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가 가르치는 녀석 중 싹퉁머리 없고 성적도 그저 그런데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학생 하나가 있다. 진짜 수업해주기 싫은 녀석인데 팀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업을 해주는 녀석. 진짜 확 잘라버리고 싶은데 얽혀있는 사람들이 많아 쉽게 수업을 그만둘 수 없는 진짜 골칫덩어리 학생이다.
그런데 최근, 진짜 싹퉁머리도 없는 데다 입까지 방정맞은 이 녀석의 뒤통수를 확 날리고 싶은 짜증 나는 일이 있었다. 물리 문제 중 역학에 관한 문제를 설명해주고 있을 때였는데
아... 최 OO 선생님이 그래프 그려서 풀면 하수라고 하던데. 아시죠? 전교 10등 애들까지만 가르친다는 분이요. 완전 잘 가르치는 분인데 선생님은 왜 그 선생님이랑 달라요? 설마 하수? ㅎ
하수? 허. 그래 이 자식아, 나도 안다. 그 유명하다는 물리 선생. ㅎ 당연히 훌륭하고 잘 가르치는 분이겠지. 근데 그분도 그래프 그려서 역학 문제 풀던데? 그 선생님의 자체 제작 교재를 보면 그래프 이용해서 풀이하는 과정이 자세히 나와있더라. 근데 수업 중에는 그래프 그려 풀면 하수라고 했다고?
난 이 녀석의 말을 믿지 않는다. 원래 입만 열면 자기 과시에 허세니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선생님한테 특강 들었다면서 왜 내 수업은 또 듣는 걸까? 뻔한 얘기지만 그 선생님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난 선생이 있으면 뭐하겠는가? 이해도가 낮은 학생이라면 아인슈타인이 직접 상대성 이론을 설명해줘도 눈을 껌뻑이고 입만 벌리고 있겠지.
나이도 어린 녀석이 상대방 기분 상하게 하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저런 성격도 타고나는 것인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어린 나이에 후천적 학습으로 저런 태도가 완성됐다면 학습 능력이 뛰어난 진짜 천재일지도.
여하튼 이런 말도 안 되는 말로 선생을 평가하고 본인의 우월함을 뽐내는 아이들을 보면 저런 아이들이 미래의 꼰대가 되는 것인가 생각이 든다. 본인의 생각만이 정답이고 남의 생각은 진지하게 듣지 않으려는 태도, 저런 아이는 무슨 생각으로 내 수업에 앉아있는 걸까?
아니면 저런 태도를 지닐 수 있도록 오냐오냐 기른 부모를 탓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든다. 비싼 집에 살고 대기업에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아버지, 철철이 사서 입히는 명품들. 그런 것들이 나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라 착각하게 만들고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뭐, 이 잘난 척 대마왕 이 녀석이 어떤 어른이 될지 내가 관여할 바 아니다만, 최소한 이 아이의 성적을 책임지고 있는 어른으로써 내가 해줄 일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결론은? 없다. 어떤 조언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이 아이에게 나는 그저 나이 든 꼰대일 뿐일 테니까. 그래도 간절히 바라본다. 부디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스스로의 문제점을 깨닫고 고쳐나가길. 미워도, 짜증 나는 녀석이어도, 이 녀석은 내 제자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