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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09. 2020

11. 제 배를 다시 연다고요?

요관 스텐트 시술 실패는 나를 깊은 절망에 빠지게 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였고 나는 멍한 상태로 있었다. 울어봤자 소용이 없건만 병원 침대에 걸터앉아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상태 체크를 하러 오셨다가 등을 토닥여 주시고 힘 빠지니 그만 울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조언해주셨다. 그리고 소독약이 잔뜩 묻은 환자복 바지를 갈아입혀주겠다고 하셨다. 환자복 상의는 자궁 적출하면서 달아놓은 피주머니와 수술 흉터에서 나온 진물이 잔뜩 묻어 있었고 바지는 똥 싼 사람처럼 소독약 자국이 심하게 나 있었다. 이 모양새로는 화장실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보기 흉할 정도였다.


금세 새 환자복을 갖다 주시더니


키가 크셔서 이걸로 가져왔는데 안 되겠네요. 잠시만요.


이러곤 다른 환자복을 가져다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새로 가져다주신 환자복은 아동용 사이즈인데 다른 건 바지가 흘러내려서 입힐 수 없었다고 한다. 어쩐지 새로 가져다주신 환자복은 팔, 다리가 껑충했다. 링거를 팔에 끼고 있으니 상의는 간호사 선생님이 링거줄을 빼고 잠시 뭔가로 막은 다음 후다닥 입혀주셨고 바지는 내가 입겠다고 얘기했다. 요관 스텐트 시술 때 발라놓은 소독약을 물티슈로 지우고 입어야 했으니까. 소독약을 대충 닦고 팬티를 새로 꺼내 입고 바지를 입었다. 옷을 갈아입으니 그나마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


잠시 후, 수간호사라는 분이 오셨다. 시술 실패를 안타까워하시면서 내일부터 비뇨기 의학과가 아닌, 산부인과 병동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얘기해주셨다. 왜 내가 산부인과 병동으로 옮겨지냐고 물으니 지난주, 수술하신 후 치료가 이어져야 해서 옮기게 된다고 했다. 뭔 소리인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 어떤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 긴히 할 얘기가 있는데 병실 말고 회의실에서 얘기하자고 하셨다. 갑자기 긴장이 됐다. 이 분은 누구시지?


이 의사 선생님은 산부인과 선생님이셨다. 내일 병실을 옮기고 내일이나 모레, 금요일에 수술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무슨 수술이요?


내가 또 산부인과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니 상냥하진 않지만 뭔가 믿음 가는 말투로 설명해주셨다.


비뇨기 의학과 선생님과 내가 같이 협진으로 수술을 해서 요관 재문합을 할 거예요. 하는 김에 다른 병원에서 수술한 거 문제 있는지 다시 살피고. 그래서 비뇨기 의학과랑 산부인과가 협진인 거야. 난 내일도 수술 가능한데 비뇨기과 선생님은 안 될 수도 있어. 그래도 금요일엔 해줄게.


이 선생님이 하는 말이 100% 이해는 안 돼도 그건 알 수 있었다. 아, 나 살 수 있는 거구나. 수신증 나아진다는 거잖아. 평소라면 나한테 반말을 찍찍하는 사람에게 반감을 가졌을 텐데 이 선생님은 그냥 천사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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