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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Jul 13. 2020

1. 뚜띠는 김치 국수를 좋아해

대두 멸치는 그거 안 좋아하는데.

우리 집에는 두 명의 40대가 살고 있다.

머리는 작고 곰처럼 덩치 큰 아저씨와 머리는 크고 몸은 비쩍 마른 아줌마. 함께 산지 10여 년이 넘었지만 외모가 정반대인 것처럼 좀처럼 입맛 통일이 안 되는 중년 부부다.


우리 뚜띠(내가 부르는 별명. 뚱띵이에서 받침 ㅇ을 지워서 부르는 것. 결코 귀여운 별명 아님.)는 탄수화물 중독급으로 밀가루를 좋아하는 반면 나는 탄수화물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라면, 국수, 수제비를 사 먹는 사람들이 좀처럼 이해가 안 됐는데 돈가스 세트에 나온 가락국수도 국물만 먹고 건더기는 같이 먹는 사람한테 건져줄 정도로 지극히 불호의 음식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 후 1, 2위를 다툴 정도로 많이 한 요리가 있다면 그건! 김치 국수와 라볶이! 얼마나 자주 하는 요리냐면 엊그제는 김치 국수를 먹었고 어제는 라볶이를 먹었다. 우리 집 하루 한 끼는 무조건 밀가루 음식인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 냉동실엔 라볶이를 위한 어묵이 언제나 얼려 있고 부엌 수납장엔 사리면과 국수가 빵빵하게 준비되어 있다. 난 준비가 철저한 아내란 말씀.


평소 요리나 집안일은 많이 하는 뚜띠지만 이상하게도 면 요리에는 솜씨 발휘를 못하는지라 내가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귀가를 해도 배고프다고 하면 옷도 못 갈아입고 국수나 라볶이를 한다. 나 스스로도 참 웃긴 게 늦게 퇴근한 마누라랑 눈 마주치자마자 ‘비빔국수’ , ‘라볶이’라고 외치는 모습이 밉지가 않다.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자식을 키우고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니 난 남편이 자식처럼 예쁜가 보다.


자식이 없이 둘만 사는 부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부부이자 내게는 가장 친한 친구 같은 남편이지만 기성세대와 다른 우리의 삶이 가끔은 잘못된 길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삶의 방식은 제각기 다 다른 것이라 자조하지만 남들의 시선에서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도 있으니까.


몇 달 전,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가지라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다. 더 시간이 지나면 남편 숨소리도 듣기 싫은데 애들이 부부를 이어주는 끈이라는 말. 그래서 난 대답했다.


저희 집에 큰 아들 있어요. 그 녀석도 감당이 안 되는데 누굴 키워요. ㅎ


이렇게 대답하니 안타까운 시선으로 날 바라보시며 얘기했다. 남편은 남이 될 수 있는 관계지만 자식은 끊을 수 없는 핏줄이라고. 그러긴 하겠지. 하지만 난 김치 국수를 좋아하는 뚜띠를 믿어보려고 한다. 내 까칠한 성격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오늘 밤에도 나는 김치 송송 참기름 휙휙 설탕 팍팍 넣어 조물조물 김치 국수 한 사발을 만들 예정이다. 한 국수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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