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chovy Jul 29. 2020

2.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나는 당신을 존경하는데. 똑똑하고 능력 있는 당신을.


우리 뚜띠를 처음 만난 2002년.

월드컵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시절.

우리는 운명처럼 만나게 됐다. 전주 촌놈과 서울 촌년. 같은 학교 출신도 아닌 우리가 만나게 된 건 정말 운명이라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뚜띠는 우리가 처음 알게 된 날부터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무기로 삼아 권위를 내세우는 꼰대가 아니었다. 기존에 내가 알고 지내던 남자 선배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 신선했었던 걸까. 뚜띠는 좋아하는 여자라 내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느껴지도록 행동했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지낸 지 18년이 지났지만 항상 나의 결정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응원해주었다.


사실 우리가 처음 알게 된 2002년은 내겐 너무도 힘든 시기였다. 집은 폭삭 망해서 돈은 없는데 대학원은 붙어버렸고 주변에서는 빨리 취업이나 해서 집에 보탬 좀 되라는 얘기에 공부를 또 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고민이 되었다. 대학교 4년 내내 휴학하지 않으려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열심히 버텨왔는데 기껏 전액 장학으로 붙어 놓은 대학원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사실 엄마도 내가 얼른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탬이 되길 바라셨다. 특히 동생이 복학을 해야 하니 등록금은 내가 마련해주길 바라신 것. 참 답답하고 속상했다. 난 왜 이런 집구석에서 태어나 대학의 낭만도 못 즐기고 구질구질하게 이런 걱정을 하고 있어야 할까. 공짜로 대학원 다닐 수 있는데 왜 그걸 눈치를 보고 집에 미안해해야 하는 건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 당시에 나는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못할 정도로 차갑고 뾰족한 아이였다. 차갑고 뾰족한 고슴도치 같은 이 모습이 내 본모습이라 여기며 정말 하루하루를 그냥 겨우 살아냈다.


특히 남들 얘기를 듣고 내 대학원 진학을 말리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남들이 계집애 대학까지 보내줬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더라.


라는 말은 진짜 상처였다. 대학 다니는 내내 돈이 없어 1300원짜리 학식도 못 먹으며 다닌 때도 있는데 내게 의무를 다 했다는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로지 독과 오기만 남았던 나는 그 누가 내게 다가오는 것도 싫었고 달콤한 말에 넘어갈 만큼 순진하지 않은, 감정이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아이였다. 그런 무감정인 여자아이에게 끊임없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널 좋아한다, 지랄을 떨어도 예쁘다던 남자에게 어찌 마음이 가지 않겠는가.


나도 어느 날부턴가 투실투실한 뚜띠의 몸매가 테디베어처럼 귀여워 보였고 나만 보면 몸을 비비 꼬며 좋아하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집에는 교제 사실을 숨긴 체 만나다 결혼을 결심하고 우리 집에 알렸을 때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나를 낳아주신 것은 내 부모님이지만 나를 나답게 해 준 것은 우리 집에 있는 뚜띠라고 생각한다. 내가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아내에게 존경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우리 뚜띠에게 항상 고맙다. 돈만 좀 적게 쓰면 좋겠다.^^ (보고 있나, 뚜띠!)


뚜띠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리고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1. 뚜띠는 김치 국수를 좋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