 주위에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훔치는 도둑 같은 사람들이 있다. 멘털이 강한 사람이야 별 일 아니라고 넘어가겠지만 나처럼 쿠크다스 버금가는 연약한 멘털을 가진 사람은 쉽게 기분을 도둑맞는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단골 ‘기분 도둑’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마도 이 글을 몰래 읽을 것 같아 자세히 열거해 보려고 한다. 잘 지내시죠?


나는 대부분 대치동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몇 명의 아이들도 소개를 받아 가르치고 있다. 그중 현재 고 2가 되는 여학생이 지난주, 무례한 어떤 어른 때문에 몹시 기분이 상했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물론 그 어른은 내가 아는 분으로 예전에 내가 가르치던 학생의 학부모이다. 동네에서 과외 선생님도 하고 계신데 고 2가 되는 이 여학생도 나에게 배우기 전, 이 분과 수업을 했었다. 이제 수업을 하지 않지만 뭐 가르치던 학생이니 안부 문자 정도야 할 수 있지만 문자 내용이 그런 단순한 내용이 아니었다.



기분 도둑: 과학 수업하니? (아직도 나와 수업을 하냐는 얘기인 듯)


학생: 넵


기분 도둑: 선택 과목은 지구과학 했지?


학생: 넵


기분 도둑: 오빠는 어느 대학 갔니? (올해 재수를 해서 어디를 갔나 물으신 듯) 1학년 등급은 몇이니? ㅇㅇ대 갈 정도는 되니?


학생: 잘 모르겠어요.


그래, 궁금할 수도 있다. 스승으로써 제자가 너무 걱정되기도 했을 거고. 그리고 내가 아주 아주 모자란 인간인지라 자기 제자가 올바르지 못한 길로 갈까 염려되는 것일 거다. 워낙 아는 게 많고 똘똘한 분이라 본인의 아이를 대학에 보낸 알찬 노하우를 선뜻 알려주시는 거겠지. 근데 이걸 어쩌나 아이는 기분 나빠하는 걸!


재수하는 이 여학생의 오빠는 조언을 해주시는 어머님의 아들과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출신이데, 이 어머님 아들은 한 번 대학에 합격했다. 물론 워낙 성실한 아이였고 어머님도 동분서주하며 스펙 관리를 잘했기 때문에 한 번에 합격한 것이다.


그, 런, 데!

그 스펙은 누가 만들어 준 거냐? 나!

자소서는 누가 도와줬게? 나!

면접 준비는 누가 도와줬더라? 나!


근데 왜 과학 수업은 계속하냐고 물어보시는 걸까? 내가 자격지심이 많은 건지 저 물음의 밑바닥에는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이 문자를 받았던 여학생은 오빠가 재수하는 동안 엄마가 마음고생 많이 하셨는데 저렇게 묻는 건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기 오빠에게 얘기했더니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했고 다른 가족들도 모두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등급을 묻는 것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그건 그냥 조언해주려고 한 거니 화내지 말라고 다독여 줬다.


별 거 아닌 문자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분을 망치는 기분 도둑이 될 수도 있다. 나도 살짝 기분 나빴다니까! 흥!


우리 모두 기분 도둑이 되지도 말고 도둑맞지도 맙시다. 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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