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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Jul 15. 2020

118. 수업 중 인슐린 주사를 놓던 아이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학교 3학년 여자아이.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본인 티셔츠를 위로 들어 올리고 뱃살을 잡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깜짝 놀라 뭐라 말하려는 순간, 옆 자리에 앉은 다른 학생이 내게 말을 했다.


배에다 주사 놓는 거예요. 시간 맞춰하는 거라 얘 가끔 이래요.


티셔츠를 위로 올리고 뱃살을 잡았던 이유는 인슐린 주사를 놓으려 했던 것. 화장실 가서 놓는 것보다 자리에 앉아서 맞는 게 조명도 환하고 변기에 앉아 놓는 것보다는 덜 처량하다고. 수업 중 배에다 주사를 놓는 학생을 본 건 처음이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뭐라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위로를 할 수도 격려를 할 수도 없는 판단 회로에 에러가 뜬 상황이랄까.


과학 선생이니 생명과학 부분을 수업하며 호르몬에 대해 가르치게 되고 혈당량을 조절하는 것은 인슐린이다라고 떠들어댔는데 이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수업 중 인슐린 주사를 맞던 이 학생은 선천적으로 인슐린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 주사에 의존해야 했던 친구였다. 당뇨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해보자면 당뇨병은 제1형 당뇨병이든지, 제2형 당뇨병이든지 쉽게 말하면 혈당이 높게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인슐린이 모자라는 것이 문제이다. 제1형은 근본적으로 췌장에서 인슐린을 못 만들어 내며, 흔한 제2형 당뇨병은 실제로는 많이 만들어 내고 있지만 워낙 몸에서 인슐린에 저항이 커서 결과적으로 충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성인이 된 후 당뇨병에 걸렸다고 말한다면 그 경우는 제2형 당뇨병이라고 보면 된다.


여하튼 나는 주사 사건으로 인해 통통한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기운이 없고 무기력했던 이 여학생의 수업 태도에 합당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게으르고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인슐린 주사의 부작용으로 인한 급격한 저혈당 증상으로 무기력해졌던 것. 과학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이런 것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입으로만 떠들 줄 알지 실제로는 아는 것도 없는 똥멍충이 같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참 많이 안쓰러웠다. 저 바늘을 평생 자신에 배에 찔러야 한다니 16살이 아이의 배에 나 있는 무수히 많은 주사 자국이 날 마음 아프게 했다.


그리고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스스로 융통성 있고 배려심 있는 인간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에게 강 펀치가 날아온 느낌이었다. 오로지 겉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다니, 누가 내 겉모습만 보고 오해하면 파르르 불처럼 화를 내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괜한 오해로 상처를 준 아이는 없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인격이 밑바닥이던 시절의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독한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다.


젊은 시절이나 제법 연륜이 생겨야 할 40대가 되어도 실수투성이에 미완성 인격체인 나.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제발 겉만 보지 말자, 이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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