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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Jul 16. 2020

119. 트랜스젠더가 될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

내 나이 30이 되기 전, 그러니까 10년도 더 된 얘기이다. 중, 고등학생이 모두 있는 종합학원에 일할 때였는데 늘 앞자리에서 차분하고 조용히 수업을 듣던 중학생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뭔가 묘한 분위기랄까.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또래의 아이들과는 분명 달랐다. 말간 얼굴에 깨끗한 옷차림, 그 나이 남자아이들한테 흔히 나는 호르몬 쩔어있는 땀냄새가 아닌 향긋한 비누 냄새를 풍기는 그런 아이였다.


학원에 같은 반 남자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공부하는 모범생이었기에 수업에 방해되거나 나를 거슬리게 하는 것은 없었고 그냥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 흐릿한 인상의 학생이었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이 학생에게 큰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 실수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사건 하나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 부드럽거나 상냥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학원 내에서 엄한 선생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숙제를 안 해오면 심하게 혼내는 편이었는데 영어나 수학처럼 수업 횟수가 많은 편이 아닌 과학 과목 특성상 숙제를 안 해오면 진도를 나갈 수 없고 수업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실수한 그날도 숙제 문제로 아이들을 혼내고 있었는데 이 남학생은 선생님이 숙제를 내지 않아 안 해왔으니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거였다. 평소 나는 숙제를 안 해오면 그에 대한 벌로 학원에 남아 숙제를 마무리하게 했었는데 본인은 그럴 시간이 없으니 절대 남을 수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냥 적당히 넘어가 줬으면 사건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나는 이 아이가 내게 반항을 한다고 생각해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사내 새끼가 울고 난리야. 숙제를 안 했으면 정정당당하게 벌을 받아. 내가 때렸냐? 누가 보면 내가 폭력 선생인 줄 알겠다. 질질 짜지 마.


이렇게 말하며 호통을 쳤다. 급기야 책상에 엎드려 꺼이꺼이 우는 이 녀석. 진짜 어이가 없었다. 왜 울고 난리야. 내가 뭘 했다고.


결국 이 학생은 남아서 숙제도 하지 않고 허락도 없이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가 버린 아이를 어쩌겠는가. 나는 다음 수업 시간에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 퇴근하려다가 학원 현관에 뭔가 써져 있는 종이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이 아이가 본인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쓴 장문의 글이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난 시간 선생님이 칠판에 숙제를 적어주지 않았다. 난 억울하다. 또한 내가 우는 것을 비난했다. 선생 자격도 없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말로만 진도 나간 부분 풀어오라고 하고 정확히 숙제할 부분을 칠판에 써주지 않았던 것. 원칙주의자인 이 녀석은 칠판에 정리해서 쓰지 않았으니 숙제를 내준 게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본인이 우는 모습을 비난한 것에 불만을 토로했던 것. 내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을 통해 들은 다소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었는데 이 남학생이 좀 여성스러운 성향이라 학교 내에서도 혹시 게이나 차후에 트랜스젠더가 되지 않을까 얘기가 나오는 아이였다는 것. 그런 애한테 사내자식이 운다며 혼을 냈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결국 이 학생은 학원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른 제자를 통해 들은 얘기는 어여쁜 여인이 됐다는 것. 여자아이의 마음을 가진 학생에게 사내아이답게 행동하라는 성차별적 발언으로 상처를 주었다는 것은 선생으로서, 아니 어른으로써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도 이 학생과 비슷한 느낌의 학생을  몇 번 가르치게 되었지만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싶은 마음에 많이 조심하며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혹시나 내가 하는 말이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긴 것 같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5조]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학생인권으로 두고 있으며, 또한 이를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


시대가 지나니 이젠 이런 학생인권조례도 생겼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은 주로 중·고등학교에서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커밍아웃하거나 타인에 인해 아웃팅을 당하게 되면 따가운 시선과 놀림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실제로 2003년 19살 청소년이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성 지향성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인 나 또한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함을 깨닫는다.


어여쁜 여인이 된 ㅇㅇ아!

이름도 바뀌었겠지.

그 시절, 나의 미성숙함을 사과할게.

널 존중하지 못한 못난 나를 용서해주길.

그리고 멋진 여성으로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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