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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Aug 03. 2020

125. 내 몸보다 애들이 더 걱정되는데...

얼마 전 우리 집 아저씨가


당신도 배 나온다. ^^


라는 얘기를 했다. 내 평생 배가 나와본 적 없는 멸치 몸이었는데 똥배가 나오다니. 에휴~ 나도 나이 드니 별 수 없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배의 모양이 좀 이상했다. 좌우 대칭이 아닌 왼쪽으로 치우친 모양. 혹시 자궁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29살 때 이미 난소낭종과 자궁내막증 수술을 받아 받았던 지라 사실 내 자궁에 뭐가 생겼다고 해도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병원 예약도 왜 이리 힘든지.

일단 유명한 선생님들은 외래 진료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얘기하길 일단 예약 없이 와서 기다려보면 혹시나 취소된 환자 시간에 진료를 받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병원에 무작정 가서 일단 접수를 한 후 혈압과 몸무게를 재보며 내 차례는 한참 뒤가 될 테니 좀 기다려보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 새로 오신 선생님은 예약 환자가 거의 없어서인지 바로 진료를 볼 수 있게 됐다.


의사와 만나기 전, 상담사 같은 분께 그간의 증상들을 얘기했기 때문에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바로 초음파를 보게  되었다. 사실 초음파로 뭐가 보이는 건지 난 알 수가 없어서 모니터에 보이는 저것들이 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근데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은 의사 선생님의 탄식과 반복적으로 화면을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일명 굴욕 의자(산부인과 가서 진료 본 사람만 아는 쩍벌 의자)에서 내려와 의사 선생님의 얘기를 듣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초음파 화면에 한 번에 안 잡힐 정도로 큰 게 있어요. 이걸 왜 모르셨어요. 자궁 적출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똥배인 줄 알았던 것의 정체는 10cm가 넘는 혹이었다. 내일 아침에 CT를 찍어보고 여기서 수술을 할지 더 큰 병원으로 옮길지 결정하자는 얘기를 듣고 병원을 나왔다.


5시부터 잡혀있는 시험 직전대비 수업.

수업 시작 전까지 2시간이 남아있었다. 갑자기 멍해지면서 지금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우선 사람이 거의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중간에 약간 울먹이긴 했지만 차분하게 내 상황을 전달했다. 뭐 어쩌겠어. 자궁 떼라면 떼야지. 전화를 마치고 포털 사이트에 자궁적출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좋은 얘기, 나쁜 얘기. 온갖 말들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그렇게 검색을 해보다 보니 수업 시간은 다 되었고 열심히 6시간의 열강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내일 아침 CT를 찍으니 밥을 먹을 순 없고 바로 씻고 남편과 얘기를 나누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 자궁이 없어진다는 것이 슬픈 게 아니라 몸도 돌보지 않은 체 일만 열심히 했던 내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었다. 돈을 열심히 모을 줄만 알았지 변변한 명품 하나 안 사본 내가 너무 불쌍하기도 했다. 그리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운 후 8시 반쯤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남편이 따라와 준 덕분인지 조금은 마음도 안정이 되는 듯했다. 어제 진료를 봐주신 선생님과 다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오늘은 본인이 외래진료가 없어 병원 내 대표 원장님이 CT 결과를 토대로 수술 여부를 결정하실 거라 말해주셨다.


조영제를 맞고, CT 기계가 들어가 복부 CT를 찍고 대기하고 있으니 대표 원장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0cm가 넘는 자궁물혹, 4, 5cm 크기의 난소혹 2개까지. CT 결과를 모니터로 함께 보는데 타조알이 내 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게 내 배에 있었으니 그간 온갖 통증이 나를 괴롭혔던 거였다. 이 대표 원장님께선 자신의 휴가 전(휴가가 8월 12일부터라고 하셨음)에 수술을 하자고 하셨지만 그때 수술을 하게 되면 아이들의 수업, 과학 보고서, 팀 프로젝트 등 여러 가지 진행해야 할 것들에 차질이 생길 게 분명했다. 나는 8월 말이나 9월 초에 수술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니 선생님도 나쁘지 않겠다며 8월 28일 수술을 확정하게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수술.

그동안 해결할 일들이 많다 보니 마음이 조급하기만 하다. 내 몸을 챙겨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 조바심이 난다. 이게 선생이라 그런 건지. 일반 직장인과 달리 대체가 안 되는 직업을 가진 나는 나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없었던 일인 것 같다. 조금은 두렵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기에 나는 오늘도 8월 28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잘 될 거야.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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