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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Jul 06. 2020

113. 고등부를 가르쳐야 수준 높은 학원인 걸까?

동네에 있는 작은 규모의 학원.

이곳에서 일하시는 한 선생님의 걱정을 듣고 실수투성이였던 젊은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학원에 중등부가 대부분이고 고등이 거의 없어요. 고 3을 가르칠 정도가 돼야 제 실력도 느는데 원장은 그냥 중하위권 애들만 붙잡고 가르치려 드는데 이 학원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정답은? 이런 학원은 쉽게 망하지 않는다!입니다.


사실 나도 젊을 때 저런 고민을 했었다. 원장은 왜 저런 머저리들을 데리고 있는지.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반짝반짝 빛도 안 나는 아이들을 끌고 가는 이유가 뭘까. 잘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던 나는 이런 학원에선 내가 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의 나는 어딜 가도 크기 어려웠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영재반, 특목반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했지. 진짜 주제 파악도 못했었던 내 경력의 흑역사다.)


고등학생, 그리고 최상위권의 아이를 가르치고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학원의 명성이 올라갈지도 모른다. 이렇게 성적을 잘 만들다니, 선생님 실력이 좋은가보다 할 것이니까. 이런 상황을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엄마들이 공부 잘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막 밀려올 것이라 기대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생, 중학생이더라도 최상위권 아이들은 지인 소개를 잘하지 않는다. 진짜 좋은 선생, 괜찮은 학원은 소문내지 않고 나만 알고 싶은 법. 아마도 나만 독점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작은 규모의 학원이 성적 좋은 아이들만 데리고 있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라는 말씀. 시험이 끝나고 학생들의 향상된 성적을 전단지로 만들어 광고를 하는 이유도 소문이 나야 학생이 늘기 때문이다. 장삿속처럼 보이겠지만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곳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여긴 인성을 함양하는 학교는 아니지 않은가?


광고를 하지 않고도 동네 소규모 학원에서 적당히 수입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중하위권 아이들을 공략하는 것이다. 중상위권 아이들보다 성적을 올리기 용이하고 친한 친구들을 잘 끌고 온다. 소개 시 무조건 상품권을 준다고 하면 진짜 100명도 데리고 올 놈들도 있었다. 젊을 때는 영재반 선생과 일반반 선생은 레벨이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시험 기간 의무적으로 맡아야 하는 내신 수업이 너무 싫었다. 못하는 아이 잘하는 아이가 섞여 있으니 진짜 한숨이 5분마다 나왔다. 근데 학원에 돈을 벌어주는 애들은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평범하거나 잘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또 교육비가 비싼 고등부를 키우는 좋다고 생각했지만 고등부는 최대 3년만 가르치는 것이니 지속적으로 학생 수 유지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 중등은 잘만하면 6년 이상도 학원에 묶어둘 수 있으니 진짜 우량 고객은 그들인 것이다.


그리고 난이도 있는 수업을 잘하는 것도 실력이지만 학습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는 것이 진짜 대단한 능력임을 알게 되었다. 그걸 깨닫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언젠가 나도 학원을 경영하게 될 것이다. 이 늙은 여선생을 받아줄 학원이 더 이상 없어질 날도 멀지 않았으니. 그때 나는 어떤 소신을 가진 학원장이 될지 장담할 순 없지만 딱 하나 말할 수 있다. 편견 없는 어른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것.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 모두 행복한 학원을 만드는 것. 그게 실현될지 모르지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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