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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09. 2020

12. 빈궁마마 납시요~

다음날, 아침 9시 이후 산부인과 병동에 빈자리가 나면 바로 병실을 옮기게 되고 혹시나 자리가 없다면 비뇨기 의학과 병실에 계속 있되, 산부인과 관련 치료가 좀 더 잘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 어제도 그렇게 갈아달라고 부탁해도 수술 부위 거즈도 안 갈아주고 소독도 안 해주더라. 운동도 처음에는 많이 하라더니 나중에는 그만 좀 움직이라고 했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야?


일단 병실을 옮길지도 모르니 캐리어에 짐을 정리하고 이불과 베개도 정돈해 두었다. 11시가 지나자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전실(병실을 옮기는 걸 그렇게 얘기하는 듯했다.) 처리되셔서 지금 기사님 오시면 휠체어 타고 이동시켜 줄 거라고 했다. 직접 걸어서 갈 수 있다고 얘기하니 그럼 짐이라도 옮겨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다행히 같은 건물에서 층만 바뀌는 거라 링거 거치대는 내가 직접 끌고 엘리베이터로 2층아래로 내려갔다. 옮기게 된 병실은 전체 출입구 바로 앞에 위치해 몹시 시끄러웠고 간호사실과도 아주 먼 곳이라 뭘 부탁해도 여전히 늦겠구나, 아니 더 늦어지겠구나 걱정이 되었다.


짐을 풀고 있는데 다시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니 간호사실로 오라고 했다.


여긴 정보 공유가 안 되나요? 전산상에 키, 몸무게, 임신, 출산 여부 입력되어있는데 뭘 더 말씀드려야 하죠?


내가 좀 까칠했다. 또다시 말하려니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이틀 사이 체중 변화가 있는지 물으려고 했다는데...


지난주 금요일에 수술하느라 금식한 후 지금까지 수액에 저 영양제만 맞고 있는데 혹시나 이틀 전 잰 체중보다 쪘을까요? 그럼 지금 잴게요.


밥도, 물도 못 먹었더니 아주 성질이 더러워져서 애먼 간호사 선생님만 쥐 잡듯 잡은 것 같다. 배고프고 시원한 것도 먹고 싶고 허리는 아프고 열은 나고 왜 간병하는 사람이 힘든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환자가 짜증을 부릴 텐데, 옆에 있는 사람을 괴롭힐 텐데 얼마나 견디기 힘들지 예상이 되었다. 코로나로 면회나 보호자 상주가 안 되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 못된 성깔을 들키지 않게 됐으니.


결국 몸무게를 재고 변화 없음을 확인시켜준 후에야 병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역시 4인실, 간호 통합 병동이라 남들과 마주치거나 얘기하고 싶지 않아 커튼을 치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커튼을 확 걷는 게 아닌가?


여기서 커튼 치고 있음 우울증 생겨. 왜 이렇게 있어? 무슨 일로 입원했는데 그래. 얼굴은 멀쩡해 보이는데.


경상도 사투리에 아주머니 한 분이 우울증이 염려되셨는지 아주 친절하게도 말을 걸어주셨다. 하하하 몇 살이냐고 물으시고 먹을 만큼 먹었다니 그러니까 몇 살이냐고 끈질기게 물으셨다. 어쩔 수 없이 나이를 얘기해 드리니 다른 환자분들께 가셔서 내 나이를 전달해주셨다. 그러자 다들 한 마디씩 하시는데 ㅜㅜ


20대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면 다르려나? 호호호. 남편은? 애는 없어? 왜 혼자 왔어.


그래 제대로 설명하면 다신 말 안 걸겠지!

자궁 적출하다 의료사고 나서 요관 끊어지고 시술도 실패해서 일주일 만에 다시 전신마취 수술하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결혼했고 애는 없다고도.


이제 빈궁마마네. 호호. 애는 이제 가지고 싶어도 못 갖는다는 거잖아? 글치


꼭 저런 표현을 써야 하나? 자궁 없는 여자를 빈궁마마라고! 저게 자궁 있는 여자의 우월감인 건가. 나참 자궁 없는 여자, 어디 서러워 살겠나.


그 이후로도 본인은 나이가 52살인데 생리를 아직도 한다며 남편이 자기를 너무 예뻐해 준다고 자랑하셨다. 하하, 사랑받는 아내셨구나. 자궁도 있으시고 참 부러운(?) 아주머니였다. 남편과 통화도 하시는데 아주 애교가 철철 넘치시긴 하더라. 저 아주머니는 자궁근종이 있지만 자궁을 보존하기로 하셔서 근종만 절제하신다고 했다. 빈궁마마는 결코 싫으신 모양이다.


여름 끝자락에 자궁도, 난소도 잃은 나는 그렇게 빈궁마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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