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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Sep 13. 2020

127.  아파야 쉴 수 있는 직업

수술 정도는 해야 수업을 쉴 수 있다니. ㅜㅜ

8월 28일,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히던 숙원사업을 하게 됐다. 한 달에 반쯤, 각종 통증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던 나의 자궁. 이 애증 덩어리인 자궁에서 여러 개의 혹과 그밖에 문제들 발견되었고 겨우겨우 시간을 조율하여 수술 날짜를 잡았다. 당장 해치워야 할 큰 일들은 미리 해결해 두고 퇴원 후 얼른 몸을 추슬러 복귀하여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도 상황을 통보했다.


수술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그리고 엄청난 통증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수술 후 3일이 지난날, 오른쪽 옆구리가 미친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열도 38.5도까지 오르는데 해열제로도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내 자궁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황급히 CT를 찍게 했고 왼쪽에 비해 비대해진 오른쪽 콩팥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비뇨기 의학 수술을 잘하는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자궁수술 일주일 만에 다시 전신마취를 해야만 했다. 결국 자궁 수술 시 여기저기를 건들다 요관이 끊어진 부분을 복원하는 신우성형술인지 뭔가 하는 수술을 산부인과와 비뇨기 의학과 협진으로 받게 되었다. 수술 후 3일 동안 침상안정을 하라는 말에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었고 드디어 걷게 되었을 때는 빈혈과 영양실조, 너무 줄어든 체중으로 5분도 체 걸을 수 없었다.


퇴원 통보를 받고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제 내 몸은 병신이 되었구나. 자궁도 없고, 난소도 없고, 콩팥도 병신이 되고 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피해자고 이렇게 아픈데 누가 내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줄 수 있을까, 분노가 치밀었다.


이 와중에 온 문자 하나.


선생님, 저 질문 있는데요?


문제집 해설이 이해 안 된다는 학생의 문자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물론 내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학생이었겠지만 수술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수술 경과가 아닌 문제의 해답을 묻는 이 아이를 보니 ‘아, 이 아이는 본인 수업을 안 하니 내가 지금 쉰다고 생각하는 거구나.’라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질문에 답을 해주고 생각했다. 이제 이 아이와는 인연을 끊어야겠구나. 그 이후 매일매일 몸이 회복되고 손바닥보다 가늘던 허벅지에 살이 붙기 시작하니 날카롭고 서늘했던 내 마음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오래간만에 만끽하는 긴 휴식을 알뜰히 활용하며 푹 자고, 잘 싸며 회복을 하고 있다. 다만 아직 먹는 건 원래만큼 돌아오지 못했지만. ^^


수술 덕분에 오랜만에 푹 쉬게 된 나.

이제 다시 힘내 볼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지켜야 할 미래가 있으니까. 내 학생들은 나의 미래니 그 아이들을 위해 다시 힘내 볼 것이다.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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