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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10. 2020

14. 일주일 만에 다시 전신마취, 깊은 잠에 빠지다.

수술 당일, 도통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술 때문에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수신증으로 열과 통증이 있어 1, 2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깰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속상했다. 왜 내가 1주일 만에 전신마취 수술을 다시 받게 됐는지. 나의 탓은 아니니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고 싶었지만 그 누구를 탓하 건 내 요관이 저절로 붙고 온전해지는 건 아니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은 수술이 잘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새벽 6시쯤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압박 스타킹을 신고 속옷은 탈의한 후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해주셨다. 다시 압박 스타킹을 구매할 필요 없이 여성병원에서 구매했던 압박 스타킹을 신고 세수와 양치도 하고 전날 간호사 선생님 몰래 감은 머리를 깨끗하게 빗었다. (사실 샤워도 살짝 했다. 진짜 땀냄새, 머리 냄새가 너무 심해 죽을 지경이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헤어캡을 씌어줄 테니 머리도 묶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 했기에 그냥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었다. 아마 어제 머리를 안 감았다면 스프레이를 뿌린 듯 딱딱하게 떡진 머리를 수술용 헤어캡에 쑤셔 넣어야 했을 거다.


남편이 수술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고 내 얼굴을 보러 살짝 들어왔다가 보호자는 면회실에서 대기하라는 말에 병실에서 쫓겨났다. 또다시 수술용 침대가 도착했고 다시 꼬불꼬불 복잡한 길을 거쳐 수술방을 옮겨졌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환자들은 많지 않았지만 여전히 시끄럽고 낯선 분위기였다.


오늘 어디 수술받는지 아세요? 흔들리는 치아 없으세요? 만져볼게요. 마취제 부작용 없으셨어요?


이번에는 말도 빨리 걸어주니 불안함이 줄어들려고 하던 찰나에 대빵으로 보이는 분이 말씀하셨다.


이 환자 뭐야? 난 보고 받은 적 없는데, 이거 뭐야?


순간 철렁. 설마 수술장에서 쫓겨나는 건가.


응급이라 제가 사인했습니다.
ㅈㅎ 선생님, ㅇㄱㅂ선생님 협진입니다.


휴~ 이인자인듯한 마취과 선생님 덕분에 쫓겨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대기실에 수술실로 옮겨진 후 직접 수술대로 올라가라고 했다. 몸이 옮겨 수술대에 오르니 간호사 선생님이 내 팔을 거치대에 고정시켜 주셨다. 수술 중 발버둥 칠까 봐 그런 거겠지? 마취과 선생님께선 내게는 생년월일을 물어보셨고 간호사 선생님께는 내 체중을 물어보셨다. 그리고 체중을 듣더니


오, 딱 마취하기 좋은 체중이야. 할 맛 나는데.


마취하기 좋은 체중이 뭐지? 몹시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기에 입 꾹 다물고 있었다. 보통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셋까지 세라는 그런 말이 아닌 마스크에서 나오는 가스를 맡아보라고 하셨다. 한 번 스윽 맡고 두 번째 맡을 때 아, 이게 마취되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 이후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참 기분 좋은 마취였다.


눈을 뜨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기분이 너무 좋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아프지도 않고 기분이 상쾌했다. 순간 내가 수술하다 죽어서 아프지도 않고 이렇게 기분이 좋은 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니 병실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또 복잡한 길을 거쳐 침대에 실려 병실로 옮겨졌고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웃으며 얘기했다.


나 안 아파! 기분도 아주 좋아. 이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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