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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Aug 14. 2020

3. 구매 요정과 산다는 것

우리 집에는 요정이 살고 있다.


자칭 ‘구매 요정’


돈을 모으는 능력은 전무하지만 규모 있게 소비를 할 줄 아는 대단한 요정이다. 5000원, 10000원짜리 지하상가 옷도 벌벌 떨며 고민 고민하다 사는 나와는 달리 일단 마음에 드는 게 생기면 폭풍 검색 후 최저가로 원하는 물건을 획득한다. 사는 품목도 가지각색. 백종원 아저씨가 무슨 요리를 하시면 그걸 따라 하겠다고 재료를 주문하고 초롱초롱 눈빛을 발사하며 나에게 요리를 시킨다거나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멋진 마누라는 좋은 물건을 들고 다녀야 한다고 고가의 전자제품을 턱 안겨 준다. 최근 가지게 된 에어팟 프로도 내게 아주 유용하고 멋지게 어울릴 것이라며 사준 아이템이다. ^^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정한 남편 자랑하려고 이런 글을 썼나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꼭 필요하지 않은, 더군다나 하필이면 고가의 물건을 사는 게 마땅치는 않다.


더군다나 내가 이번 달 말 수술을 앞두고 있으니 쇼핑의 횟수가 늘어났다. 온갖 나라에서 택배가 오고 있는데 어느 날은 내 몸만 한 상자가 와서 열어보니 미국에서 온 푹신푹신한 토퍼 매트리스였고 오늘은 일본에서 구매한 빨대컵이 2개나 왔다. 병원 베드에 누워서 물 마시려면 이런 게 필요하다고 어디서 읽었다고 하는데. 끊임없는 택배 상자에 매일매일 놀랄 지경이다.


그리고 갑자기 명품 가방을 사주겠다는 거다. 직장 동료한테 ‘헤르메스’ 가방이 좋은 거냐 물어보니 ‘에르메스’라고 제대로 된 이름을 알려주면서 그건 돈 있어도 못 산다는 말을 듣고 왔단다.


돈을 내는데 왜 못 사?


라고 묻는데, ㅎ. 마누라가 명품을 안 사니 이런 것도 모르는구나, 웃음이 났다.


에르메스는 일단 포기한 듯하고 다른 명품을 검색하는 것 같기에 큰 일 낼 듯싶어 그럼 아웃렛에 가서 골라볼 테니 명품 얘기는 그만 하라고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우리 뚜띠는 아픈 내게 위로가 될까 싶어 좋은 가방 하나 사주고 싶어 하는 듯 하지만, 난 쓸모없는 물건이 될까 싶어 구매가 망설여진다. 만일 내 자궁 속 혹이, 난소에 있는 혹이 악성종양이라면 이런 명품 가방이 뭔 소용이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다들 별 일 아닐 것이라, 자고 일어나면 끝날 수술이라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이 몸속 거대한 혹이 암 일지는 열어봐야 아는 것이니 지금 내게 명품 가방보다는 몸속 혹이 어떤 아이인지가 최대 관심사이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며  뚜띠에게 구매를 말리고 있지만 우리 구매 요정에게 후퇴란 없는 듯하다. 일단 마음먹은 것은 꼭 사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 것 같다. 비싸고 마음에 안 드는 걸 사 오게 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가격에 내 마음에 드는 걸 골라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ㅋㅋ


뚜띠야. 이제 수술 준비물 그만 사.

나 살 찌운다고 고기반찬도 그만 하고. 그래도 난 살 안 쪄. 당신이 찌지. ㅎ

항상 나 생각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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