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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Apr 18. 2020

97. 회식한다고 없던 소속감이 생기나요?


저녁 회식하지 마라.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 있다. 친구도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 할 얘기 있으면 업무시간에 해라. 괜히 술잔 주며 ‘우리가 남이가’ 하지 마라. 남이다. 존중해라.

상사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처음부터 찰떡같이 말하면 될 것을 굳이 개떡같이 말해 놓고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니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란 말인가.

술자리에서 여직원을 은근슬쩍 만지고는 술 핑계 대지 마라. 취해서 사장 뺨 때린 전과가 있다면 인정한다. 굳이 미모의 직원 집에 데려다준다고 나서지 마라. 요즘 카카오 택시 잘만 온다.

‘내가 누군 줄 알아’ 하지 마라. 자아는 스스로 탐구해라. ‘우리 때는 말이야’ 하지 마라. 당신 때였으니까 그 학점 그 스펙으로 취업한 거다. 정초부터 가혹한 소리 한다고 투덜대지 마라. 아프니까 갱년기다.

[출처: 중앙일보]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이 글을 쓰신 판사님은 좌, 우뇌가 모두 발달하신 천재임이 분명하다. 이성적인 판단을 해서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분이 이런 언어유희까지 가능하다니. ^^


회식. 내가 전에 다니던 학원을 퇴사한 이유가 바로 이 놈에 회식 때문이다. 회식을 좋아하던 원장이 술자리에서 실수를 하고 술김이라는 핑계를 대는 모습이 너무너무 꼴 보기 싫었던 것. 회식에서 그간 스트레스를 풀자는 말, 평소 못했던 얘기 편하게 해 보자는데 도대체 술을 먹어야 할 수 있는 얘기는 뭘까?


강사 커뮤니티에서 현재 학원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고민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근데 여러 개의 댓글 중, 회식을 통해 소속감을 만들어 보라는 얘기가 있었다. 솔직히 회식이 소속감과 무슨 관계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난 학원강사 생활을 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고 어쩌면 운이 나빴던 탓인지도 모르지만 회식에서 편하게 떠들고 맘껏 먹으며 스트레스를 확 푼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삼겹살 냄새 맡으며 고기를 연신 굽다가 원장이 주는 술잔을 두 손으로 받으며 재미없는 아재 개그에 웃어주고 노래방까지 가자고 하면 진짜 죽을 맛이었는데 무슨 소속감이 생긴다는 건지.


예전 기억들을 떠올려보며 만일 내가 원장이 된다면 난 회식이 아닌 어떤 방법으로 소속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지난 강사 생활을 하며 소속감 느끼게 했던 원장들을 떠올려 보다 문득 한 분이 생각났다. 늘 정갈한 모습에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실수를 해서 혼이 날 상황임에도 어리고 미숙한 나를 위로해주셨던 분이 계셨는데 그 학원에서  회식을 할 때면 늘 기분 좋게 귀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회식보다는 함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뮤지컬이나 연극 티켓을 예매해 주거나 함께 읽으면 좋을만한 책을 직접 구매해서 나눠주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10년 넘는 강사 생활에서 개인주의 쩌는 내가 최고로 소속감을 느꼈던 학원이었던 것 같다.


물론 소속감을 만드는데 정답은 없다. 그러나 술을 먹는다고 친해지고 편해지는 건 대학생 때나 가능한 일인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또한 소속감을 원장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강사 또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누가 떠먹여 주길 바라기보다는 주체적인 선생이 되기를. 늙은 꼰대가 감히 조언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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