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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Oct 30. 2020

133. 뚜벅이 선생님이면 안 되나요?

1년 전 나를 빡치게 한 당신!

선생님!
얼마 전에 우연히 봤는데...
설마 버스 타고 다니세요?


한 학생 엄마가 확인차 연락을 하셨단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니 아마도 나를 우연히 보셨던 것 같은데 뭘 확인한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아니, 돈도 벌만큼 버실 분이 차도 안 가지고 다니세요? 돈 벌어서 어디다 쓰세요. 아님 제 생각만큼은 못 버시나 봐요.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결국,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가 너 돈도 별로 못 버는 강사냐는 것을 확인하고자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근데, 내가 돈을 잘 벌건 못 벌건 자기 아이 가르치는 것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나중에 학생을 통해 전해 들은 얘기는 나의 분노 게이지를 극상으로 만들어줬다. 이 엄마 논리로는 차도 못 끌고 다닐 정도면 안 팔리는 실력 없는 선생 아니냐는 것이었다.


잠시 생각했다.

내가 잘 버는지, 잘 나가는지 이 엄마에게 증명해야 할까? 그리고 좋은 차를 끌면 잘 나가는 일류 강사라는 논리는 어디서 배운 걸까? 주변 강사들이나 원장들이 했던, 외제차를 끌어야 대출도 잘해주더라는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운전이 싫고 차 유지비가 아까우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 최근에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수술 후 다리의 감각이 무뎌져 페달을 밟는 것이 다소 느려진 이유까지 추가!


근데 버스를 탄다고 나를 실력 없는 선생인 양 평가했다니. 겉만 번지르한 걸 좋아하는 그 허세가 어이없었다. 그리고 내 강의 실력이 아닌 내가 가진 허울로만 평가하려는 그 속물근성이 혐오스러웠다. 설마 이런 얘기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 다른 학부모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어이없는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고 썩은 미소가 지어졌다.


버스 타고 다닌다고 나를 평가절하했던 학부모는 내 수업을 더 이상 듣지 않게 해 주셨다. 나보다 좀 더 훌륭한 선생을 찾으셨으리라 기대했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좋은 성과는 얻지 못하신 듯하다. 그렇게 바라시던 학교 문턱도 못 가고 인서울도 하지 못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속으로 얼마나 부글부글 하셨을지. ㅎ 내 수업을 계속 듣던 학생은 예상보다 더 좋은 대학으로 진학했으니 사촌이 땅을 산 것만큼 배가 아프셨을 것이다. 차도 못 끌고 다니는 선생한테 배운 녀석이 경희대라니. 일부러 소문나서 꼭 배 아파하도록 내가 노력 좀 했지! ㅋ


유 oo 어머니!

지하철, 버스에 탄 수많은 사람들이 별 볼일 없어서, 혹은 돈이 없어서 차 없이 다닐까요? 아마도 잘난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그들의 선택일 뿐이랍니다. 저도 그냥 선택사항일 뿐이고요. 그리고 없는 얘기, 소설 지어낼 시간에 아드님 잘 챙기시지 그랬어요. 일개 과학 선생 생계 걱정해주시고 미래를 염려해주시다 귀한 아드님께서 지방 이름 모를 대학 갔잖아요. 그리곤 SNS에 이성 교제 활발한 사진만 업로딩 하던데 그런 걸 챙기세요. 금지옥엽 아드님, 남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한답니다. 어머, 제 주제에 오지랖 떨었네요. 그럼 미천한 저는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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