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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Oct 25. 2020

5. 잔소리쟁이 뚜띠 아저씨

오늘 아침도 뚜띠 아저씨의 뚱땅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제 수업이 많았고, 오늘은 늦은 오후에 수업이 있어 푹 쉬는 중이었는데, 주방에서 뭔가를 지지고 볶고 뚱땅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문을 열고 주방 쪽을 보니 우리 집 뚜띠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새 회사도 다니며 대부분의 집안일을 해주고 있어 힘들 만도 하건만 참 열심히 밥을 만든다.


나는 다시 안방에 들어와 몸무게를 쟀다.

43kg

십 수년 전 결혼할 때 몸무게로 돌아왔다. 몸이 아프고 나니 몸무게도 빠지고 수시로 컨디션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근데 컨디션의 난조보다 나를 더 괴롭게 하는 것은 뚜띠의 잔소리이다.


이렇게 안 먹을 거면 그냥 죽든지. 에이. 씨 foot(이건 여러분들이 아는 그 욕이다.)


안 먹는 것도 아닌데 자기 성에 안 차게 적은 양을 먹거나 귀가 시간이 늦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한다. 진짜 갱년기인가 싶을 정도로 욱하는 모습을 보여 놀랄 때가 있다. 알고 지낸 18년 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진짜 뭘 잘못했나 싶기도 하다.


사실 우리 뚜띠는 내가 수술을 받고 아프기 전에는 내가 배탈이 나거나 두통이 있거나 생리통이 있어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냥 자면 낫는다는 둥 엄살 부리는 아이한테 얘기하듯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생 아파본 적이 없으니 마누라가 아픈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야속하고 서운한 적이 많았는데 두 번에 걸친 수술이 우리 뚜띠를 놀라게 한 것 같다.


샤워 후 나오면 흉터를 좀 보자며 심각하게 바라보고 흉터 연고를 바르자고 얘기한다. (개복수술 자국, 복강경 자국, 피주머니 자국까지 4개의 흔적이 있는데 꽤 볼만하다. ㅎ) 사실 난 흉터 연고까지 바르고 싶진 않았다. 남들에게 노출되는 부위도 아니고(배와 배꼽 주변이라 비키니 입지 않는 한 보일 일은 없다.) 난 대중목욕탕도 안 가는 사람인데 누구한테 보일 걱정은 없다.


그런데도 온갖 잔소리를 하는 저 아저씨.

이 글을 쓰기 2시간 전에 한 잔소리를 열거하자면


1. 이거 다 안 먹으면 앞으로 잘 안 해줄 거다.

2. 일 많이 하지 마. 그냥 집에서 쉬어라

3. 오늘 춥다. 따뜻하게 입어라.

4. 수업 나가기 전에 또 자라.


만사태평한 아저씨가 잔소리쟁이가 되다니.

내가 아픈 죄다. ㅜㅜ

뚜띠야! 앞으로 안 아프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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